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 바로 보기
(네이버 지지맘 홈피에서 퍼왔어요)
이송희
1. 옛이야기의 세계
옛이야기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나는 놀란 게 참 많다. 옛이야기는 그저 권선징악의 교훈만 드러내는 우화 같은 이야기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옛이야기는 자아실현이라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고, 철저하게 약자와 못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동물과 인간,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묘사 없이 간결하게 전개되는 깔끔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옛이야기는 천우신조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면서 부정의 눈으로 보고, 여자가 남자 때문에 신분상승하는 이야기로 쉽게 단정해 버리고, 사실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라면서 치워 버린다. 그러면서 교훈을 날것으로 담고 주입하는 우화는 아이들에게 꼭 들려 주어야 할 이야기로 알고 있다. 이번에 초등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를 살펴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초등 국어 교과서에 적지 않은 옛이야기가 실렸는데, 옛이야기의 문학성과 본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우화로 떨어뜨리는 것 투성이었다.
2. 교과서 옛이야기의 흐름
○권선징악의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들
옛이야기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등장인물의 삶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진실을 절로 깨닫게 된다. 그런데 초등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에는 가난하고 힘없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복받는다는 주제를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이는 이야기가 없었다. 뚜렷하게 선과 악을 맞세워 선이 복받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거의 없고, 어떤 이야기들은 선악의 개념조차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또 이야기를 함부로 고치거나 재화하여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거나 이야기의 맛을 빼앗고, 그 주제를 의심케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2학년 1학기)는 본디 백성의 마음을 잘 드러낸 좋은 옛이야기이다. 백성의 소리는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고, 진실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우리 겨레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통쾌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이 이야기는 임금이 백성 말을 잘 들어 귀가 커진 것으로 둔갑했다. 옛이야기에서 재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재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권선징악의 주제가 백팔십도 뒤바뀌어 힘없는 백성이 아닌 권력자가 복을 받고, 백성을 억압한 죄를 용서받기도 한다. 교과서에 실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부자가 된 머슴>(3학년 1학기)은 3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한 복동이와 길동이에게 새경을 주지 않으려는 주인의 속셈에 걸려들어 길동이가 새경을 받지 못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3년 동안 열심히 일한 복동이와 길동이에게 새경을 주지 않으려 느닷없이 가는 새끼를 꼬으라고 말하는 주인의 흉계는 가려지고, 길동이만 마지막에 꾀를 부리는 게으른 아이로 그려진다. 3년 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약은 꾀를 부리는 주인과 그 꾀에 걸려 끝내 새경을 받지 못하는 길동이 가운데 우리는 누구에게 벌을 주어야 하나?
6학년 1학기 교사용 지도서 235쪽을 보면 보충자료로 <초등 학교에서 지도할 바람직한 설화 작품 내용>이라 해 놓고 그 한 가지로 '빈부,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 등이 무조건적인 대립 양상으로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옛이야기를 골랐을 테니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교과서에 거의 실리지 않은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전래동화에는 강하거나 부하거나 큰 존재에 대해 약하거나 가난하거나 작은 자가 잘 대비되어 있고, 이 대비에서 앞의 것은 어리석고 뒤의 것은 현명하여 마지막에는 반드시 뒤의 것이 이기도록 된다. 이것은 역사의 현실이 아니고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것을 권선징악으로 본다면, 세계의 위대한 문학의 고전들은 그 대부분이 필경 권선징악의 문학이 될 것이다. 이러한 민중들의 소망과 지혜가 담긴 교훈성이 있음으로써 전래동화는 오늘날까지도 문학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다.(≪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이오덕, 백산서당, 1984, 26쪽)
이렇게 선악을 뚜렷이 맞세워 보여 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두 가치관 가운데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 자기 속에 있는 선악의 두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을 키워 나갈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길동이가 복을 받지 못하고, 부자는 새경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는 <부자와 머슴> 같은 이야기를 보면 아이들은 정신의 혼란을 겪게 되고 가치가 뚜렷하지 않은 세계에서 불안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약하고 힘없는 백성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
