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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 - 라틴어 원전 완역판 세계기독교고전 8
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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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읽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읽을 당시 그은 밑줄을 따라가며 빠르게 문장을 복기해 서평을 남긴다. 이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교회에서 '기독교 고전 읽기'라는 수업을 개강했다. 올해 처음 부임한 부교역자가 해당 과목을 맡았다. 강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신앙에 유익을 줄 기독교 고전을 선택해 한 시즌 동안 읽고 내용을 나누는 수업이다. 그 첫 책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선정됐다. 소위 '아우구스티누스빠'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일 순위로 수강을 원했으나 도저히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아쉬웠다. 이런 배경에서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다시 집은 것이다. 그리고 남기는 글이다.

서양 고전 가운데 흔히 “세계 3대 고백록”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러나 세 책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은 격에 맞지 않은 문학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같은 범주에 놓일 작품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이 인간 자아의 노출이라면, 레프 톨스토이의 고백록은 윤리적 각성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은 그 차원을 단숨에 넘어선다. 이 책은 인간이 자신을 고백하는 책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존재 전체가 해석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을 향한 신학적 찬가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단호한 선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세 번 읽으며 깨달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범죄하고 넘어지고 시험 들고, 어느 순간 중생을 경험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은 일관되게 외부로 향해 있다. 과거의 크고 작은 일들이 현재의 나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 섭리였다는 것이다. 보존하시고 운행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시각을 견지하지 않는 한 『고백록』은 오독되기 쉽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은 실패와 방황의 연속이다. 그는 젊은 시절 쾌락을 좇았고 명예를 탐했으며, 한때는 이단 사상 속에서 진리를 찾겠다고 헤매기도 했다. 그는 결코 모범적인 청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가차 없이 폭로한다. 사소한 도둑질, 허영심, 정욕, 교만—그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자연스럽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과 연결된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인물들이 보여주듯, 그는 인간의 죄와 자기 기만을 조금도 낭만화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타락했고, 그 타락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서로 만난다. 인간 내면의 심연을 끝까지 내려가 보면 결국 하나의 진리에 도달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구원이며, 그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걸 말이다.

하나님은 의인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변화시켜 사용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다. 기독교 신학이 강조하는 가장 위대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시며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며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섭리하는 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은 이 교리를 설명하는 교과서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 철학적 방황, 학문적 갈망, 밀라노에서의 회심—그 모든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신학자를 빚어 가신 과정이다. 인간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던 사건들이 하나님 손에서는 신학자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것이 섭리다. 이것이 주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창세기》 강해는 이 작품의 정점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에서 당황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창조 이야기를 단순한 성경 해설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거기서 시간, 기억, 존재, 창조의 신비를 묻는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의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사역은 영원 전에 자신의 지극히 거룩하고 지혜로운 경륜에 따라 이루어졌다. 시간성의 거부, 즉 영원(永遠, Eternity)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과 기독교 신학은 절대로 온전히 소화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함은 그의 시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이후 서양 신학 전체의 토대를 형성했다. 중세 신학은 물론이고 종교개혁의 신학자들까지도 그의 사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어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얼마나 자주 호출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삼위일체, 은혜에 의한 구원이라는 핵심의 교리에서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단순히 인용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신학적 동지로 대우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분명히 가르쳤던 복음의 회복이라고 확신했다. 이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한 교부가 아니다. 그는 서방 교회의 신학적 지형을 결정적으로 형성한 인물이며,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어질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 교부들과 달리 헬라어를 거의 알지 못했다. 동방 교부들이 헬라어 문화 속에서 신학을 전개했던 것과 달리 그는 철저히 라틴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헬라어 공부를 몹시 싫어했다고 스스로 고백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는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라틴 고전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 그는 문장을 암송하며 수사학을 연마했다. 특히 키케로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문장을 달달 외우며 언어 감각을 단련했다. 그 혹독한 교육은 훗날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신학자가 되었다. 그의 문장은 논리적이면서도 음악적이다. 철학적이면서도 기도문처럼 울린다. 신학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바로 『고백록』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앞서 언급한 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한 사람의 자전적 고백이 아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았던 한 인간이 훗날 교회사 최고의 신학자가 된다. 겉으로 보면 극적인 인생 역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점차 깨닫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는 우연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의 사소한 사건들, 학문을 향한 갈망, 끝없이 이어진 방황,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회심의 순간까지—그의 생애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조용히 개입해 있다. 한 인간이 길을 잃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으시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게 하시면서도 결국 자신에게로 이끌어 가신다. 그렇게 그의 인생의 구석구석을 인도하시고 붙드시며 마침내 한 신학자를 빚어 가신다. 그러므로 이 책의 중심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서 있지 않다. 그의 삶을 끝까지 붙드신 하나님이 서 계신다. 설명은 하나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이 책의 모든 문장은, 그 은혜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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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자반 - 성경과 역사에서 배우는 올바른 직분자의 모습 건강한 교회 세움 시리즈 4
안재경 지음 / 세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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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여러 오해가 있다. 그중 가장 지독한 것이 목사를 교회의 '대표이사'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도 수 많고 예배당이 큰 대형교회 목사는 경영 수완이 출중한 대기업 CEO다. 반대로 성도 수와 예배당 평수가 적은 소교회 목사는 무능력한 자영업자다. 한편 장로와 안수집사는 다른 성도보다 서열이 높은 임원급으로 생각한다. 장로가 되려면 돈 좀 있어야 하고 장로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목사의 경영권을 견제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전부 잘못된 인식으로 작금의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얼마나 큰 조롱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라 하겠다.

