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독서경향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분명 고무적인 일이리라. 사실 고백하자면, 본래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다. 최소한 작년까지는 인문학이나 경제&경영도서, 자기계발서, 기독도서 등의 부류들로 독서경향이 한정되어왔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내 머리와 가슴을 크게 두들기기 시작한 것은 금년부터가 아닌 듯 싶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깊이 있는 소설 한 권이 더욱 웅숭깊은 삶과 지혜에 대한 통찰을 비춰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시점부터다.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붓는 심정으로 최근들어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독서를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 주로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책을 구매하는 편인데 베스트셀러 중에서 반감이 생기지 않는 책과 오늘의 책 메뉴 중에서 구미가 당기는 책들이 대부분 내 지갑의 문을 열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과 일본을 넘어 동유럽소설까지 내 독서성향이 침투하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차가운 피부』는 기대 이상의 강한 인상을 심어줬으며 최근 일간지에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바다의 성당』은 이미 구매하여 책장 속에서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 중 하나이다. 또한 제목에서부터 강한 호감을 불러 일으켰던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내 의지와 결정이 아닌, 블로그 이웃인 린드그렌님으로부터 책여행을 통해 소개받은 경우이기도 하다.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철저한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여느 추리소설과는 달리 사건을 해결해가는 형사나 탐정의 존재는 없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네스터를 비롯하여 사건과 관계된 몇몇 중심인물들의 이야기로만 추리의 서사가 완성된다. 복잡한 플롯이나 반전의 연속도 그리 크지 않다. 추리소설이되, 나름대로 차분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며 각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인간상 묘사를 재치있고 흥미롭게 그린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뜻하지 않게 냉동고 안에 갇혀 죽게되는 네스터의 현재의 시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건이 벌어진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있던 6명의 인물들. 소설의 시간은 과거로 회귀하면서 각 인물들과 네스터와의 인과관계가 마치 퍼즐을 조합하듯이 정리된다. 소설의 서사는 <네스터의 죽음>이라는 현재의 사건 결과가 과거의 사건의 원인으로 이동하면서 뒤엉켰던 실타래가 풀어지듯 인과성의 순서로 재정리된다. 하지만 결코 복잡하지는 않다. 

  <네 개의 T>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은 논하지 않기로 함 - 의 존재와 네스터와의 상관관계가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각 인물들을 다양하고도 섬서하게 묘사하고 있다. 호모와 동성애, 부정부패, 욕망과 불륜 등 지우고 싶은 과거와 현재의 비밀에 압박을 받고 있는 인간상들의 묘사는 흥미롭다. 각 인물들은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하지?', '누군가가 이 비밀을 알고 있다면?' 이라 생각하며 자기 자신의 방어에 대해 사유한다. 이러한 사유는 보다 더 진전된 사악한 마음과 오해와 선입견이 결합되어 어두운 인간상을 형성한다.

  과연 그들의 생각은 옳았던 것일까? 비밀에 대한 발설 염려와 그것을 알고 있는 자의 발설 의지가 일치했던 것일까? 잘못된 인식과 지나친 이기심과 자기방어, 그리고 인생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오해와 편견이라는 단어들.. 인간이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수식하는 단어들을 음미하며 소설을 마지막 장을 덮는다.

  <아가사 크리스티>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 크게 전복적이거나 크게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도의 이기적 자기방어를 비교적 섬세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흥미있다. 추리소설이라는 기계적인 구성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 보다 철학적이고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꽤 흥미있는 소설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비밀>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비밀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호기심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알려고 할 때에 인생사는 꼬이고 문제가 발생한다. 이 소설이 주는 교훈을 <모르는 게 약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너무 쌩뚱맞을까? 하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모르는 게 약이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사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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