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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평점 :
중고등학교 시절이다. 세계사 공부를 할 때에 소위 '밑줄 짝~'이라는 교육문구가 강조되면서 시험마다 출제되는 중요한 용어가 있었다. 바로 '카스트 제도'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인도만이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제도로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있고 그 계급에 할당된 정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3,000년 전에 탄생한 그 제도가 21세기에 이른 작금의 시대까지 한 국가의 정신적, 이념적 체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카스트 제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을 크게 네 가지의 계급으로 나누는데 최상위 계층은 '브라만'으로 사제들이고,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그 다음이며, '바이샤'라는 계층은 상인이나 평민이 속하고, 마지막으로 최하위 카스트인 '수드라'는 노예들이 속한다는 계급 제도다. 더욱이 아웃카스트라고 해서 카스트 안에 들지 못하는 계층이 있는데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달리트가 그들이다. 현재 인도에 1억 7천만명의 불가촉천민이 있다고 한다. '불가촉천민'의 개념은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하는 천한 계층이라는 의미라고 하니 명칭만 들어도 그들의 일상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으리라.
사실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독립 이후 1950년 인도헌법에서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는 엄연히 존재하며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전 부분에 걸쳐서 억누르고 있다. 카스트는 인도의 국교라 할 수 있는 힌두교에서 연유한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힌두경전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되는지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는 상인 계급 바이샤가,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을 색깔이라는 의미의 바르나 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렀다. 여기에 사성제에 들지 못하여 아웃카스트로 불린, 앞서 언급한 불가촉천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은 아직도 이 카스트 제도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법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인도인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윤회사상에 기인하여 현세에 낮은 카스트로 태어나면 다음 세상에는 높은 카스트로 환생한다고 세뇌하고 있다. 이에 나름의 안정감을 얻은 인도인들은 아직도 카스트라는 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제도에 앞서 다음 세상에 대한 강한 믿음(?)을 기약하며 자신의 의지와 관계되지 않은 운명적 카스트 안에서 계급에 따른 지위와 명성, 생활양식 등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인도인들인 것이다.
이러한 카스트 제도라는 불가항력의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애쓰며 투쟁하여 나름의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 있다. 『신도 버린 사람들』은 닿는 것조차, 같이 숨쉬는 것조차 금지된 불가촉천민의 위대한 드라마를 다룬 책이다. 그림자만 닿아도 오염되는 불가촉천민에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지도자가 된 나렌드라 자다브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카스트에 맞서 어떻게 싸워왔으며 그 힘겨운 싸움과 삶의 열정이 종국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아버지인 다무와 어머니인 소누의 일기와 회상이 이 책의 8할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시작하여 불가촉천민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고된 수난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철저하게 부모의 일기 기록을 반영하고 있다. 다무와 소누의 1인칭 서술이 교차되면서 당시의 삶을 생동감있게 들려주고 있다. 다무와 소누의 일기식 회상담이 이 책 분량의 8할이라면, 그 중 4할은 바바사헤브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빔라오 람지암베드카르 박사의 달리트 인권 운동이 크게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2할은 저자 자신이 화자가 되어 말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산과 당신들의 철저한 교육과 가르침으로 인해 저자 자신을 위시한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공했는 지를 고백하고 있다. 더욱이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저자의 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도의 정신과 경외심을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 책은 불가촉천민으로서의 잘못된 제도와의 싸움과 투쟁, 그리고 적극적 삶의 방식을 통해 성공화를 이룬 한 가문의 3대에 걸친 자유와 용기, 정의라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에 대한 경험적 회고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잘못된 전통과 제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는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개인적 잠재력과 꿈을 무시당한채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하고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아버지 다무의 자각은 그의 또다른 내포적 힘인 용기와 결합한다. 당시 달리트들의 기본권을 위한 투쟁이 바바사헤브가 지도자가 되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그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지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에 선봉에 서기도 한다. 저자는 뒷부분의 고백에서 아버지 다무를 경외와 상찬의 대상으로 말하고 있다. 비굴하지 않고 옳지 않은 것에 순응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용기와 집념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고백한다.