교회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안재경 목사(예장고신)의 『직분자반』은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은 성경과 역사에서 배우는 올바른 직분의 정의를 알려준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직분의 주체가 인간의 의지나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있음을 전달한다. 1부는 직분의 성경적 의미를 다루고, 2부는 성경에서 세워진 다양한 형태의 직분을 다룬다. 3부는 목사를 비롯해 현재 교회에 존재하는 직분의 종류를 소개한다. 4부는 교회 직원을 세우는 실제적인 방법과 임직 훈련을 설명한다. 즉 직분의 의의부터 역사와 직무를 넘어 실제 교회에서 세우고 교육하고 임직하는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성이 이 책의 강점이다. 난해하고 전문적인 신학 용어를 배제하고 평범한 목회적 언어로 쓰인 점은 이 책의 타깃층을 분명히 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개혁주의 장로교회의 직분론을 쉽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직접적인 성경적 근거가 있는 직분인 목사와 장로와 안수집사를 무게 있게 다루었다. 매 장마다 내용을 요약하고 토론 주제를 실어 복습할 수 있도록 했다. 불필요하거나 본질에 벗어난 부분은 다루지 않은, 제목 그대로 '직분자반'에 충실한 기술이 돋보인다.

교회 직분의 의의를 신·구약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설명한 점은 이 책의 가장 탁월한 부분이다. 구약과 신약을 율법과 복음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하는 건 적절치 않다. 구약과 신약의 본질은 동일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6항은 신·구약의 차이를 "본질이 다른 두 개의 은혜언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동일한 은혜언약이 다양한 경륜들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구약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통합되고 완성되었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 초대 교회에 세워진 다섯 직분 중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창설직'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남아 있다. 이 세 직분은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 내에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항존직'으로 불린다.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에 따른 신·구약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교회 직분을 이해하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바로 장로의 직무에 관한 내용이다. 통상 장로의 역할이란 천국 열쇠를 쥔 치리회의 일원으로 성도를 잘 다스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장로의 역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장로가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을 보호하는 직분'이라는 점이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면 장로는 그 말씀을 보호한다. 목사를 감시하고 설교권에 간섭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일에 (목사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것이 장로를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장로는 말씀에 정통해야 한다. 말씀의 바른 이해와 통치 안에서 치리회(당회)에 참여하고 성도를 심방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안수집사에 대한 바른 이해도 중요하다. 흔히 안수집사를 장로로 가는 관문이나 사전 훈련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강력한 안수집사회를 구축해 장로회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로와 안수집사(이후 집사라 칭함)는 직무와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는 직분이다. 장로가 다스리는 자라면 집사는 구제를 위해 부름을 받은 자이다. 성도들의 교제로부터 소외되는 이들이 없는지 돌아보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 세움을 입은 직분이 바로 집사이다. 그렇기에 집사는 교회에서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목사는 말씀을 바르게 선포함으로, 장로는 그 말씀으로 다스림으로, 집사는 그 말씀으로 돌봄으로써 교회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서나 갈 수 있다.

