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떠오르는 물음표.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에 따르면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삶을 우스운 연극의 수준 위로 고양시켜 그의 삶에 비극의 우아함을 부여해주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의 하나"라 한다.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비교적 간결하게 정의되는 철학은 그러나,

 

 

     뭣도 모르고 철학책들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까뮈의 시지프스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를 내멋대로 씹어삼켰던 기억. 당시의 책들을 펼쳐보면 밑줄이 많다. 밑줄 없는 문장보다 밑줄 그어진 문장이 더 많다.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리 밑줄을 그어댔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지금 나에게 그 밑줄들은 수많은 암호, 의문부호로 다가올 뿐이다. 어쩌면 그때 나는,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위해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었을까.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두껍고 아리송한 철학책들을 뒤적였을까. 그리고 나 아닌 다른사람들은 또 무엇을 찾기 위해 철학책들을 읽나. 그보다 앞서 철학자들은 무엇을 찾기 위해...... 아니, 무엇에 답하기 위해 끝없는 의문부호들을 곱씹는 것일까. 닫혀 있는 문 앞에서 노크하는 자들. 끝없이 노크하면서 문 저편의 목소리에 혹은 정적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철학자가 아닐까. 철학이란 것은 끝없는 의문부호들로 답하는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면 철학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아닌가. 그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나는 『철학의 탄생』을 집어들었던 것.

 

 

     철학에 깊은 뜻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도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 크세노파네스, 아낙사고라스 따위 철학자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다. 이 책의 저자 콘스탄틴 J. 밤바카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형이상학, 윤리학, 심리학, 사회학뿐 아니라 물리, 화학, 우주론, 생물학 등 과학까지도 결합되어 있어서 통일적인 전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유럽 사상의 기초가 세워지고 발전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 책을 쓴 뜻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의 자연, 사회, 종교 등 철학의 발상지 그리스 지역의 상황에서 이 책은 출발하고 있다. 그리스 사상의 근간이 되어준 그리스 지역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 철학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 다음 장(章)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간단한 정리 - 그리스 철학의 역사, 철학자들의 핵심사상 등 -를 해두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장(章)이 열린다. 각 장마다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사상 핵심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 있게 읽었던 장은 '아낙시메네스(기원전585~525년경)'를 다룬 장이었다. 최초의 기원, 최초의 원소 '공기'에서 출발하여 영혼, 신적인 것, 우주기원론, 기상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언젠가 읽었던 바슐라르의 사상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구성과 내용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런데 어렵다. 많이 어렵다. 예사로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읽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진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친구의 말이다. "그게 철학이다." 농담 반 진담 반, 내가 받아쳤다. "그럼 철학이 무슨 소용?" 침묵.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부호.

 

 

     다시 돌아와, 철학이란 무엇인가? '우주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렇다. '시도'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그것이다. 답하는 것이 아니라 물음을 던지는 일. 끝없이 물음을 던지는 일. 물음으로써 답하는 일. 그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끝없이 물음을 던져주는 것, 그것이 철학일 것이다.  언젠가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밑줄을 그어대던 내가 여기 지금의 나를 위한 의문부호를 남겨두었던 것처럼, 『철학의 탄생』은 우리에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의문부호를 던져주고 있다. "미래를 향한 열정을 지닌 사람만이 과거의 관념들에 내용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폴 발레리의 말을 끝으로 나는 여기 서투른 의문부호를 찍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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