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녹차밭과 낙안 읍성 그리고 선암사를 다녀와서 -
(2004년 9월 26일)
제법 오래 전에 안동 하회 마을을 가을에 간 적이 있다. 울 안밖으로 가지마다 노란 감을 매단 감나무가 늘어졌고 담장 밑으로 당국화(과꽃)랑 금잔화 국화 같은 내 어릴적 고향 화단에서 흔히 봤던 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여름 한철 닭벼슬 같이 꼿꼿하게 피어있던 맨드라미도 씨를 품고 빛을 바래 가고 있었고. 이번 추석 연휴를 맞아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낙안 읍성을 가보고 싶었다. 하회 마을의 그 아름답던 가을이 생각나서.
부산에서 7시에 출발했다. 먼저 들린 곳은 보성 녹차밭, 친구는 드라마 촬영지였던 보성 차밭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작년 여름 한창 보성 차밭을 배경으로 나온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 한 명이 보성차밭을 다녀와서 견학 기록문을 쓴 적이 있다.그 아이는 차밭 이랑이랑이 초록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참 멋진 표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와서 보니 그 아이 표현이 딱 맞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차밭풍경
차밭을 돌아 보고 내려와 점심을 먹고 낙안 읍성에 갔다. 가을의 낙안 읍성은 내가 기대했던 대로다. 읍성 안에서 사람들이 살고 계신데 참 평화롭다.뜰에는 내 어릴적 흔하게 볼 수 있던 노란 키다리꽃, 맨드라미, 채송화,당국화가 지천에 피어 있고 초가 지붕에도 담에도 조롱박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감나무에는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를 늘여뜨리고 있고,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입을 턱턱 벌리고 매달려 있다.
읍성 담을 따라 반 바퀴 정도를 돌다가 마을로 내려갔다. 짚불 공예, 도예 공방, 천연염색하는 곳, 전통 가옥체험, 장승만들기 하는 곳과 같은 다양한 체험장이 많다. 볼거리도 놀거리도 많다. 토요일,아이들을 데리고 체험 학습을 하면 참 좋겠다
어느 집 사립문도 참 예뻤다. 담쟁이 덩굴이 듬성듬성 얽어놓은 대나무 사립문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그냥 지나가는 친구를 불러 사립문 좀 보고 가라고 했더니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예쁜 남자도 안에 있으니 보란다.
담쟁이 덩굴이 멋스러운 사립문
연못도 예쁘다. 연못마다 조경이 다르다. 배롱나무가 옆으로 길게 누워 연못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한폭의 동양화 같은 작은 연못도 있고, 연꽃 같지는 않고 노란 목화 꽃 같이 생긴 꽃이 연못 가득 피어 있는 곳도 있다.
연못에 비친 배롱나무가 더없이 아름다운 연못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짚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썼다. 멍석, 가마니, 징채,닭이 알을 품을 때 들어앉아 있던 집,망태....마을을 가로 질러 가는 길에는 동네 어른들이 나와 짚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고 계셨다. 옛날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과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은 가마니 짜기와 같은 것은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덤으로 마을 어른들이 떡방아를 찢어 금방 만들어 주시는 인절미도 얻어 먹고 왔다.
담 주변에 있는 집들과 마을을 가로질러 가며 옆에 있는 집들만 봤는데도 시간이 모자란다. 다음 가을에는 이 곳만 하루를 잡아 보러 와야 될 것 같다.
오는 길에 선암사를 들렀다. 십수년 전에 송광사를 구경하고 조계산 능성을 넘어 선암사를 왔던 생각이 난다. 대가람 송광사를 보고 왔던 터라 선암사를 보고 소담스럽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그런데 오늘 보니 제법 큰 사찰이다. 그 유명한 ‘뒷ㅺ’도 보고 내려오니 4시. 차가 밀리지 않아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부산에 도착했다. 추석 앞 연휴가 길어서 어영부영 보낼 것 같아 차가 밀리더라도 여행을 감행했더니 가뿐하게 다녀왔다. 좋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뒷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