고백하자면 6월 초 섬기는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피택되었다. 이 책은 교회 임직자 교육 과정의 교재로 만났다. 이 서평도 그 교육의 일환이다. 임직을 준비하면서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경적 고찰이 절실하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에서 교회 직분에 대해 이토록 신학적이고 실제적으로 배우고 가다듬을 날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더 열심히 배우고 훈련받고자 한다. 하나님은 직분자를 수단으로 통치하신다.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중직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갈 뿐이다.

서평을 정리한다. 『직분자반』은 교회 직분자 교육 교재로 손색없는 탁월한 책이다.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문제가 직분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때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건 매우 긴요하다. 교회 직분에 서열과 계급은 없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모든 직분은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 단 질서와 구별이 있을 뿐이다. 직분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일반 신자부터 중직에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조예가 부족한 직분자들에게 안재경 목사의 『직분자반』을 추천한다. 부디 한국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자신의 직무를 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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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 신학연구위원회 지음 / 영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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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바다에 빠져 살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교회에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하 '웨민'을 칭함) 강의를 수강해 끝마쳤다. 강의와 더불어 웨민의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해 정요석 박사와 스프로울 박사의 해설서를 각 3독씩 병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웨민이 얼마나 풍성하고 엄밀하며 유기적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스프로울의 말대로 기독교 역사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보다 더 꼼꼼하고, 더 정확하고, 더 철저하고 그리고 더 포괄적인 신앙고백서는 없다.

18개월 동안 웨민의 바다에 빠져 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강의 프린트와 병독(倂讀)한 해설서마다 번역이 가지각색이라는 점이다. 웨민은 밀도 있고 엄밀한 문장을 담고 있어 일부 절을 통째로 외우는 게 유익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해설서마다 번역이 조금씩 달라 어떤 번역본에 방점을 찍을지 고민스러웠다. 같은 교단(예장합신) 안에서 출간된 텍스트가 안정적일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정성호 목사(수원 선목교회 담임)가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을 주로 참조하곤 했다.

교회 웨민 강의를 끝마칠 때쯤 개인이 아닌 총회(예장합신) 차원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음사에서 출간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예장합신 신학연구위원회가 번역을 주도해 신앙고백서뿐 아니라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교회정치까지 웨스트민스터 5개 문서를 모두 담았다. 교단 내에 목사나 교수 차원의 개인적 번역은 많았으나 교단 차원의 공적 번역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략히 책의 몇 구절을 훑어봤는데 번역의 질이 상당히 높았다. 긴 문장을 짧고 명료한 단문장으로 변환시킨 게 아주 좋았다.

이 책의 탁월함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가진 신학적 엄밀성을 현대적 번역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앞서 만났던 여러 번역본의 부딪힌 긴 문장, 어색한 표현, 애매한 문장 구조, 비문 등을 없애고 명료한 문장으로 가다듬었다. 불필요한 접속사로 연결해 비대한 문장이 되었던 것을 명료한 단문장으로 나눠서 처리했다. 의미 부여를 위해 쉼표를 적극 활용한 부분도 돋보인다. 특히 기존에 고착된 한자의 신학용어를 일반 성도들도 알기 쉽게 평이한 단어로 바꾼 것은 인상적이다. 가령 '칭의(稱義)'를 '의롭다 하심'으로, '승귀(昇貴)'를 '높아지심'으로 번역했다. 특히 소요리문답은 교회 아이들의 교리 공부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쉬운 문장으로 번역했다.

