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자들의 여왕 1 - 뱀파이어 연대기 3-1
앤 라이스 / 여울기획 / 1995년 7월
평점 :
품절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아이슬랜드에서 남미까지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도저히 써머리가 불가능한 스케일..철학과 종교와 역사, 본능적 쾌락을 아우르는 방대한 주제, 게다가 아름답고도 지적이며 관능적인 문장..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 거대한 태피스트리같은 대중소설이 가능한 걸까요? 이제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을 읽었으니 가능하다라고 해야겠군요.

이 소설에는 리뷰를 써야지 하고 맘먹고 있다가도 막상 쓰려면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막막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살 먹은 레스타정도의 뱀파이어를 어린 뱀파이어로 부르니 오죽하겠어요?

언젠가 다른 환타지 소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지만 환타지 소설의 승패는 무엇보다도 리얼리티의 획득입니다. 앤라이스는 뱀파이어의 탄생에 전설과 민담, 고대역사, 이교도들의 풍속등을 교묘하게 짜집어서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갖는 철학적 고뇌와 아이러니를 다시 인간의 문제로 되돌리는데까지 성공합니다. 분명히 뱀파이어의 역사인데, 인간들의 어리석은 역사가 오버랩되고, 불로영생의 존재들의 고뇌와 찰나의 삶을 사는 인간의 고뇌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상상력은 허무맹랑한 뱀파이어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 살아 숨쉬고 있을 존재들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예컨대 로봇에게 아시모프가 있다면 뱀파이어에겐 앤라이스가 있는거죠.

물론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제게 있어서는 초절정 섹시 꽃미남 뱀파이어들이 득시글하다는 점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활자를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저같은 분은 이 책을 보기 전에 가급적,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나 <퀸오브뱀파이어> 같은 영화는 보시지 말기 바랍니다. 미리 본 영화 덕분에 19살짜리 중세 이태리의 미소년 아르망 대신  중늙은이 안토니오 반데라스(팬들에겐 죄송)가, 훤칠한 래스터대신 작달만한 톰 크루즈(마찬가지)가, 자꾸 두둥 떠올라 몰입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하거든요.

다소 안이한 결말은 4,5편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조악하기 그지없는 판형이나 디자인은 그나마 얼마남지 않은 초판본이란 점에서 감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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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6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x in the snow 2006-01-2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가끔이나마 댓글다는 서재가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데, 수단님을 기억하지 못할리가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chaire 2006-01-2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판타지 소설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는 축인데도, 여우 님의 리뷰를 읽으면 꼭 읽어야겠다 싶어진다니까요. 지난번에도 테드 창을 그렇게 해서 샀는데(히히 땡투 눌러떠요), 아직 못 읽고 있지만요. 역시 이번에도... 근데 다행(?)히 절판^^

치니 2006-01-2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다면 갑자기 드는 생각.
[안녕 프란체스카]의 작가도 이 책에 감명 받고 기획했을까나...라는. 얼토당토 않죠, 으흑.

Fox in the snow 2006-01-2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테드창꺼 맘에 드셨길 바래요.

치니님/읽기는 했을거예여. 시즌2에서 왕고모와 엘리자베스랑 싸우다가 나중에 감정적이 되어서 왕고모가 성인이 되지 못한 뱀파이어라는 점을 약점으로 엘리자베스가 공격한 에피소드가 있었거든요. 1부에 클라우디아라는 6살짜리 뱀파이어가 나오는데, 그아이의 슬픔이 왕고모에게서 느껴지더라구요. 오버일지 모르지만.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분들이 소설의 감동적인 주제,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데, 전 어쩐 일인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보다는 디테일에 눈이 갔습니다. 도무지 머리에 그림이 떠오르진 않지만 구명보트에 대한 묘사,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해치우는 방법, 바다거북을 식용으로 손질하는 노하우, 끝없는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 풍경이나 보트위로 날아오르는 날치떼같은 것 말입니다.

