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동요’라는 글감으로 글을 써야 될 일이 생겼다. ‘내가 만난 동요’라는 글감을 보는 순간 불현듯 잊혀지지 않는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제법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 가을 날, 전라북도 쪽에 있는 백제 유적지들을 답사하러 간 적이 있다. 우리 나라 유적지 답사로 꽤 유명한 단체에서 주관했던 만큼 흡족한 마음으로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답사 리더 인듯한 분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더니 느닷없이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동요 한 곡씩을 부르라고 했다. 이 당시만 해도 관광차를 타면 의례이 가요 한 곡 쯤은 부르게 하는 게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데 가요도 아니고, 동요라니? 이 단체에서 주관하는 답사 여행에 처음 참가했던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답사에 참여 하신 분들 중에도 손자손녀를 두어도 몇은 두었을 것 같은 분들도 제법 계셨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분들의 반응이었다. 동요를 안 부른 지 몇 십년이 되었을 텐데 사회자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주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돌아가며 동요를 불렀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
“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
“......~♩~♪♬”
아마도 답사 때 마다 그래왔던 모양이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드신 분들 대로 젊은 분들은 젊은 분들대로 자신들이 어릴적 즐겨 부르던 동요를 불렀다. 그러자 생경하던 분위기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감동적이었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그 느낌. 동요를 부르며 뛰놀았던 그 시절 동무들과 함께 놀던 타작마당이며, 멱을 감던 바닷가며, 우리 집 화단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당국화(과꽃을 우리 고향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와 다일리아 맨드라미,금잔화, 키다리 같은 꽃들과 그 꽃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던 큰댁 언니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나도 어느 새 동심으로 돌아가 십수년동안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던 동요를 깨워 따라 부르고 있었다. 동요는 그렇게, 어린시절 애틋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내 가슴 속으로 스며 들었다. 이 날 이후 동요는 내가 맑고 순순한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