교과서 옛이야기에는 약하고 힘없는 백성은 어리석게 그리고 양반이나 임금은 훌륭하게 그린 이야기가 많았다.<고지식한 농부>(6학년 2학기)에서는 농부를, 벼슬을 얻기 위해 삼 년을 서울에서 구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땅에서 뒹구는 바보로 만든다. 백성을 바보로 만드는 이야기의 한 예이다. 우리 이웃, 힘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무슨 꿈을 꿀지 걱정이 된다. <짧아진 바지>(3학년 2학기)는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아버지 말을 따른 딸들을 효녀라 칭찬하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는 봉건 시대에 나라와 임금에게 무조건 충성하기 바랐던 지배 이념을 그대로 드러낸, 지배자들이 퍼뜨린 이야기들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자식을 죽이거나, 파묻거나 해서 복받는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속한다. 유교 사회에
서 효는 곧 충으로 연결되는 것이니까. 아버지 바지가 무릎밖에 가리지 못할 정도로 짧아지도록 아무 생각 없이 '바지를 줄여 달라'는 아버지 말만 기계처럼 따른 딸들을 효녀라고 칭찬할 수는 없다. 슬기로운 가장과 식구들이 서로 도와 집안이 화목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은데 굳이 이 이야기를 실어 놓은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우리 겨레, 백성들의 정신과 바람을 간직한 참 우리 옛이야기에는 성실하게 일하는 백성들의 삶, 슬기로운 백성들의 삶이 나오지 이렇게 미련한 백성, 일하지 않고 횡재하려는 백성들의 삶은 나오지 않는다. 또 백성들은 무엇을 바라서 일하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일한 대가로, 슬기롭게 생활한 대가로 복을 받는 것뿐이다.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재주꾼 오형제> 같은 이야기는 저마다 재주를 가진 다섯 아이가 그 재주를 잘 살려 서로 힘을 모아 호랑이로 나타나는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자기가 가진 재주, 힘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일이지 <고지식한 농부>처럼 일하지 않고 벼슬을 바라는, 바보 농부 이야기를 들려 줄 일은 아니다. 또, 아무 재주 없는 것 같은 이웃들이 어려울 때 저마다 가진 재주를 발휘하여 서로 존중하며 도와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들도 많다. <할머니를 도운 달걀 자라 물개똥 송곳 멍석 지게> 같은 이야기는 아무 힘없는 달걀 자라 물개똥…같은, 우리 둘레에서 늘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웃)들이 저마다 숨겨진 힘을 써서 할머니를 도와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이야기이다. 늘 자기 곁에 있지만 귀함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이웃이 어려운 때에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자기를 둘러싼 이웃, 자연, 사물의 고마움을 절로 깨칠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달걀 자라 물개똥…의 모습을 절묘하게 살려 낸 의태어의 맛과, '할멈 할멈 왜 울우?' '이 팥죽을 먹고 나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먹는다고 해서 운다.' '팥죽 한 그릇 주면 안 잡아 먹지.'하는 되풀이 구조에서 오는 이야기의 맛이 뛰어나 듣는 이들에게 상상과 즐거움을 흠뻑 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싣지 않고 사람들을 한낱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이야기들을 교과서에 실어 놓았다.
○교훈만 날것으로 주는 이야기
교과서 옛이야기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뜻에서 실어놓은 것 같았다. 대부분 이야기들이 그 의도가 뻔히 눈에 보였다. 그 중에 <욕심 많은 개>(1학년 1학기), <충성스러운 개>·<욕심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원숭이의 재판>(1학년 2학기), <금도끼 은도끼>·<부엉이 새끼>(2학년 1학기), <꽁쥐 빠진 메추라기>(2학년 2학기), <상길이와 박서방>(4학년 2학기) 같은 이야기들이 그 본보기이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도 주고, 책도 주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날것 그대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푹 빠져 그 가운데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는 것이지. 교훈을 날것으로 줄 때 아이들은 그 주입식 교육이 주는 버릇에 길들여져 결국에는 주체성없는 타율의 인간으로 자라게 될 테고, 문학 작품도 삶이나 철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시대에 편승해 살
아가는 수단이나 방편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3. 옛이야기의 재미
이번에 겨레아동문학연구회에서 교과서 옛이야기를 살펴보고 너무 막막해서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먼저, 우리 국민이라면 어린시절 누구나 꼭 보고 지나가는 초등 국어 교과서에 우리 겨레의 삶, 정서, 얼이 나타난 훌륭한 옛이야기는 거의 실리지 않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좋은 형제>(3학년 1·2학기) 같은 외국 우화는 두 번이나 실어 그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좋은 우리 옛이야기는 모두 빠뜨리고 있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콩쥐팥쥐> <재주꾼 오형제> <할머니를 도운 달걀 자라 송곳 물개똥 멍석 지게> <구렁덩덩 신선비> <버리데기> <도둑나라를 친 새신랑> <반쪽이> 그밖에 우리 겨레의 얼을 간직한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왜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을까? 