이 소설에 따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주인공이 살아남았다는  결말을 미리 알아버렸다고 실망하실 분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가 관건이며, 주인공 혼자서 작은 구명보트안에서 고군분투하는 구체적인 생존의 방법과 묘사가 바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무인도 서바이벌게임보다 더 열악한 환경을 설정합니다. 생존공간은 고작 작은 구명보트 한척뿐이라니, 대사도 거의 없던 영화 <캐스트어웨이>보다 지루하지 않을까는 걱정마세요. 몇가지 생존에 필요한 흥미로운 아이템도 주어지고, 벵골호랑이는 톰 행크스의 배구공 윌슨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친구가 되어주니까요.

사족처럼 붙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없었던게 좋았을텐데요. 소설에서마저 할리우드식 반전을 원하는 사람이 많진 않을테니까요. 벵골호랑이의 이야기야 신선하지만,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이미 식상한 소재이기도 하구요.

다소 건조하게 리뷰를 쓰긴 했으나 흥미로운 소설임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점이 짠건 나름대로 중심을 잡아보려 그런것입니다. 뭐든 치우지는건 바로 잡아보고 싶은 기이한 성질머리때문에..^^. 내버려두면 더 좋을 일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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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2-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 별점은 3개 이상 안 주게 되는 야박한 심정이 들던데요. 후후.
안됐네요 얀 마텔 아저씨. 자료 조사가 아주 오래 걸렸을텐데...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라니..)

Fox in the snow 2005-12-2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네요.저도 다리품 많이 팔았겟다는 생각이 내내 들더라구요. ^^

비로그인 2006-01-0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잘 안 들어와 본 사이에 깔끔한 리뷰가 올라와 있네요. 오오, 글쿠만요. 맞아요! 디테일한 묘사! 그것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한 매력인 거 같아요.

외로운 발바닥 2006-02-0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디테일한 부분에 더 감탄했습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지...마지막의 두가지 버전의 이야기는 사실 좀 이해가 잘 안가요.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카슨 매컬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여행이나 출장 중에 읽을 책은 비교적 가벼운 에세이류나 실용서가 적합하지만, 마땅히 가져갈 책이 없던 관계로 이번 출장 길에 이 책이 짐 꾸러미에 포함된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습니다. 사실 가는 비행기안에서부터 읽은 초반에는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의외로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의 속도감과 끝없는 깊이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 책을 고른 건 아주 오래 전에 EBS에서 본 흑백영화 때문 이었습니다. 전혀 스토리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늘 제목을 잊지 않고 있었죠. 아마 그 기억이 없었다면 고려원 소설 풍의 책표지에 다소 닭살스럽고 작위적인 제목의 이 책을 고를 일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소설은 이와 상관없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말해 버리는게 미안할 정도로.

 

소설의 중심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 소통의 불가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는(혹은 이해해준다고 믿는) 벙어리 청년 존 싱어로부터의 구원을 기대하지만 그 구원자 역시 허상일 뿐입니다. 온전한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이해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냉정한 사실을 단 한줄 여분의 문장없이 담담하고도 세밀하게 묘사해갑니다. 지극히 사사로운 영역의 문제에 이토록 강렬하리만치의 리얼리티를 부여한 것은 순전히 작가의 힘일겁니다.

 

소설은 읽기에 따라 사춘기 소녀 믹의 가벼운 성장기로도 보여질 수 있지만 의외의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30년대 미국 남부의 빈부차와 인종갈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하고 통찰력있는 시각은 독자로 하여금 엉클톰스캐빈같은 동정심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이미 60여년전의 사실이니 유효기간이 지났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행중인 문제일지도 모르죠) 나처럼 작품 전반에서 은근히 내비치는 동성애적 코드를 찾아내는 엉뚱한 독자도 있을테구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시계수리공인 믹의 아버지에게 맡겨진 고장난 시계처럼 정지된  미국남부 소도시의 황량한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의문, 분노와 욕망들은 반복과 어설픈 변주, 불협화음을 이루며 믹이 틈틈이 쓰는 습작교향악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시적일만큼 아름답습니다.  삶이란게 그런 걸까요. 희망은 어김없이 우리를 배신하고 삶은 여전히 내 몫일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존 싱어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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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2-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제가 통렬하게 느낀 감정이 이 책에서도 느껴지나봅니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온전한 이해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라는 강박증이 생긴 참인데, 그래도 이렇게나 말끔하게 마음으로 전달해오는 리뷰에 기대어 보관함에 품고 말았습니다...

