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유등 축제를 다녀와서(2004년 10월 3일)

   올 봄까지 큰언니가 진주에 살고 있었다.그래서 제법 자주 진주에 내려가곤 했다. 작년에는 언니집을 갔다가 유등축제가 열리는 것을 보고 언니네 가족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고 올라왔었다.

  올해는 신문을 보고 유등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언니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해서 멀뚱거리고 있다가 친구와 일요일 오후에 잠시 내려가서 보고 왔다

  유등축제는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 작전 저지용으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이는 유등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오다가 오늘날의 유등축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해저물녘에 도착하니 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촉석루 앞을 흐르는 남강에 아시아 여러 나라의 등을 띄어 놓은 것을 보고 예술회관 앞에서 언니를 만나 밥을 먹고 오니 강 위에 수많은 등불이 꽃처럼 피어있었다. 한켠에는 시민들이 띄워놓은 소망들도 떠 다니고, 촉석루 맞은편 고수부지엔  붉은 홍등에 저마다의 소망을 적어 걸어두었다. 사람들에 밀려 다니며 강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학생과 시민들이 만든 아이디어 등을 전시한 두 동의 터널이 있었다. 이 곳에 전시된 등들은 진주시내 학생, 시민들이 전통 한지 뿐만 아니라 나무 저, 계란 판,플라스틱 바구니 같은 폐품을 이용해서 등을 만들어 걸어놓았는데  등에 달린 소망들이 참 재미있었다. 공부 잘하게 해 달라는 이야기에서 부터, 동방신기 엘범 잘 팔리게 해 달라는 이야기...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을 다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마음 씀씀이가 고운 아이의 소망까지.  유등축제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재미있다.

  축제의 계절 가을이다. 어느 고장을 가든 그 고장의 특색을 살린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가을날 부지런히 길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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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다. 오늘 현정이와 생활글을 쓰면서 '칭찬'이 가진 힘을 절감했다.

  현정이와 같이 방과후 미술 특강을 받는 아이중에 평소 남의 기분 생각 않고 잘난 체 하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모양이다. 그 아이가 학교 대표로 뽑혀 그림 그리기 대회를 2번 나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무슨 말만 하면 "나는 이번 주, 다음 주 다 그림 그리기 대회 나가잖아." 이렇게 말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반 아이들 중에는 그 아이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집에 오는 길에 현정이가 그 아이에게 "진영아, 내일 그림 잘그려."라고 인사를 하면서 "너는 그림 잘 그리니까 좋겠다." 하고 말했단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씩 웃더니 "너도 처음인데 그림 잘 그리잖아."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현정이는 이 말을 듣고 아주 놀랐단다. 그 아이가 누구를 칭찬하는 것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도 그 냥 "나는 이쪽으로 간다." 이러면서 휑 가는데 오늘은 "너는 걸어가제. 나는 학원차 탄다, 안녕" 이러면서 손까지 흔들며 가더란다.

   자기 밖에 모르고 고집 센 친구도 칭찬 앞에서는 마음이 너그러지는 것을 보고  잘난척 하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았단다. 

  나도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잘하는 편이지만 동료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기분 좋은 말 한 마디로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현정이 이야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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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때는 그 나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아유타야 유적지를 볼 때는 그렇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었다.그런데 앙코르 유적지는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해간 탓에 룰루오스 유적군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군은 목표한 대로 다 돌아봤다. 3일동안 내가 신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힌두교 신화 속에 푹 빠졌다 돌아왔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순박한 사람들과 싼 물가 편리한  관광 시스템이 참 편하고 기분 좋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내가 캄보디아를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걱정을 했었다. 오랫동안 내전이 있었던 나라라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약간의 모험이 필요했지만 또 다른 역사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모험에 따른 불안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글로벌 하우스에서 점심 밥을 2달러 주고 먹고, 1시 넘어서 캄보디아 국경으로 출발했다. 이런저런 기념품을 샀더니 짐이 많이 불어났다. 그런데다가 저녁에 희진씨랑 먹으려고 샀던 맥주랑 안주를 챙겨 들었더니 손에 줄줄이 짐이 들렸다. 그렇지만 기분은 참 좋다

                                          (태국에서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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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엠립강 오른쪽에 있는 유적 보기

  희진씨가 태국으로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 갔다. 7시까지 여행버스 예약한 곳에서 데리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올 때 와 달리 우리도 오전 투어만 하고 (룰루오스 유적군 보는 것은 포기하고)태국으로 가기로 해서 서둘렀다.  7시 30분에 희진씨 보내고 우리는 서둘러 쁘라삿 끄라반을 갔다.

