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 


  조카 수민이가 집에 왔다. 돌 지난뒤 4개월 정도 된 아인데 이 아이는 개만 보면 달려간다. 우리 집 이층에 새들어 사는 집에는 개를 2마리나 키운다. 조카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니 우리 집 담 너머로 앞 집 개가 마당에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내가 “멍멍아, 안녕?” 했더니 이 아이는 두 손을 흔들며 멍멍이에게 인사를 한다.

 

  이층 마당에 아이를 내려 놓았더니 개들이 아이를 덮칠 듯 짓는다. 내가 놀라서 아이를 잡는데 처음에는 움찔 하더니 그것도 잠시 뿐 개를 보고 좋다고 달려든다. 그러자 희얀한 일이 벌어졌다, 개가 놀라서 죽을 듯이 짖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오줌을 잘금잘금 지린다. 개가 놀란 것이다. 속으로 그랬겠지? “ 참 별일도 다 있네.이제까지 내가 짖으면 다들 도망갔는데 뭐 이런 겁 대가리(?) 없는 꼬마가 다 있노?”. 그것을 보고 있던 개 주인 아주머니도 놀라서 입을 쩍 벌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일곱번째 새끼 고양이’ 동화가 생각난다. 집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던 새끼 고양이가 커다란 개를 만났을 때 겁도 없이 좋아라 다가서자 오히려 슬금슬금 큰 개가 뒤로 내뺏던 장면.

 

  공포감이나 두려움은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거라는 말이 딱 맞다. 개로 인한 공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가 아무리 무섭게 짖어대도 겁 없이 다가가는 것이다. 이러다간 일곱번째 새끼고양이는 명함도 못내미는 여전사가 되는 거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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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5일은 친구 생일날이었다. 며칠 전에 사고를 당해 이런 저런 일들 수습하느라 그 날은 생일 축하 메시지만 보내고 토요일 저녁에 만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외국 갔다 올 때 사왔던 립스틱 케이스를 포장해서 생일축하 편지와 함께 건네 주었다. 늘 하던대로 의례적인 축하였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자리 누워 읽은 짧은 글 한 편이 ‘선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신세대 철학교수로 불리는 이주향씨가 쓴 글이었다.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만한 글이어서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선물은 관계의 척도이면서 선물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꽃을 주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소고기를 선물하느 남자도 있고, 선물이 거추장스럽다고 아무 것도 선물하지 않지만 관계 자체가 선물이 되는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재 자체가 선물일수록 굳이 선물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선물로서 그 사람의 향기가 퍼질 때 ‘이게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동생과 결혼한 지 8년된 올케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든다.

  “옛날에는 선물을 줄 때 뭔가 남길 수 있는 것, 받는 사람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걸 찾았어요. 이제는 한 끼의 식사, 따뜻한 눈길이 있는 차 한잔의 정담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게 좋아요.”

  올케는 토요일 저녁 국수나 삶아 먹자며 식구들을 초대했다. 메뉴는 잔치 국수였다. 멸치. 다시마와 간장으로 시원하고 구수하게 우려낸 국물 위에 송송 썬 묵은 김치와 김가루를 얹은 잔치국수는 따뜻하고도 소중했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은 넉넉한 잔치국수만큼이나 기분 좋은 인심에 기분 좋게 풀어져 달큰하면서도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 조카들은 어린 조카들대로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훈훈했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에게 올케는 하나씩 가져가라며 뭔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오늘 먹은 국수였다.

  “이 소면이 너무 맛있어서 많이 샀어요. 가끔씩 끓여 드세요.”

  초대를 받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잔치국수는 올케의 생일 국수였다.

  “생일날 많은 사람과 국수를 나누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맛있게 드셔 주면 돼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또 얼마나 미안한가. 그렇지만 우리를 미안하게 한 올케가 얄밉다든가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올케는 편안해보였다.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인데 뭐!


  존재 자체가 선물인 인연, 이 얼마나 멋진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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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지난 주 토요일 삼천포 사는 형부 병문안을 가는 길에 광양과 하동을 들렀다. 그런데 광양 매화 마을을 둘러보고 하동 최참판댁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하동읍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을 놓쳐 하동에서 삼천포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오다가 급커브길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급커브를 돌때 차가 맞은편으로 날았다. 재빨리 핸들을 꺾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차가 나는 찰라 같이 짧은 순간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차는 단단한 방호벽을 들이박고 그 자리에 멈췄다. 옆에 앉은 어머니를 보니....

 

  일요일 사고 현장과 부서진 차를 본 형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누군가가 도운 것 같다고. 나도 정신이 들었을 때 사고 현장에서 우리 모녀를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선택하게 해 주신 누군가에게 한없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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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날씨가 이상하다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헷갈린다

어느 날은 바람이 살랑거리다가

어느 날은 바람이 귓볼을 후려치듯 불다가

어느 날은 눈이 우왕좌왕 내리다가.


그런데 올 봄 날씨와 딱 어울리는 시 한편을 발견했다

이 이상한 날씨를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봄이 오락가락 하는 계절

                              -조병화


   우수절을 넘은 계절은

  공연히 봄을 미리 당겨놓고

  다시 오므렸다가, 다시 확 풀다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긴 겨울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이 무섭던 겨울 참아냈던가

  참으로 이 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는 봄이

  그리 쉽사리 기운을 차리겠는가, 하는

  혼자 생각에 멀리 창을 내다보는 곳에

  버드나무 가지가지가 흔들려 있고

  흔들리는 가지가지에

  푸스레한 생기가 어리고 있다


  아, 봄은 어김없이 머지 않아 쉬 오겠지만

  이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지나가며, 다시 겨울이 오면

  나는 이 몸으로 어찌 견디리


  창 밖에선 맥이 없어진 눈이 좌왕우왕하며

  내렸다간 금세 자취를 감추고

  멀리 봄냄새 나는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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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수업 시간에 앞에 가르치던 선생님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요 슬비가' 000선생님 이야기 하지 마세요. 눈물 나올려고 해요.' 그러더라구요"

  마술반 수업을 인계 받은 선생님께서 첫 수업을 갔다 와서 한 말이다. 슬비는 유난히도 선생님이 바뀌는 것을 싫어했다. 마지막 주에 새로 바뀔 선생님이 온다고 했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계속 이랬다. "선생님 안 가면 안돼요?" .나도 슬비가 보고 싶다. 마음이 참 예뻤던 아이라서.

  1월달에 반, 2월달에 반. 2월말을 기점으로 내가 회사 소속으로 가르치던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들께 인계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부모들은 학부모들대로 난리를 치는 통에 넘겨주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고 내 수업을 받는 선생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주가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 준 편지- 이 편지와 더불어 장문의 편지를 한통 더 줬다)

 

  어떤 아이들과는 추억 만들기 여행도 가고, 어떤 아이들과는 중학생 되면 논술 할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고 2월말이 되니 기운이 쑥 빠진다.

  '차라리 두 달에 걸쳐 넘겨 주지 않고 1월달에 다 넘겨줄걸.' 

  3월달에는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해 나가야 한다. 이 아이들과 적응해 나가려면 한동안은 아이들도 나도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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