물론 <머리 아홉 달린 괴물>(도둑나라를 친 새신랑, 4학년 1학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6학년 1학기, 지도서 53쪽) 같은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그러나 쓰기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대부분 그림만 보여 주고 교사용 지도서에만 참고자료로 이야기가 실려 있고, 지도서에 실린 이야기는 대부분 재화를 잘못해 이야기 맛이 떨어졌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이야기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교과서에 실린 이 이야기에서는 앞부분에 어머니가 호랑이한테 가진 것(떡)을 다 내 주고, 치마 저고리 속곳까지 벗어 주고, 팔다리까지 잘라 주고 마침내 줄 게 없어 호랑이한테 잡아먹히는 부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어머니가 호랑이한테 모든 것을 다 내 주고 마침내 잡아먹히는 앞부분은 가진 것을 권력자들에게 모두 빼앗기며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던 백성들과 무수한 침략을 받아온 우리 겨레의 슬픈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 백성들을 하늘이 거두어 만물을 비추는 해와 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말에 끊임없이 속아 어머니가 호랑이한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사건을 되풀이해 보여 주면서 절박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것이 이야기가 주는 맛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의 본질과 형식이 주는 맛은 하나도 살리지 않고 앞부분을 다 잘라 버린 것이다. 그러나 초등 국어 교과서 6년 전과정에 실린 옛이야기에 견주어 보면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린 걸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거지의 아내>(5학년 1학기, 지도서 323쪽)를 보면 우리 겨레의 훌륭한 옛이야기 <버리데기>를 버리고 왜 이 이야기를 실었을까 싶다. 버리데기는 딸만 일곱 낳은 아버지한테 버림받지만, 그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애써 아버지를 살린다. 버리데기가 약을 구하러 가는 과정은 부모 품에서 벗어나 혼자 일어서려는 아이가 겪는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독립된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버리데기는 농경사회에 필요한 논일, 밭일, 들일을 성실하게 치러내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 독립된 한 사람으로 거듭나서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살리게 된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세상을 살아갈 때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스스로 하게 된다. <거지의 아내>는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돕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버리데기>와 선을 같이 하지만 이야기 과정이 치밀하지 않고, 무엇보다 딸이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다. 딸은 아무런 노력없이 금덩어리만 얻을 뿐이다. 이렇게 <버리데기>처럼, 옛이야기에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면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성장 과정을 비유로 나
타낸 이야기들이 많은데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들은 없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조차 거의 없었다.
4. 교과서 옛이야기에 대한 바람
옛이야기는 어린아이들이 즐겨 듣는 문학이다. 글을 모르는 아주 어린아이부터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맞는 이야기이다. 대부분 이야기들이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이야기에서 다루는 내용이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이고, 아이들의 자아실현을 이야기하는 것이 많으며, 이야기 구조 또한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반복구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학년 교과서에는 옛이야기가 조금 실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한테 어울리는 우화류가 많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옛이야기가 많아진다는 사실도 뜻밖이었다. 아이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들을 옛이야기의 본보기로 실어놓으니 옛이야기는 시시한 말장난만 하고 교훈만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옛이야기 하면 쓰잘 데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아이들한테 또 엉터리 옛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맛본다. 사람이 개척해나갈 수 있는 삶터가 얼마나 넓은가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아실현을 위해 얼마나 힘겨운 일들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지도 깨닫게 된다. 이런 좋은 우리 옛이야기가 초등 국어 교과서에 많이 실려 우리 아이들이 그 맛을 흠뻑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초등 국어 교과서 전 학년 전 단원에 걸쳐 옛이야기의 단원 목표나 학습 목표로 제시된 것도 보면 그림을 보며 이야기 꾸미기, 그림 보고 이야기 들으면서 줄거리 생각하기, 뒷이야기 이어쓰기, 묘사가 잘 된 부분 찾기 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아이들은 옛이야기에서 교훈과 줄거리만 얻어가지면 되는 것처럼 전과정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옛이야기는 간결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들려 줄 때는 아이들이 이 훌륭한 문학작품의 세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묘사나 설명 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들려 주는 게 가장 좋고, 굳이 활동을 하려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이야기 맛을 즐기게 하는 연극이 좋겠다.▣(이 글은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199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이송희님은 우리회 옛이야기분과에서 활동하고 우리회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