쁘라샷 끄라반- 왕의 명령으로 지으진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이 곳은 어느 귀족이 개인적으로 지은 사원이란다. 보통의 사원들은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빙 둘러 4개의 탑이 있는데 이 곳은 특이하게도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좌우로 2개씩 탑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이것이 이 사원의 전부다. 톰마논을 먼저 가지 않고 맨 마지막 코스를 먼저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기도 상쾌하고 좋다. 이틀동안 정신없이 다녔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조용하게 메모도 하면서 유적은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성소탑 맨 왼쪽 벽돌로 된 방벽 방 3면에는 여러 가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여신이 명상중인 신도들 사이에 서 있고 옆에서 도마뱀이 기어오르고 있는 그림도 있다.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니 하나둘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띠아이 끄대이 와 그 앞에 있는 쓰리쓰랑 .  이 곳은 탑문이 앙코르 돔 남문의 탑문과 비슷하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부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사원이 너무 많이 허물어져서 그런가 인자하고 넉넉한 부처의 얼굴이 아니라 가만히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웬지 가슴이 짠하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 돌아보니 탑문 밖으로 쓰리쓰랭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로 수 많은 방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규모가 아주 큰 사원이었던 모양이다. 1960년 이 곳을 복원하려고 했을 때 원주민들이 수 많은 방들마다 염소를 키우고 있었단다.그래서 더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싶다. 무희홀을 지나 탑문을 들어서서 내부를 둘러 보니 건물잔해에 아름다운 부조들이 많이 남아있다. 성소로 들어가다 말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주황색 사리를 걸친 스님 두 분이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들고 들어오고 계신다. 합장을 할 생각은 않고 사진부터 찍는다.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은 지나 서쪽 탑문으로 나갔다. 그런데 서쪽 탑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사방에 막대기를 바쳐 놓았는데도 위태롭다. 이 곳도 거대한 열대나무와 유적의 싸움에서 유적이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 아열대 나무들의 뿌리는 얼마나 거대한지 유적과의 공존을 꾀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유적을 내리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쪽 탑문 있는 곳에서 보니 성소탑 같이 생긴 탑들이 거의 허물어지긴 했지만 탑이 많다. 세어 보니 9개나 된다. 이 곳은 대체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내부 벽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정성을 많이 들여 지은 것 같은데.

  스리스랭- 반띠아이 끄데이 앞에 있는 왕실 전용 수영장이었단다. 다른 저수들은 건기에 물이 말라도 이 곳은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단다.  

  따쁘롬-그 유명한 영화 툼 레이더를 이곳에서 쵤영했다고 해서 더 많이 알려진 그 곳.이 곳을 다녀온 여행자가 말하기를 ‘이 곳처럼 아름다운 폐허가 없다’고 했던가. 이 사원은 효성이 지극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브라흐마 신에게 헌납한 사당겸 사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건축물을 남긴 그가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 이 건물이라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지었을까? 그런데 사원은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그 훼손의 주범이 열대 나무들이고.

   열대 나무의 그 튼실한 뿌리가 여러 개로 갈라져 그 중 한개는 사원의 탑 가운데를 펀치를 날리듯 쫙 뻗어 뿌리를 내린 곳도 있고, 탑을 밀어 내듯 좌우로 꽉 쪼아 숨통을 조이고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건물이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열대나무의 생명력에 경외감이 일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나무들도 밉지 않고 허물어진 유적들도 흉물스럽지 않다. 담 위에 타고 앉은 거대한 뿌리와 그 밑에서 숨쉬기 조차 힘들 것 같은 담을 보고 있으니 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긴 하지만.

