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와중에 사망해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사학자
김성칠의 6.25 당시의 일기가 10년 전 쯤 출판되
었었던 <역사 앞에서>를 읽으며 조용하고 순박하
다는 성격을 바로 들여 보는 듯 재미있게 읽으며
공감을 많았던 것 같다.

그 때 쓴 일기를 우연히 오래만에 들추다 보니
그 책의 감상문이 나와 있다.

남의 일기를 읽어 본다는 건 재미있다. 게다가
6.25 전후의 역사의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
게 해 주고 있다. 그 보다도 내가 쓰는 글 대부
분이 일기인데, 새삼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 가를 배우고 싶어
서이다. 한 대목이 가르침을 준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툰 일이 있을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흥분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그리고 싶지 않으며
평상적이 아닌 내 마음으로 평상적이 아닌 저쪽의 자태를 그려서
앞으로 자손의 눈에라도 비칠까 두려워하는 바이며,  또... 그러
한 기록을 통하여 내 사랑하는 사람의 왜곡된 이미지를 문자에
표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내 머리 속에 고정화하고 또 그 표현을
시시로 읽음으로 해서 더욱 불순한 환영을 내 가슴 속에 날인함
으로써 공연한 불신과 증오를 조장해서 피차의 생활을 불행에
이끄는 결과가 될 것을 저어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동감이다!

자신만의 글이라는 일기가 출판되어 시대를 뛰어 넘어서 후대에게
교훈을 주며 공감을 일으킨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기도 문학의 한 영역이요, 역사학의 1차 사료가 되고 있으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이 쯤 되면 하찮은 글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서 써야 되겠다.
역사 앞에서 일기를 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시집은 별로 안 사는 편인데 글자보다 백지가 압도적이어서 좀 아까운 느낌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가 삶의 의미를 가장 깊게 압축해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시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 취미 중의 하나가 시를 모으는 것이 되었다. 처음엔 가곡을 듣다가 가사가 좋아서 받아 적어보기 시작했다. 잘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반복해 듣다보면 다 적을 수 있게 되기에 그 맛에 모으기 시작해서 책이나 신문에 나온 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놓는다. 그렇게 모은 시들을 골라 내 홈페이지 한 쪽에 올려 놓곤 한다.


시를 낭송해 주는 KBS TV의 <낭독의 발견> 예고를 우연히 보고 기뻤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방송 홈페이지의 다시 보기로 보고 있다. 매주 시인이 초대되어 직접 낭송하는 것을 비롯해 어린이들이나 성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낭송해 주고 낭송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TV로 보기에만 익숙해져 사라져 가는 낭송의 매력을 일깨워 주는 보석같이 빛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만 하다.


그렇지만 내게 더욱 매력적인 건 방송 홈페이지의 낭독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시 원고들이다. 걸신들린 듯 베껴 오는데, 낭송을 들으며 원고를 읽는 재미! 간혹 원고에 오탈자(誤脫字)가 발견되면 채워 넣는 취미가 발동한다.

 

방송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시 한 수!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끝에서 풀잎끝에서

 내 영혼의 현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상이최고야 2004-02-0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몰랐어요. 저도 한번 클릭해서 보고 싶네요. 1월이란 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울 2004-02-0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좋네요. 저도 그 프로 무척 좋아합니다. 우연히 몇 번 보고 반했더랬죠. 하지만 게으른 탓에 매 주 찾아서 보기가 쉽지가 않더라구요. 홈페지에 들어가 보는 법이 있음을 지금 알았으니 저도 종종 이용해야겠네요.
 

 

며칠 전 TV에서 노블레스오브리쥬(noblésse oblíge),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에 대해 다루었다. 우리 사회에서 높은 신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덕성이 아예 없다. 그들 거의 대부분 정경유착의 산물이었기에 불법으로 얻기 위해 바친 획득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란 것을 의식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오블리쥬의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2대, 300년 간 만석꾼, 경주 지역 최고의 부자였던 최 부잣집을 그 예로 들고 있다. 구한 말, 부잣집만을 골라 강탈했던 활빈당의 습격을 유일하게 받지 않고, 오랜 기간동안 지역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이유는 최 부잣집의 가풍 있었다.