Fox in the snow 2005-12-2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치니님. 보관함에 넣으셨다니..조금 있다 날씨 풀리면 읽으세요. 그렇잖아도 날씨가 너무 을씨년스러워 움츠러드는데...사실 전 이 소설 읽고 며칠동안 체감온도가 더 떨어졌었거든요.^^

chaire 2005-12-2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감 온도를 떨어뜨리는 책이라니, 님의 리뷰가 아무리 유혹해도, 저는 구매를 미뤄야겠군요. ㅋㅋ^^* 여우 님, 그나저나 해피뉴이업니다.^^

비로그인 2006-01-0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제목만 봤을 땐 쫌 가벼워 보이는데..내용은 제법 다양한 주제와 진중한 모냥새를 갖췄나 봅니다.

치니 2006-03-1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나서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어쩜 이리도 고스란히 다 담아내셨는지요.
카슨 매컬러스도 살아 있었다면 대만족 했겠습니다.
또 추천 누르고 싶지만, 이미 눌러서 안되나봐요. ^-^
 
더 싸일런트 월드
잭 이브 쿠스토 지음, 김풍등 옮김 / 풍등출판사(스쿠바미디어)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매일 아침 깨어나 말한다. "아직도 살아 있구나. 이건 기적이야."
그래서 도전을 계속한다.  >

자크 이브 쿠스토는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었다고 합니다. 그는 해군장교이자 전쟁영웅이었고, 스쿠바다이빙의 효시가 되는 아쿠아렁을 발명한 발명가였고, 독보적인 해양탐험가이자 해양과학자였으며, 최초로 다큐멘터리로 칸느영화제 대상을 거머쥔 영화감독이기도 했고, 죽기직전까지 지구환경보호에 앞장 선 환경운동가였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였죠.

이책은 그가 동시에 재능있는 작가였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물론 밋밋하고 멋대가리없는 번역체를 감안하고서 말입니다, 번역만 좋았더라도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요..하지만 사명감에 불탄 번역자가 출판사를 차려서야 낼 수 있을만큼 무관심의 영역에 있는 책이니 이것으로 만족하는 수 밖에요. 또한가지 위안은 문체는 썰렁하나,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전문다이버인 번역자가 심혈을 기울인 번역이란 점입니다. 기술적인 정확도나 시의적절한 역자주를 보면 번역자의 세심함을 느끼실 수 있을거예요.)

해저2만리가 공상과학소설로 여겨지던 시절에 목숨을 걸고  심해를 누빈 쿠스토 선장이 놀라우리만치 꼼꼼이 남긴 기록(아마도 그는 메모광이었을 듯)을 읽다보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불굴의 의지로 끝없이 도전하는 한 인간에 대한 경의가 느껴집니다.인류역사상 3m이상의 바다는 불과 60여년 전만해도 완전한 미지의 세계 였으나 단 한사람의 노력으로 (물론 그의 동료들이 존재하긴 하였으나) 이제는 나같은 사람도 공기통을 메고 바닷속 침묵의 세계를 조우하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어쩌면 역사나 과학의 진보에는 영웅이나 천재같은 모멘텀이 필요한가봅니다.

다이빙에 관한 다큐멘터리라서 그런지 유달리 잠수원리나, 기법, 해양 생태에 대한 기술이 세밀합니다만, 이래뵈도 어엿한 오픈워터인 저로서는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흥미진진한 바닷속을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요. 죄송하지만,다이빙 경험이 없는 분들은 조금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군요.(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으며 후반부 배안의 정밀묘사가 저에겐 무지 지루했거든요.문장을 반복해 읽어도 통 머리에 떠올려지는게 없으니) 하지만, 다이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쿠스토선장이 당신을 신비한 바다세계의 매력에 빠지도로 안내할테니 걱정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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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11-1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의 책인데 님 덕분에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Fox in the snow 2005-11-2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내친김에 다이빙도 해보시는게..후후

chaire 2005-11-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우 님, 다이버시란 말씀입니까? 우아, 정말 멋지네요. 저는 맥주병이라서, 다이버들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지... 님은 제가 모르는 세상을 알고 계시는 거군요. 멋져요.