  무희들의 홀을 지나 동쪽 탑문 쪽으로 가니 캄보디아 악기를 팔고 있다. 동생 사 줬으면 딱 좋겠다.우리 나라의 해금 비슷한 악기다. 뱀 가죽과 캄보디아에서 나는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이라는데 나무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니스를 칠해 억지로 윤을 내지도 않았고. 흥정을 해 보니 15달러에서 10달러까지 내려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지고 갈 일이 걱정이다. 바로 집에 가면 모를까 며칠을 가지고 다녀야 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안 샀다. 돌아서 나오는데 그 가격이 8달러까지 내려간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따께오-쉬바신에게 바쳐진 사원들이 그렇듯이 주변에 4개의 탑이 둘러 싸 있고 가운데 성소탑이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타프롬을 갔다가 승리의 문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따께오가 있다. 길가에 있어 뚝뚝이에서 내리면 몇 미터 거리에 이 사원이 그대로 보인다. 이 사원을 오르면서 보니 난관이 없다. 그래서 2층을 한바퀴 돌아보려면 심장의 벌렁거림을 다스리며 돌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이 그다지 정성드려 지은 사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다가 올라가는 계단은 또 얼마나 가파른지, 다행히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신의 영역에 다가갈 수록 계단의 각도가 완만해 진다.

  참고 올라간 3층 성소,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아니 모셔놓았다기 보다는 그냥 덩그마니 놓아 두었다. 성소탑을 둘러보고 주변 탑들을 돌아보는데 어느 탑 앞에 서니 냉장고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하다. 서늘한 바람이 끈적거리던 물기를 다 데려간다.

  톰마논-성소탑 좌우로 건물이 길쭉하게 늘어져 늘어서 있는 작고 아담한 사원이다. 쁘라삿 끄라반은 붉은 라테라이트로 지어져 단순하게 줄 늘어서 있어도 참 예뻤다. 그런데 이사원은 비슷비슷한 수많은 사원은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사암으로 지어진 자그마한 사원이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되는 것이 없다.

  유적지 관람을 다 끝내고 돌아올 때 지뢰 박물관을 들렀다. 나비 정원을 가려다가 아똑이 정확하게 위치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지도상으로 보아 앙코르 유적지와도 꽤 떨어져 있어 글로벌 사장님과 약속한 시간까지 가기가 힘들 것 같아 가까운 앙코르유적지와 가까운 지뢰 박물관으로 갔다. 이 곳은 아똑도 잘 아는 곳이었다

  지뢰박물관-지도상으로 보니 앙코르왓 앞에 있더니만 앙코르왓을 나와 한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가니 지뢰박물관이 있었다. 일반 가정집 만한 규모의 건물 안에 캄보디아 곳곳에서 수거한 지뢰들을 쓰레기처럼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둘러보니 지뢰 모습도 가지가지, 크기도 가지가지다.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곳곳에 붙여 놓았다. (이곳에는 지뢰로 인해 다친 아이들이 공동 생활을 하는 곳인지 아니면 재활 훈련을 하는 곳인지 밥을 먹고 함께 모여 생활하고 있는 곳도 보인다.). 서양 아이 하나가 일행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데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보이는 것만 둘러보고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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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코르 왓 과 프놈바켕을 보러 가다- 



  앙코르왓. 수르야바르만 2세가 비쉬누 신에게 봉헌한 사원이자 자신이 사후에 묻히기 위해 37년간이나 공을 들인 사원.이것이 이 사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의 전부였지만 참으로 궁금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는 앙코르왓이.



  과연 듣던 대로다. 참으로 대단하다. 1층 갤러리 동서남북에 새겨놓은 부조는 수천 수백만권의 동화다. 그런데 문득 그 시대를 살던 하층 민들이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놀란 입은 다문다



  해자 테라스에서 저수지 가운데로 난 진입로를 따라 탑문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참이다. 뒤에 보이는 탑문과 성소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사람들도 구경하며 가니 재미있다. 단체로 관광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밀려 다니는 것 같다.



  탑문을 들어서니 빙 두른 담이 골목길 같이 길게 이어져 있다. 웬만큼의 거리면은 한 바퀴 돌아볼 엄두를 내 보겠는데 어림을 해 보니 엄두가 안 난다. 탑문 안으로 들어섰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탑문 안의 규모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탐문 입구에서부터 명예의 테라스를 지나 1층 갤러리까지 이어진 진입로가 방금 지나온 길 못지 않게 길게 늘어져 있다. 신전까지는 한참을 가야할 것 같다.



  진입로를 걸어 들어가는 길 양쪽에 있는 장서각 중 왼쪽은 수리중이라 바침목을 여기저기 세워 놓고 사람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은 앞에 있는 털실공 같이 생긴 나무 한그루와 풀밭과 어우러져 참 예쁘다. 장서각 난간에 기대 서양 아이 하나가 한가롭게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부럽다.



