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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평점 :
아빠 어디 가?
고속도로로 가지. 역방향으로 말이야.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던 뒤틀린 몸을 기억한다. 죄수처럼 박박 깎은 똥그란 머리, 길고 여윈 팔과 다리를 기억한다. 구겨진 목에 허옇게 번져 있던 버짐 위로 해쭉이 웃던 입 모양새를 기억한다. 병신! 아이들은 그렇게 불렀다. 내 친구의 형이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했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던 그는 그래도 잘 웃었다. 동네 어귀 버스정류장에 서서 지나가는 버스와 그 안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스쳐가는 버스를 향해 길고 힘없는 팔을 흔들어댔다. 세상을 향해 힘없는 손짓을 하던 그 사람은 아직 거기 서 있을까.
아빠 어디 가?
알라스카로 가지. 가서 백곰을 쓰다듬어주자꾸나. 그리고 백곰한테 잡아먹히는 거야.
내 유년의 기억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구나. 내 가까운 친구는 외팔이었다. 공부를 잘 하고 씩씩한 아이였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팔로도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왼손으로 쓰는 글씨는 가지런했다. 한 손으로 설거지도 잘 했다. 그림도 잘 그리고 붓글씨도 잘 썼다. 나는 그 아이의 장애를 의식하지 못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여름 내내 그 아이는 긴 소매 옷을 입고 다녔다. 겨드랑 부근에 그늘처럼 번져있던 땀자국에서 나는 그 아이의 장애를 보았다. 우리끼리 있을 때에 그 아이는 어느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였다. 세상의 시선이 아이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었을 때, 동창회에서 만난 그 아이는 무언가 달라 보였다. 그토록 혐오하던 예수쟁이가 되어 있었다. 어색하게 손을 맞잡았을 때, 딱딱하게 감각되는 차가운 의수(義手). 그 아이에게 무거운 가짜 손을 달아준 것은 세상의 편견이 아니었을까.
아빠 어디 가?
버섯을 따러 간단다. 독버섯을 따서 그것으로 맛있는 오믈렛을 해먹자꾸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결함이 있다. 불완전한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다. 그래,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만나도 뚫어지게 쳐다보면 안 된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기우뚱 흔들리게 마련이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사는 게 즐거울까. 나라면. . . 만약에 나라면, 하고 생각해 보는 때도 있다.
아빠 어디 가?
수영장에 가자. 가서 제일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자. 물 한 방울 없는 풀장으로 말이야.
토마와 마튜는 정신지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제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마 세상이 까맣게 변해버리겠지. '눈에 보이는'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울지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미 세상 '편견'의 일부여서일 것이다. 푸르니에는 토마와 마튜의 아빠이다. 그 역시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두 아이를 태연하게 맞을 수는 없었다. 연달아 장애아를 낳은 그는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큰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도록 장난감 큐브와 인형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과 살아보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아직도 나이가 서른인 것 같다고, 세상 만사가 두렵지 않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이어가는 푸르니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잠깐 망설이다 웃어버렸다. 크크큭. 크큭큭큭큭. 웃으니 웃겼다.
아빠 어디 가?
바다에 간단다. 몽셍미셸에 가지. 가서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걸어다니자꾸나. 그러다 그 모래 속에 둘 다 빠져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야.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해 나는 아직도 태연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은 불편해질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섣부른 연민을 품거나 과장된 친절을 베풀지도 모른다. 두려움 섞인 혐오감을 느끼고 자리를 피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병신'들이 사는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 가?" 토마의 끝없는 질문이 문책으로 들리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토마를 바라보거나 멀리 간 마튜를 생각할 때면, 과연 아이들을 만들어낸 것이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마 아이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느꼈던 작은 기쁨, 스누피 인형, 따뜻한 목욕물, 고양이의 부드러운 몸짓, 햇살, 공, 마트 산책, 타인의 미소, 장난감 자동차, 감자 튀김. . . 이 모든 것이 있어 아이들의 삶도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면, 하고 바라본다. " (169쪽)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고귀한가. 우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뭇 심각해져버린 내 마음에 대고 토마가 속삭인다. 아빠 어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