Fox in the snow 2005-11-3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으로 돌아오셨네요. 다이빙은 맥주병도 할 수 있답니다. 세상의 나머지 반을 경험하고 싶은 의지만으로 충분한 레져예요. 그나저나 마지막 다이빙한 지 100만년 되었네요.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비결 2
제리 위코프.바바라 우넬 지음, 장여경 옮김 / 명진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찌기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요? 물론 이말이 어불성설임은 최진실 본인 조차도 절실하게 깨달았을겁니다. 다 큰 성인이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제어되거나 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론은 남자를 잘 골라야 한다는 말씀! 하지만, 자식은 다릅니다. 자식이야 말로 부모하기 나름이죠.놀랄만큼, 부모나 주위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를 보며 절실하게 느낀 점입니다. 물론 자식은 골라낳을 수 없기도 하구요.

요즘 한 TV프로에서 양육방법에 관한 리얼리티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 온 국민의 공분을 받았던 쌍둥이들이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놀란건 쌍둥이들의 패악스런 행동이 아니라 대다수 시청자들의 반응이었는데 "왜 이제껏 저런 버릇없는 녀석들을 매로 다스리지 않았는가"라며 유약한 부모를 나무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 자식이었다면 반쯤 죽여주리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사람들도 있더군요.(그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쌍둥이들은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그보다 더 놀란 건 아동교육전문가라는 사람의 해결방식이었습니다. 회초리로 벌을 주고, 그걸로는 달라질 기미가 안보이자 해병대훈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아 아이들을 뺑이치게 만들다 어머니 은혜를 부르며 눈물흘리는 억지상황을 연출하더니 나중엔 해병대장을 집으로까지 찾아오게 해 재입소시키겠다며 아이들을 위협하는 것을 보고는 저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의 폭력성향이  비정상적이라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게 마땅할진대(이상하게 TV화면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문제점을 그 프로에서는 외면하더군요) ,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하다니, 과연 진정한 의미의 훈육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행동변화는 자신들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더 큰 폭력앞에 굴복하는 것에 다름아닐겁니다. 아이들은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을 뿐 아니라 폭력의 헤게모니까지 터득한 셈입니다. 어쨌거나 마지막 방송에서 프로그램은 50여일만에 완전히 변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만.(믿거나 말거나)

 "소리치지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니, 아이 안낳아 속모르는 사람이나 할 소리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도 왕도는 없습니다. 훈육이 잘못한 아이에게 벌을 주는데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고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한방에 일시적인 효과를 얻는 회초리에 기대는 어리석은 훈육방식을 취하지는 않을테죠. 더군다나 부모들이야말로 언제 감정적으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인격체이니 말입니다.

의외로 훈육에 필요한건 타이머시계와, 생각하는 의자만으로 충분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울거나 떼쓰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되, 잘못된 점은 엄격하게 바로잡아주는 일은 순전히 부모의 소양이지만 말입니다. 회초리로는 부모의 권위를 세울수 있을지 모르나 부족한 소양을 만회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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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1-0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좀 과격한 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은 인간 취급 안하게 됩니다.

비로그인 2005-11-0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아이 키우는 건 도 닦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그러던데.. 흐흐.. 암튼, 말 나온 김에 그 문제의 프로그램, 종영하라고 따지러 가야겠습니다. 글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탱스투에 손이 가게 정말 맛깔나게 쓰셨습니다요. 부러워요..

조선인 2005-11-0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세상에, 그런 프로가 있었어요? 미쳤다, 대체 뭐에요?

Fox in the snow 2005-11-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신동엽이 하는 프로예요.^^ 여기분들은 저랑 맘이 맞으니 얼마나 얘기하기 편한지 몰라요.

숲속내음 2005-11-0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관한 소개글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머네요..

Fox in the snow 2005-11-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속내음님/제 리뷰 스탈이 원래 뜬금없답니다.ㅎㅎ..책읽다 생각나는 일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거든요. 어쨌거나 죄송합니다.

Fox in the snow 2005-11-0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변명도 하자면, 이책을 읽는 시기와 그 방송을 본 시점이 거의 일치했는데, 첨엔 책의 내용이 왜 이렇게 평이하나 불평하다가, 방송에서 아이들의 폭력성을 해결하는 접근방법을 보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평범한 육아이론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절실하게 느꼈던 바, 뜬금없이 책리뷰가 방송리뷰가 되버렸던겁니다. (뭔가 궁색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