  십자형 나가 테라스를 지나니 앙쪽이 연못, 그런데 물이 거의 말라서 없다. 오른쪽 연못 터에는 소가 풀을 뜯고 있고 왼쪽 연못에는 물이 제법 남아 연꽃이 많이 피어있다.



  명예의 테라스를 지나 1층 갤러리 안으로 들어섰다. 자료를 보니 서쪽에서 오른쪽으로 남쪽, 동쭉, 북쪽 순으로 돌며 부조를 보는 것이 순서라고 해서 자료를 보며, 단체 관광객 가이드의 설명도 흘려 들으며 돌았다. 서쪽 갤러리 오른쪽에 있는 1번 부조를 보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시간이 넉넉하면 앙코르왓을 하루나 이틀 정도 잡고 와서 쉬엄쉬엄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료집을 보지 않고 나름대로 상상을 하면서도 보고. 자료집을 보며 견주어 봐도 재미있겠는데. 일단 1번,3번,4번,5번,11번 부조를 중심으로 봤다. 쿠륵세드라전투 장면,수르야바르만 2세의 승전도와 백성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 염라대왕의 심판 모습과 천국과 지옥의 모습,.....신들과 악마의 전투모습.. 랑카의 전투장면 등 수백권의 그림 동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이 갤러리에는 당시 크메르인들이 지키고 배워야할 덕목을 고스란히 새겨 놓은 그 당시 백성들의 사회규범 교과서 였다는데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에게 사회 규범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것 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었을 것 같다



  한 바퀴를 돌아 다서 서쪽 갤러리로 나와 중간단을 통해 2층 갤러리로 올라갔다. 힘들다. 다녀온 사람들이 왜 캄보디아를 갈려면 한 달 전부터 워밍업을 해야한다고 했는지 조금씩 알 것 갔다. 무너진 돌더미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2층 갤러리를 돌았다. 2층 갤러리 통로에는 좌불을 안치해 놓았는데 목이 붙어 있는 부처님이 거의 없다. 힌두교 관련 유적들도 파괴도 심하지만 불교 관련 유적들도 훼손이 심하게 되었다.



  3층 성소를 쳐다보니 까막득히 높은 곳에 있다. 3층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 이를 데 없다. 70도라는데 아래에서 쳐다보니 거의 직각에 가깝다. 그런데다가 계단의 폭은  우리 나라 계단의 반 정도 밖에 안된다. 성소는 인간을 위해 지으진 건물이 아니라 신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을 겁도 없이 뻣뻣하게 서서 지그재그로 재미있게 올라가다가 반쯤 올라가서야 인간이 신의 영역에 발을 디뎌놓으려면 자신을 낮추고 올라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올라갔다.그런데 희진시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거의 기어서 올라오고 있다.



  3층의 올라서니 참 시원하다. 속세 사람들의 번뇌가 씻게 나갈 것 갔다. 신들이 이 곳에서 인간세상을 굽어보면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고 아귀 다툼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것 같다



  창틀에 기대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창틀 밖으로 나와 난간에서 성소탑을 올려다 보고 있는 사람,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 쉬고 있는 사람, 3층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한가롭다. 희진씨와 나도 창문틀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앙코르왓은 힌두교 사원인데 성소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그것도 두 분이나.  앞에 계신 부처님은 누워 계시고 뒤에 모셔진 부처님은 서 계신다. 다른 사원과 2층 갤러리에서 뵌 부처님은 재색 사암으로 조각된 부처님이거나 금박이 입혀진 부처님이었는데 이 곳에 계신 부처님은 라테라이트는 아닌데 붉은 색 빛의 돌에 부처님을 새겼다. 돌이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하다. 합장을 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앞에서 절을 하고 계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 성소를 들어가 누워 계신 부처님 등을 만지신다. 급한 김에 한국 말이 튕겨나온다.



  “어머, 아줌마, 뭐하세요? 빨리 나오세요?”



  다행이(?) 한국인은 아니다. 그런데 볼 일 다 보고 나온다. 누가 누워 계신 부처님 등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나 보다



  성소를 내려오는 길, 희진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못내려 갈 것 같다고 해서 난간이 있는 남쪽 계단으로 가고, 나랑 은희씨는 다른 쪽 계단으로 훌렁훌렁 내려왔다.



