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기와 1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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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전인가 <햇빛 쏟아지는 날들>이라는 중국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 영화였는데, 그 밝고 따스했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였는데,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이 어떻게 머릿 속에 저장되고 각색되어지는 지를 보여주었죠.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또는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법이니까요.

 

친구가 분단위로 디테일하게 기억해내는 어느 수학시간의 일들은 도무지 떠올려 내지 못하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바스까니의 까빌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만 흐르면 어김없이 어른들은 모두 어딘가로 사라진 텅 빈 거리에서 좋아하는 소녀의 뒤를 밟는 소년의 까치발을 따라 이 곡이 흐르던 장면을 기억해내곤 합니다. 남의 기억도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는 건가 봅니다.

 

<빨간기와>를 읽는 내내 전 <햇빛 쏟아지는 날들>의 까까머리 소년들과 이쁜 발뒤꿈치를 가졌던 소녀와 문화혁명기의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거리를 떠올렸습니다. 영화속 소년(이름은 까먹었음)이나 임빙과 같은 유년시절을 보낸 적이 없음에도 익숙한 정경과 따뜻한 느낌….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일까요? 중국 사회와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기억이 그만큼 많아서 일까요? 사람에겐 개인의 추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의 기억도 조금씩 서로 전송이 되어 개개인의 독립된 추억으로 쌓이는 모양입니다.

 

저조차도 그 알 수 없는 침묵에 쌓였던 햇살 쏟아지는 거리가 문화혁명기의 홍위병들이 쓸고 간 잔해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듯이 이 소설속에서도 소년의 기억 속에서는 혁명은 그저 떠들썩하고 흥분되는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정양씨와 정황씨의 침대가 겪은 부조리한 상황을 이해하기엔 넘 어린 나이였겠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자 소설의 모든 캐릭터들이 친근하게 내 기억의 한편을 차지한 거 같습니다. 빨리 ‘까만기와’도 주문해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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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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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빌리거나 중고로 구입한 책을 읽다가 누군가 먼저 읽은 사람이 그어놓은 밑줄을 발견하는 기쁨은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겁니다. 특히, 그 밑줄 친 구절이 딱 내맘에 와 닿을 때 전혀 알지못하는 누군가와의 소통이 주는 기쁨은 그 누군가를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듯이 가까이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밑줄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그어진거라면? 인상적인 부분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게 뭔가 말을 건내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는 남자이고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쯤되면 로맨틱 코미디 소재로는 제격이군요. 당연히 여주인공은 그 미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남자를 찾기 위한 독서를 계속합니다. 결국 콩스탕스는 유일한 독서의 대상이있던 에밀 아자리에서 벗어나 폴리냑(?), 토스도예프스키, 니미에(누구지?), 키에르케고르에 이르기까지 결코 녹록치않은 독서를 하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는 소설속 세계에 기거하던 처녀에서 소설을 통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자로 변모하게 됩니다.

언뜻, 책을 매개로 한 연애소설쯤으로 보여지지만 소설을 읽는 행위란 무엇인지, 소설과 그 소설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소설쓰기란 독자에게 말을 건내는 일이고, 독자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겠죠.하지만 이런 속뜻이야 읽어내도 그만이고 아니어도 그만이고, 꽁스땅스의 밑줄긋는 남자 찾기 여정을 따라가는 일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러고보니 ‘책 읽어주는 여자’랑 구성이 좀 비슷하네요.

사족 : 번역말입니다. 수준급 이상의 공들인 번역임에는 분명하나, 지나치게 세심하게 선택한 흔적이 보이는 몇몇 ‘고상한(또는 고루한)’ 단어들 때문에 전 이책이 당나위 인형 레옹과 함께 자는 25세의 여성이 쓴 발랄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나 깨달았습니다. 원작은 좀더 경쾌했을거라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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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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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고 보면 내가 읽는 책 읽기의 즐거움은 참으로 편협합니다. 처음 몇장에서 흥미를 주지 못하는 책이나 내용의 전개나 인물들의 관계가 조금만 입체적이어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 책을 던져버리곤 하지요.(거의 단세포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판타지나 SF장르로 외도를 하는 이유는 뭔지..아마도 아시모프나 필립 K 딕, 그리고 젤라즈니 같은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경험한 기억때문입니다. 머릿 속에 남은 그 강렬함을 잊지못해서죠.

특히,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라 어떤 과학서보다도 학구적이기까지한 결과물들 앞에선 시덥잖은 공학도로서 경외감마저 들곤 합니다. 어차피 모든 과학은 ‘가정’에서 출발하니까요.

SF를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에게 유혹처럼 다가오는 젤라즈니의 소설은 말랑말랑한 SF보다는 오히려 톨킨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나름대로 과거로의 가상여행이 판타지라면 미래로의 가상여행은 SF다라고 분류했던 내멋대로의 얄팍한 분류를 가차없이 뭉개버린 소설입니다.

