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시집은 별로 안 사는 편인데 글자보다 백지가 압도적이어서 좀 아까운 느낌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가 삶의 의미를 가장 깊게 압축해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시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 취미 중의 하나가 시를 모으는 것이 되었다. 처음엔 가곡을 듣다가 가사가 좋아서 받아 적어보기 시작했다. 잘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반복해 듣다보면 다 적을 수 있게 되기에 그 맛에 모으기 시작해서 책이나 신문에 나온 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놓는다. 그렇게 모은 시들을 골라 내 홈페이지 한 쪽에 올려 놓곤 한다.


시를 낭송해 주는 KBS TV의 <낭독의 발견> 예고를 우연히 보고 기뻤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방송 홈페이지의 다시 보기로 보고 있다. 매주 시인이 초대되어 직접 낭송하는 것을 비롯해 어린이들이나 성우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낭송해 주고 낭송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TV로 보기에만 익숙해져 사라져 가는 낭송의 매력을 일깨워 주는 보석같이 빛나는 프로그램이라고 할만 하다.


그렇지만 내게 더욱 매력적인 건 방송 홈페이지의 낭독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시 원고들이다. 걸신들린 듯 베껴 오는데, 낭송을 들으며 원고를 읽는 재미! 간혹 원고에 오탈자(誤脫字)가 발견되면 채워 넣는 취미가 발동한다.

 

방송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시 한 수!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끝에서 풀잎끝에서

 내 영혼의 현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상이최고야 2004-02-0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몰랐어요. 저도 한번 클릭해서 보고 싶네요. 1월이란 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겨울 2004-02-0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좋네요. 저도 그 프로 무척 좋아합니다. 우연히 몇 번 보고 반했더랬죠. 하지만 게으른 탓에 매 주 찾아서 보기가 쉽지가 않더라구요. 홈페지에 들어가 보는 법이 있음을 지금 알았으니 저도 종종 이용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