  서쪽 문으로 나와 담을 돌아 탑문 쪽을 나가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탑문 안 왼쪽에 있는 연못을 지나왔다. 연못에 연꽃이 피어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연못에 앙코르왓의 모습이 비친다. 참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연못에 핀 연꽃과 앙코르왓이 어우러져 표현할 수 없을 만틈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한참을 보고 있다가 입구로 나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봐 진다. 소중한 뭔가를 두고 온 것도 아닌데. 





    (해질 무렵의 앙코르 왓 풍경)



프놈바켕-



곳은 사방의 풍경이 어느 사원 보다 좋았던 곳이다.앙코르왓을 보고 프놈바켕에 일몰을 보러 올라갔다..아똑이 예정 시간 보다 늦게 나온 우리 보고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시간이 많이걸려서 잘못하면 일출 보기 힘들것같다고 하더니 정말 앙코르왓 성소 올라가는 것 보다 더 힘들고 가파르다. 앙코르왓에서 기운을 다 뺀 다리는 이제 후들거린다. 그런데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니 또 계단이 헉~  가파른 계단을 5층이나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사원은 9세기말 야소바르만 1세가 룰루오스를 버리고 수도를 이 곳 앙코르로 옮기면서 쉬바신에게 이 신전을 지어 바쳤단다. 앙코르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사원이라서 그런지 밖에서 보긴엔 단순해 보인다.그냥 크기가 다른 사각형을 몇 개 포개 논 것 같이, 단만 몇 겹 쌓아 올려 놓은 것 같이 보인다.그런데 자세하게 보니까 좀 특이한게 있다. 5단이나 쌓아서 성소탑을 지으놓은 것도 독특하지만 올라가는 코너 뿐만 아니라 가운데 계단과 코너 사이에 한줄로 늘어선 탑들이 더 있다. 그래서 다른 사원보다 탑이 많다.



  5단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아래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사방이 툭 트여 볼만하다.저 멀리 앙코르왓도 밀림 속에 미니어춰처럼 보이고, 우리가 캄보디아 온 첫날 보았던 톤레삽 호수도 여기서는 보인다.그런데 저 멀리 산도 보이네.복산과 꿀렌 산이란다. 캄보디아에서 산은 처음 본다.  야트막한 비탈길 계단산을  올라와 5단 계단을 올라왔으니 높게 올라오긴 왔나 보다.



  그런데 다들 톤레삽 호수쪽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려고 앉아있다. 톤레삽에서 일몰을 제대로 못봤는데 잘됐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바람을 쏘이며 앉아 있으니 시원하고 좋다. 쁘레아 룹에서 일몰을 볼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보다 이곳에 일몰 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다. 뿌레아 룹에서 일몰을 기다릴 때는 호젓한 기분까지 들었는데 여긴 앉을 자리가 없다. 갑자기 서양 남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북 같이 생긴 캄보디아 악기를 둥둥친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 남자에게로 쏠린다. 그러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놀라 도망을 친다.연주 좀 하지. 음악(?)들으며 노을 보는 것도 괜찮은데.



  그런데 기다리던 일몰은 시시하다. 어두워 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오는데 오던 길은 너무 복잡해 몇 명의 서양인과 인솔자가 내려 가고 있는 길을 따라 내려 갔다.북쪽으로 내려 오는 계단은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다. 단이 허물어져 내려 가는 길을 막아 사람들이 별로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려 오는 계단 옆으로 사자들이 사열하듯 서 있다. 뒤에서 보니 사자들이 먼 산(복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프놈바켕의 일몰)



  내일은 희진씨가 태국으로 가는 날이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파티를 열기로 하고 앙코르 마트에서 맥주를 한 캔씩 샀다. 저녁을 먹고 5달러 달라는 것을 깎아 4달러에 발 맛사지를 받았다. 하품을 컥컥하며 맛사지를 하는 폼이 영 성의가 없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끊임없이 떠들던 은희씨도 코를 골며 자고 나도 비몽사몽간에 맛사지를 받았다. 그런데 돌아오니 희진씨가 잔다. 은희씨는 내가 샤워하고 나오는 사이 씼지도 않고 쓰러져 잔다. 씻고 자라고 은희씨를 깨웠건만 반응이 없다. 그래서 맥주도 한잔 못하고 희진씨를 그대로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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