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엘 갔다가 영숙 언니네서 하룻밤을 잤다. 이 언니는 답사 동호회에서 답사를 갔다가 만난 언니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내가 서울에 갈 때 자고 오기도 하고 느릿느릿 걸어서 종로 일대 유적지나 뒷골목을 함께 답사 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언니가 아침밥 먹고 명동 성당엘 가잔다. 뜨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명동 성당도 근대 문화재야. 이 언닐 위해 친구가 특별 미사 부탁 드려놨대.그래서 거길 갔다가 놀러 가야돼.” 그랬다. 언니는 내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가길 꺼려하는 줄 알았나 보다. 뜬금없이 명동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가자고 해서 잠시 당황했을 뿐인데.



(명동성당-성모마리아상을 모셔 놓은 곳에서 찍은 모습.첨탑이 있는 부분은 공사중이라 공사 중인 곳이 잘 보이지 않는 이곳에 찍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종교가 필요해서 선택을 한다면 천주교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다 요즘들어 나와 친한 샘도 성당엘 다니길 권유했고, 물론 영숙 언니도 성당 다니는게 어떻겠니라고 해서 생각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영숙 언니 따라 그야말로 얼떨결에 성당을 가게 되었다. 좀 놀라긴 했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갔다. 언니가 요즘 몸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걱정도 되고 했는데 잘 됐다.

  명동 성당 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둔 지하 성당(고해소)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경건하고 좋다.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종교라 무엇보다 좋다. 미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보니 불교랑 닮은 점이 많다. 편안한 마음으로 천주님께 언니 건강 보살펴 달라고 빌었다.

(지하성당-토요 미사 드리는 곳.안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다. 미사를 드릴 동안 유해를 안치한 입구 문을 열어두었다가 미사가 끝나니 닫았다)

  미사를 드리고 나와 언니가 내부에 들어가서 보고 살펴보고 오란다. 살금살금 내부로 들어서니 다행히 미사 드리는 시간이 아니다. 곧 결혼식이 있을 모양이다.휘 둘러보니  고딕 양식의 웅장한 아치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절만 보다가 명동 성당 내부를 보니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명동 성당을 나와 걸어서 종묘랑 창경궁을 둘러보고 걸어서 운현궁과 삼청동 특색있는 박물관들을 둘러 봤다.오늘 내가 가고 싶다고 한 곳은 장신구 박물관과 티벳 박물관. 그런데 언니는  내 취향을 참 잘 안다. 내가 골목골목 걸어서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서울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골목길을 지나 근대 문화재가 띄엄띄엄 늘어선 길을 걸어 아트선재센트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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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 박물관에서 본 눈높이 교육-

 

  ‘또 하나의 도구 골각기’ 전시회를 보러 복천 박물관에 갔다. 간 날이 금요일, 오전이었던지라 부산 시내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많이 와 박물관 앞 쉼터는 시끌벅적했다.

  전시실 안에도 유물들을 둘러 보는 아이들 줄이 끊이지 않았다. 4살 정도의 어린 아이부터 7살 정도의 아이까지 선생님 뒤를 따라 유물들을 보며 가고 있었다. 견학 오기전에 박물관에서 지켜야 할 일을 교육 받은 아이들은 한참 개구쟁이 짓을 할 나이인데도 제법 의젓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멀찍이 떨어져서 사방을 둘러보다 인솔 교사들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철기 시대 유물들(농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한 선생님은 예닐곱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향해 ‘이건 철기 시대에 쓰던 도구인데....’ 라고 설명을 했다. ‘철기시대’,‘도구’ 같은 낱말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이건 쇠로 만든 건데 농사지을 때 쓰거야. ..... ’라고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그 다음 선생님은 그냥 아이들이 이끌고 쓰윽 훑어보며 지나갔다.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그냥 따라갔다.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목적이 뭔지... 
  그 다음 선생님은 한 아이가 “저건 뭐예요? 선생니임~ 저건 뭐예요?” 끊임없이 묻는데도 핸드폰 메시지 확인하느라 아이의 질문을 무시하며 지나갔다. 아이도 알기를 포기하고 그냥 따라갔다. 
  .....

  그런데 거의 마지막 무렵에 오신 한 선생님은 달랐다. 한 아이가 말 가리개, 말 갑옷 등을 걸친 말앞에서 말머리 가리개를 가르키며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그러자 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얘들아, 옛날에 장군들은 뭘 타고 전쟁을 했을까?”

  “말 타고 했어요.” 
  “그런데 장군이 탄 말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 장군이 죽어요.전쟁에 져요”

  “그렇지. 옛날에는 전쟁할 때 화살을 쐈거든. 말이 화살을 맞으면 죽겠지.”

  “그래서 저렇게 말 머리 다치지 말라고 쇠를 만든 가리개를 씌운거야.” 

  .... 


  아이들이 재잘재잘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나름대로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성의있게 대답해 주었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그 선생님께 배우는 아이들은 참 복 받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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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눈이 아파 안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국에 갔을 때 일이다.

“박막자 님, 박막자 님~”

“......”
“막자야, 니 부르네.”

