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이제 그만 놀고 집에 가야지.”

“조금만 더”

“저기 하늘 한번 봐봐. 깜깜해지고 있지? 어두워지면 집에 가는 거야.”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님도 집에 가는 거야?”

“응. 해님도 집에 간대.”


 

    다섯 살 난 조카와 놀이터에서 나누었던 대화다. 저녁놀 지는 하늘 아래서 나누었던 짤막한 대화는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해님도 집에 가는’ 시간. 저물어가는 하늘, 곱게 물들어가는 하늘의 뒷모습은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감싸는 포근한 손길 같다. 나에게 저녁놀은 평화의 색, 평화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깜깜해지고 있는 하늘 아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우리를 감싸줄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러나 때로 우리는 지는 해를 따라 집으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고 싶은 자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혼한 엄마와 산다. 엄마는 “뺀질이” 같은 아버지를 피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사를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줄근한 노인이 나타난다. 짱구영감이라 불리는 그 노인은 ‘나’의 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버지이다. 짱구영감이 나타나고부터 엄마는 한밤중이면 손톱을 깎는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면서. 그러면서도 짱구영감이 좋아하는 바지락 된장국을 끓이고, 벽에 기대 잠들어 있는 짱구영감을 향해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나’의 시선을 좇아 비춰지는 엄마의 이중성, 짱구영감을 향한 애증은 지난날 가족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기인하고 있다. 시대적, 개인적 상황 속에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짱구영감과 그의 빈자리를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온 엄마와의 팽팽한 대립 구도는 어느 저녁 짱구영감이 잡아온 피조개를 나눠먹으며 느슨해진다. 직장상사와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지운 엄마를 위해 짱구영감은 서너 시간 거리의 개펄로 나가 피조개를 잔뜩 잡아온다.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피조개를 먹는 짱구영감과 엄마, 그리고 ‘나’의 모습에는 가족, 그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주는 상처와 위안 그 애틋한 이중성이 잘 그려져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삶의 힘이 되지만, 때때로 우리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가족이라는 이름. 그 존재의 이중성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에서 저녁놀은 인생의 황혼기, 곧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짱구영감과 엄마의 죽음, 그리고 엄마가 짱구영감을 향한 것처럼 애증을 느꼈던 아버지의 죽음이 ‘나’의 회상 속에서 이어진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태양의 필연적 몰락처럼 그 아래 살아가는 우리들의 죽음 또한 예견된 것이다. 이 유한한 시간, 쇠락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줄 것은 무엇일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 저무는 하늘 아래 양 어깨에 피조개를 걸머진 짱구영감의 무게,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며 사랑과 미움 사이를 오가는 엄마의 무게. 그 무게가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는 것 아닐까.

 


“추운 겨울, 한밤중에 눈을 뜨면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지. 그러면 말이 풀을 먹는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잠들곤 했어.”

짱구영감은 잠시 침묵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아주 편안하고 쾌적한 소리였지.” (pp.131~132)


 

    모두가 잠든 한밤중, 잠을 깨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순간과 같은 외롭고 두려운 시간에 우리를 다독여줄 존재, 가족. 내 곁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혹, 참을 수 없는 무게만 얹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이 순간에도 해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