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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1.
달과 중력, 무중력 증후군에서 현실은 지독한 억압이고 억눌림이다. 탈출욕구가 내적인 활동(주체성)이 아니고, 뉴스(달 여러개...)에 기대고 있다. 외부자극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런 이야기, 식상하다. 글쓴이 약력을 본다. 1980년생, 젊은 작가의 예리한 펜대가 움직여 신랄한 글쓰기를 했다는데, 내 혀는 감각을 잃었나, 책장을 넘길수록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의 조합이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나는 <무중력 증후군>을 읽는 내내 편하지 못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비로소 편해졌다. 자유로워졌다. 홀가분하다. 나는 중력이 더 익숙한가. 병이 낫기보다는 오히려 병으로 고생하는, 괴로워하는 날들이 더 나은가. 아닐 것이다. 이건 익숙한 낯섦에 대한 거부감이다.
<무중력 증후군>은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한겨레 신문의 취지가 무엇인지 잘 안다. 민족성과 해방, 자유. 그렇기 때문에 <무중력 중후군>이 어느 정도 한겨레 문학상의 기준에 적합하다는 것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어느 사회비평서에서 만날천날 만나왔던 사회분석이 <무중력 증후군>에는 하나 새로울 것없이 아귀에 틀어맞춘 듯이 들어차 있다. 전형적인 소설 형식만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에서의 신선함은 덜하고, 대신 정형
2.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 (9쪽)
'비아그라' ? 외로움을 왜 비아그라로 표현했을까. 첫문장은 소설 작법대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무증력 증후군>이 가진 힘이다.
그러나 나를 도시적 인간으로 증명할 만한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대량생산되는 뉴스까지도. (9쪽)
<무중력 증후군>은 정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만난 <무중력 증후군>은 두 가지 이야기로 끌어나가고 있다. 성적인 요소, 그리고 '소비'적인 인간. 현대에 접어들어 성은 살고파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성은 역시 상품이다. 여전히 사회 일각에는 프리섹스가 성행하는 지금도 여전히 성적인 농담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금기시되어야 할 무엇이다. 죄악으로 통용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성적인 것 그 자체를 죄악으로 치부하는가. 기저까지 파고들 능력이, 진실로 내게 없다.
무중력 증후군에서 먼저 밝히는 '비아그라'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 상징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비아그라는 자연적인 성을 약품으로 장기화시키는 것이다. 쾌감의 극대화를 노려서 만든 상품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상품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허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사회비평서, 문학 평론집에서도 그렇게 말해오고, 앞으로도 크게 다른 이야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공허감, 기괴한 갈증이다. 우리 시대는 채워지는 않는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럴 때, 불가능한 만족감을 달래기 위해서는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가장 손쉽지 않을까. 인간의 진실성을 외면하고, 인위적인 대체품을 선택하는 일. 비아그라는 그러한 행위의 상징으로서 가장 적합하다. 안타깝게도 윤고은 씨의 작품은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아그라의 상징성은, 첫문장을 읽는 순간 드러나고 말았다. 다음 문장, 소설이 전개될수록, 예상을 뒤집지는 못했다.
3.
새로운 뉴스가 등장해 나를 발기시켜주기를, 출근할 때마다 나는 소망했다. (10쪽)
당신은 뉴스를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이런 대답은 여론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요, 라고 묻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모른다. 현대에서 상담이 창대해지리라는 예상은 아무래도 적중할 것 같다. 감정을 중심으로, 당신은 지금 무엇을 느낍니까? 정말 그것을 원합니까? 그러한 생각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요.
심리학은 인간 본연으로 파고들기를 시작했고, 지금 세상은 열광중이다. 단순히 긍정의 심리학에 그치지 않고, 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 자, 한 번 속으로 물어보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직면하게 되는 나는 참으로 공허하다. 나는 내 속을 모른다. 모르겠다. 지나친 자기방어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것은 무엇인가? 이 낯선 질문에 식은땀이 흐른다.
반대로(역으로)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무슨 무슨 일을 내게 전달해주었는지, 그리고 그 일은 내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즉 외부자극에 오감을 곤두세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이 지겹다, 매일 챗바퀴 돌리듯 똑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자아가 없는 탓, 혹은 외부자극에 순응하여 생활하는 데 익숙해진 탓. 어느 것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4.
한겨레 문학상, 작품을 몇 편 읽었다. 몇 편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윤고은 씨의 작품에서 나는 신예의 참신성보다는 무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선택한 한겨레의 기준에 적잖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