다다(아버지 다무를 자식들은 다다라 부름)는 결의와 용기라는 더없이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다다는 우리의 아버지였을 뿐만 아니라, 철학과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살다가 힘이 필요한 순간이 닥치면, 우리는 우리 안에 간직한 다다를 찾아본다. <p344>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관찰한 부분은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의 흔들리지 않는 깊은 사랑이었다. 불과 10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가 나이 많고 까무잡잡한 청년의 아내로 결혼하여 수십 년의 지난한 삶을 버텨내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비록 둘다 불가촌천민으로 태어난 소외계층으로 가난하고 억울한 삶을 살아야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며 살아갈 때에,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판단과 결정을 항상 존중하여 우군 역할을 해주었고 남편도 고생하는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아이를 10년동안 낳지 못해 다른 아내를 얻어야 한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아내를 지켜주고 보듬어 준 남편의 기백과 강단은 같은 남자로서 멋있기 그지 없는 장면이다. 부부 사이의 사랑이라는 강력한 내포적 힘이 가난과 주변환경이라는 외연적 겉치레를 충분히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러한 두 부부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에 기반한 가정적 안정감이 자녀들 모두 훌륭한 동량으로 길러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천이었을 것이다.
다다가 세상을 떠난 후 바이(어머니 소누를 자녀들은 바이라 부름)는 부쩍 늙었다. 바이는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며 말을 거는 걸 좋아했다. 색깔 말고는 까마귀와 다다가 비슷한 점이라곤 없었지만, 바이는 다다가 까마귀가 되어 당신을 만나러 온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매일 밥을 먹기 전에 부랴부랴 까마귀가 먹을 부스러기를 주러 나가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자다브가 온 것 같으네." <p353>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비토바 신당을 처음으로 찾았던 때를 회상하는 장면은 압권이라 할 만하다. 한 명의 불가촉천민을 맞이하기 위해 사원의 관계자들이 총출동한다. 저자는 이른바 VIP였고, 사원의 높으신 분들이 앞 다투어 환영했다고 한다. 저자는 어쨌거나 불가촉천민이었다. 사원출입이 금지되었던 카스트 출신이었다. 불가촉천민은 하다못해 그림자도 사원에 드리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힌두 사원 권력의 심장부와 같은 비토바 신당에 사제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가는 것이다. 사원의 운영회장과 대사제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된 저자를 맞이했다. 특히 저자가 사제들에게 돈을 주고 사제들이 갈구하며 돈을 받는 장면은 왠지 모를 전율이 느껴진다. 일개의 불가촉천민이 부모님의 정신과 교육을 이어받아 제도와 전통을 극복한 불세출의 인물로 성장하고 마치 카스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만에게 돈다발을 건네는 것이다.
나는 있으나마나한, 천하에 쓸모없는 불가촉천민이었다. 주머니에서 빳빳한 100루피 다발을 꺼내어 사제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한껏 내밀어 갈구하는 가촉민의 손바닥에 누르듯 쥐어 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달려들었다. <p355>
그렇다. 한 개인의 능력과 열정은 공동체의 관습과 전통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공동체가 있다. 가족, 학교, 교회, 회사, 국가 등 크고 작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의 습속과 문화가 옳고 선한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의 불순함과 비상식에서 개인의 자유와 상식은 침범을 받기도 한다. 인간의 내면적 숭고함 중에 극치라 할 수 있는 용기와 정의감이라는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지향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다브 가문이 보여준 절대적 선한 가치에 대한 용기와 정의감이 어떤 인과물을 탄생시켰는지를 이 책은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것에 맞서는 용기와 공동체에 대한 희생의 가치가 찬란하게 빛날 때에 인류는 더욱 아름다운 지구에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잘못된 관습과 체제도 한 인간의 인권과 자유에 우선할 수 없다. 그것이 수천 년동안의 12억의 인구를 억누르고 있는 카스트라 할 지라도 말이다.
나는 비겁한 사람들을 자주 본다. 작든 작지 않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절대적 선의 기준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며 그 전통과 제도에 순응하는 자들이 적잖다. 그리고 그 잘못된 기준으로 약한 자들을 핍박한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세상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로 철저하게 이등분된다.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표현하자면, 프로그래밍 하는 자와 프로그래밍 당하는 자로 양분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도 그 유명한 팔레토의 법칙은 적용된다. 2할의 지배자가 8할의 피지배자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일 수도 있고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의 외연적 결과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르는 동기다. 2할과 8할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내면적 원천은 정의에 대한 용기와 공동체에 대한 희생과 사랑의 가치라는 것, 나는 그리 믿는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우리 할아버지와 암베드카르 박사의 노력이 우리 세대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다. 나는 달리트를 나타내는 어떤 표식도 달고 있지 않으며, 내 또래와 다르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내가 이 세상 모든 소녀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밝힌 횃불을 받아 들었고,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p354>
- 아푸르바 자다브(저자의 딸)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