그 소리를 듣고 약을 사러 왔다가 대기석에 않아 있던 여중생 둘이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막자~”
이러더니 한 아이는 터지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지 숫제 입을 막고 약국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도 터지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약국을 나왔다. 그 분 부모님은 ‘막자’라는 이름을 지으실 때 좋은 의미를 담아 지었을 텐데...


  여고동창 중에 ‘여인숙’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친구가 있다. 성을 붙이지 않으면 ‘인숙’이라는 평범한 이름인데 성을 붙이면 어감이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던 친구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전에 만난 동창이 이 친구가 이름을 바꿨는데 그 후 삶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동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티나는 이름’으로 바꾼 후 정말 구질구질했던 그 아이의 삶이 이상하게 ‘부티’나게 바뀌더란다.

 

이름을 지을 때 부모는 자식이 살아갈 삶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는다. ‘막자’라는 이름을 지을 때 그 부모님은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막자’라는 이름을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그 아이 위로 딸이 줄줄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 위해 그런 이름을 지으신 것 같다” 고 하셨는데 그 말이 사실일까? 그 아주머니 다음에는 아들이 태어났을까?  그리고 이름따라 팔자가 달라진다는 말은 정말일까? ‘이름’이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오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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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솜 2007-09-14 18:18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이 글 쓰면서 '나는 내 이름값을 하고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작명소에서 이름을 지으니까 비슷한 이름이 너무 많아 그것도 좀 문제인 것 같더라구요. 얼마전에 통계 나온 걸 보니 제 조카 이름이기도 한 수민, 서현 같은 이름이 1위와 3위를 차지했더라구요. 암튼 '막자'아주머니때문에 이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네요

조선인 2007-09-1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저도 오늘 이름에 관한 페이퍼를 올렸는데, 별 게 다 반갑네요. ^^

다솜 2007-09-1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들러서 읽어봐야겠어요^^
 

 

어제 오전에 아는 분 댁에 잠깐 들릴 일이 있었다. 그 동네는 개인 주택과 빌라가 많은 지역이라 골목길이 미로같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늘 헷갈린다. 어제도 길이 헷갈렸다. 그래서 전화로 정확한 위치를 물으보려고 길 옆에 있는 빌라 주차장에 차를 잠깐 세우고 전화를 번호를 찾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아는 분 댁도 물어보고 근황도 묻으며 한참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뭐하시는 거냐구요?”

 

라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언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얼른 전화를 끊고 창문을 열고 고개쭈욱 빼고 보니 젊은 총각 하나가 좁은 도로 가운데 서서 도로에 진입하는 차를 손짓으로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무슨 일이 난 것 같았다. 얼른 차에서 내려 뭔일인가 싶어 도로로 나가봤다. 좁은 도로 가운데 술이 취해 쓰러진 듯한 남자가 널부러져 배를 움켜쥐고 있고 그 옆에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남자 배를 발로 차면서 그러고 있었다. 그 옆에는 훤칠한 키에 머리를 빡빡 깎은, 다소 껄렁해 보이는 남자가 팔장을 끼고 쓰러진 남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쓰러진 남자가 서있는 젊은 남자들이 몰고오던 차에 치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젊은 두 남자는 쓰러진 남자가 돈을 요구하기 위해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살벌한 분위기로 보아 내가 뛰어들 상황도 아니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신고를 해야되는데...?’

  ‘몇번으로 해야되지? 이럴 때 지나가는 사람도 왜 없냐?’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꺾어진 골목쪽에서 ‘캇’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카메라를 맨 사람이 등장하고....

 알고 보니 영화를 찍고 있는 거였다. 저예산 독립영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나니 허둥거린내가 우스워 어이없는 웃음이 실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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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08-2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다행이에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향기로운 2007-08-2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황당한 사건이셨겠어요..^^ 읽으면서 괜히 가슴을 쓸었어요..^^

다솜 2008-06-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할 수록 우습네요. 112에 신고를 했더라면 더 웃겼겠죠
 

 

김용택의 ‘시’를 읽다

 

겨울 달빛으로 시를 썼다
밤새가 운다고

추운 물소리가

내 가슴을 파고든다고

달이 자꾸 가고 있다고
언 손을 부비며

겨울 달빛으로 시를 썼다

달빛에 목이 마르면

꽝꽝 언 마당을 밟고

텃밭에 나가

어두운 무 구덩이 속에서

무를 꺼내다가 깎아 먹었다

바람 든 무를 베어 물 때마다

이가 시리고

흰 무에 빨간 피가 묻어 났다

어둡고 캄캄한 무 구덩이 속에서는

무순이 길어나고

긴 겨울밤

휘몰아쳐 오는 외로움과 적막,

그렇게 나도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았다

시가 내 빛이었다
시가 어둠 속에서 나를 찾는 흰 손이었다

김용택 시인이 긴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시’

나는 이렇게 절실한 뭔가는 없다. 다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즐거운 상상들을 동화로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하는 정도다.

  마지막 구절 ‘시가 내 빛이었다 /시가 어둠 속에서 나를 찾는 흰 손이었다’라는  구절을 보니 '시'는 김용택 시인에게 있어 구원의 손길이었다.그런데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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