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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 알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책제목에서 '기술'은 늘 혼란을 유발한다. 기술의 표명하는 의미를 먼저 이해하고 난 뒤에 이 책을 펼쳐야 한다. 『칭찬의 기술』이라는 책을 선택했다면 분명 재주, 새로운 방법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칠 것이다. 나는 그랬다. 기술을 하나의 재주, 방법으로 여기기가 예사였다. 그런데 동질한 표기의 기술에는 다른 한자어가 있다. 재주 이외에 쓴다, 기술한다는 의미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이 책 『증오의 기술』과 만나야 한다.
기술(記述)의 측면에서 책을 찾는다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지식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이 존재한다. 『증오의 기술』은 다행히도 사례집이었다. 지난 해와 올해에 이어 나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술(技述)서를 많이 읽어왔다. 나의 감정이 어디서 돌발적으로 출현하는지 그 이유를 따지고, 어떻게 하면 바람직하게 - 내남없이 상처받지 않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천천히 정독해왔다. 득이 있으면 당연 실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선택된 행동에는 기회비용이 작용한다. 방법론적인 책을 탐독하면서 나는 현실에서 유리된 듯 속이 헛헛했다. 이런 나의 내적 공허를 알아주는 듯 『증오의 기술』이 나를 찾아왔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만나 나는 마음이 평온하다. 감정의 혼란, 홍수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을 살펴보며 나와 비슷한 그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반응하는지를 살피게 되었다. 여유가 아니다. 하나의 경험이 누적된 결과이다.
『증오의 기술』은 머리말(들어가는말)과 맺음말에 책을 기술한 의미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통받는 피해자와 무관심한 가해자'(들어가는말), '당신의 증오는 정당하다'(맺음말)을 읽으면 이 책의 초점은 가해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에게만 잘못을 따져 묻는 것 역시 아니다. 소개된 다섯 사례를 하나씩 살피면 글쓴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각 장에 부연된 소제목에서 얻는 실마리는 강력하다. 가학적 가해자, 이기적 가해자, 무고한 가재자, 마조히즘적 피해자, 모스크바 재판.
사람과 사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지, 나는 생각해본다.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고 상처를 주었고, 나의 무의식에는 어떤 억울함이 억압당한 채 이를 갈고 있을까. 두려워진다. 나는 그때그때 감정을 억눌러 표면적으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뒤로 감추고 대신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감지하는 데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증오의 기술』에서 소개되는 다섯 사례들 가운데 나는 어느 한 경계에 속할 수도 있고, 이질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심정에 내가 동화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4장 '마조히즘적 피해자'에서 울컥 치미는 것이 있었지만, 나는 만취한 택시에서 구토를 내리누르듯이 억제해버렸다. 실컷 울어도 좋을 것을, 실컷 웃어도 좋을 것을. 지금도 나는 '나의 감정'에 무심하다.
소개된 사례나 글쓴이가 사용하고 있는 상담이론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각각의 사례들이 전달해주는 내용들에서 나는 여러 차례 동일시를 느꼈고, 감정의 정화를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증오의 기술』은 쓴 칡뿌리 같은 책,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