현재의 과거였던 신들의 사회는 동시에 현재의 미래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세계관은 네오의 매트릭스와 상당히 유사한데, 매트릭스처럼 정교하게 고안되고 조정되는 세계에서 샘은 마치 네오처럼 ‘인간’을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신들의 사회에 반역의 기치를 듭니다.

사실 이런 설정은 갖다 붙이면 대충 다 맞는 식인 식상한 설정이지만(힌두교던 불교던, 기독교던, 이슬람교던 그 기본적인 구도는 고통의 현세와 구원의 세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그사이에 구원자가 있으니 말입니다) 교묘하게 힌두신화와 과학기술문명의 극한을 한점에서 만나게 한 그 발상과, 전개는 힌두신화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현실과 종교에 대한 철학적 인식, 그리고 과학문명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없다면 이루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SF의 고전으로 꼽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겠죠.

하지만 독서할 시간이라곤 출퇴근 시간(그것도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상황)밖에 없는 터라 몰입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것은 이책이 가진 미덕을 50%도 알아내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별점이 낮은 이유는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경탄만큼이나 내자신의 책읽기의 한계를 동시에 느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엔 좀 소프트한 SF 를 읽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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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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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은퇴한 노부부의 한가로운 2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리는 이웃집 남자. 이런 소재로부터 나라면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을까요? “에잇 귀찮아, 꺼져버려” 하면 사건 종료되었겠죠. 하지만 아멜리 노통은 그 속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사실, 저조차 처음엔 그 늙은 노인네를 어떻게 처치해버릴지를 에밀과 함께 궁리했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점점 베르나르뎅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에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도덕적 위선자. 겉으로는 이웃집 노인네의 무례한 방문을 거절하지 못하는 점잖은 지식인이지만, 단 두시간의 방해만으로 온 삶의 균형을 잃고 마는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이고, 다른 사람의 삶의 가치마저 제멋대로 결정지어버리는 폭군에 심지어는 살인을 하고도 태연자약하게 합리화하는 철면피입니다. 도대체 에밀은 왜 그렇게 베르나르뎅을 싫어했을까요? 물론 나라도 그런 노인네의 무례한 방문을 참아줄 수는 없었을 테지만, 에밀은 베르나르뎅의 침묵을 통해 자기 내면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점점 본인도 알지 못하던 숨겨진 자아를 찾아내게 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분노와 공포를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한 내면을 엿봄으로써 발생긴 극심한 자괴감은 결국 가장 심각한 도적적 폐단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타자를 위한 일인 것처럼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도덕적 당위성을 부여하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가 베르나르뎅을 죽여가면서 지켜내려한 자아는 과연 온전할까요? 이미 유치원시절부터 그만을 사랑하고 존경해오던 아내, 쥘리에트는 에밀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게 되었고, 애제자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었으며, 불면증에도 계속 시달릴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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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경제학
토머스 소웰 지음, 서은경 옮김 / 물푸레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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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요즘 사람들의 최대의 화두는 '부자되기'입니다. 그럴듯하게 자산가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말을 이렇게 당당하게 내놓고 할 수 있게 된지가 언제부터인지. 못 가진 자의 뒤틀린 심사일지언정 은근히 멸시하던 부자의 이미지는 이젠 간 곳 없군요.

어쨌거나 귀얇은 저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부자되는 방법에 대한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나, 부자의 성공담들을 사 꼼꼼히 정독해 보았으나, 아직도 부자되는 방법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책 한두권으로 부자되는 비법이라도 터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건 아니지만요..

이왕에 부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김에 FM대로 경제공부부터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책 읽는 이유치곤 참으로 불순하지요) 물론 부자가 되는 것과 경제학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거냐라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대충 손에 잡히는 몇 권의 책을 보았는데, 도무지 경제신문도 제대로 이해해내지 못하는 문외한인 나로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지루한 이론들에, 너무 뻔한 정보들뿐이더군요. 경제공부자체에 흥미를 잃으려고 하는 시점에 바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핫하~

기본적인 경제원칙을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하나 없이, 듣도 보도 못한 경제학자의 이론들을 들먹이지도 않고도, 실례들을 인용하며 재밌게 풀어서 전달해줍니다. 나 같은 사람조차 별 어려움 없이 책을 읽어냈다면 아주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한 셈이죠. 더군다나 심플한 전개속에서도 저자의 전문가적 지식과 통찰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기초입문이란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 무수한 단편적 지식들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오호..극찬의 연속이군요..)

지나치게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경도된 느낌은 없지 않으나 오히려 갈수록 치열해지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선 필요한 경제관인듯 합니다. 음..이책을 읽고나니 본격적으로 경제공부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들끓는군요.^^

근데 원제가 'A Citizen's Guide to the Economy'네요. 소웰도 더글라스 아담스의 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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