'만석이상은 하지 마라, 주변 100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일 때 땅을 사지 마라, 벼슬은 진사이상 하지 마라.'

지금도 준수해야 할 지침들이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소수이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를 지탱시켜 주고 있는 소리없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음력 섣달 그믐밤이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오래전에 읽었던 노신의 단편 <축복>이 생각나곤 한다. 화자(Speaker)는 세모에 고향에 있는 사숙 집에 와 묵으며 그 집에 식모로 있었던 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두 번 시집을 가서 두 번 다 남편이 일찍 죽고 아들마저 이리에게 물러 죽는 바람에 서서히 폐인이 되어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던 그 집에서 쫓겨나 거지 신세가 된다.

 

화자를 우연히 만나자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느냐, 죽으면 다시 만나게 되냐고 묻는다. 난처해 우물쭈물하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무심코 말해 버린다. 편리한 대답을 했을 뿐인데, 다음 날 그 여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히 그녀를 회상하는데 폭죽이 터진다.

 

중국의 세모의 풍속인 부엌 신인 조왕신(竈王神)이 승천하는 송조(送竈) 때 엿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며 터트리는 폭죽이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편리한 대답 때문일 수 있다는 우울한 마음이 폭죽 소리를 들으며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자신으로선 영혼의 유무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물의 신인 조왕신이 세모에 하늘에 올라가서 옥황상제에게 그 집안일을 보고한다는 것이다. 나쁜 일을 많이 한 집에선 조왕신이 입을 열지 못하게 부뚜막에 엿을 발라 놓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데 비슷한 것 같다.

 

착하게 산 사람에게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서양 풍속과 일맥상통한 게 아닐까....

 

영혼의 유무를 떠나 어디에서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쉘 위 댄스]는 일본 영화다.  직장과 가정 밖에 모르고 시계추처럼 충실
히 출퇴근하던 어느 셀러리맨이  우연히 전철 차창으로 댄스 교습소의 창
가에 서서 뭔가를 기다리듯 바라보는 미모의 여인이 눈에 뜨였다. 그리고
날마다 퇴근길에 그 여인을 지켜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마력에 끌린
듯 전철에서 내려 교습소까지 가게 되고 떠밀려 들어가 댄스 교습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그의 생활은 활기에 넘친다. 그가 피곤해 한다고 걱정하던 아내
가 그의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불안한 나머지 탐정에 의뢰해 그의 변화의
원인을 다 알고서도 내색하지 않고  그가 먼저 털어놓기를 조용히 기다리
는 따스한 가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을 위해 혼신을 다해 오다가 마침내 성취한 다음
에 중년이 느끼게 되는 허탈한 심정과 일상 탈출 이야기는 뻔한 스토리라
고 할 수 있다.

10가지나 되는 사교 댄스를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게 펼쳐지는데  이 영화
의 매력이 있다.  주인공이 교습소에 끌려가게 되었던 창가에 서 있던 미
모의 여인은 2년전 세계 대회에 도전하다 파트너의 배신으로 좌절해 있던
뛰어난 댄서였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자기 때문에 댄스를 배우려 한다면 그만두라고 냉정하
게 말하지만 이미 댄스의 세계에 도취하게 된 주인공은 그게 아니라는 것
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진지하게 연습을 해서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게
된다.  대회에 나가게 된 그를 위해 특별 지도하던 그녀는 주인공의 진지
한 자세에서 포기했던 자신의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게 된다.

유학을 떠나게 된 그녀를 위한 환송연에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파트너를
선택해서 댄스를 추라고 하자 주인공을 선택하고 댄스를 환상적으로 추면
예술 영화에 가까운 매력적인 영화가 되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