이번 번역 작업은 무려 7년에 걸쳐 연인원 644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영어 원문뿐 아니라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을 병행 참조했고 조사와 대명사의 사용 적절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문장을 다듬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신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번역위원으로 참여한 이남규 교수는 나와 같은 교회를 다녔고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역자와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삶과 신학이 일치한다는 면에서 이 교수는 내 주변 최고의 모범이다. 정요석 목사는 일면식은 없지만 명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를 통해 호감을 가진 바 있다. 내가 지금껏 읽어본 웨민 해설서 중 정 목사의 책은 단연 최고다.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벨탑 사건 이래 사람은 각기 다른 언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번역 작업의 엄존함은 실로 무겁다. 번역은 사람의 작업이기에 흠과 오류가 불가피하다. 이 세상 텍스트 중 하나님에게 직접 영감된 성경 원어(히브리어 구약, 그리스어 신약)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류와 한계가 있다. 또한 시대마다 언어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로교회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을 시대에 맞게 주기적으로 개정·번역하는 작업은 긴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속한 교단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공적 번역한 것은 상당한 자부심이라 할만하다. 이 거룩한 자부심 위에 신간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놓여 있다.

근자에 장로교회 안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을 내세우면서도 성도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먹고살기 힘들고 멘토와 힐링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죄와 회개는 따분한 얘기일 수 있다. 어린이 영어캠프나 부흥회와 같은 실용적이고 촉촉한 터치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많다. 강단(하나님의 말씀)보다 '어와나(Awana)'의 시행 여부로 교회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보다 인간의 기호에 목회적 스탠스를 두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안타깝다.

단언컨대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성경의 일부 구절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이단적 세계관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 시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반드시 '전체 성경(tota scriptura)'과 함께 가야 한다. 신학자 신원군 교수의 말대로 성경과 교리는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비루한 시대적 맥락을 직시할 때 예장합신 신학연구위원회의 헌신적 수고로 쓰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보석과 같은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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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 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정요석 지음 / 크리스천르네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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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신앙서적을 만났다. 정요석 박사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Ⅰ·Ⅱ』는 장로교회의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후 '웨민'으로 칭함)를 주해한 해설서다. 웨민 해설서는 시중에 많이 출간되어 있다. 로버트 쇼나 R. C. 스프로울의 책을 필두로 국내 출간된 해설서만 수십여 권에 이른다. 단언컨대 지금껏 내가 읽어본 웨민 해설서 중 최고다. 깊고 풍성하고 은혜롭다. 사역자와 평신도, 학생과 성인 모두를 아우를만큼 폭넓은 수준으로 쓰였다. 웨민을 딱딱한 교리적 관점을 넘어 우리의 삶까지 적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런 귀한 책을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눈부시다.

주지하다시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는 1647년 영국에서 여러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건과 학식을 겸비한 121명의 목사와 신학자, 귀족과 하원의원 등 159명으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Westminster Assembly, 이하 WA)가 5년 8개월간 기도와 금식을 동반한 마라톤 회의와 충분한 숙려 끝에 완성했다. 문장 하나하나 매우 신중하게 다듬고 수정하여 처음부터 아예 논쟁을 배태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게 현대 신학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미국에 영향을 받은 한국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표준 문서로 지금까지 채택되어오고 있다.

교회에 새롭게 부임한 담임목사님 주관으로 웨민 교리 공부를 하던 중에 보다 깊은 흐름을 통찰하고 싶었다. 웨민 신앙고백과 소요리 문답은 이미 오래전 수차례 훑어본 교리서라 색다를 건 없었으나 무언가 '깊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가령 삼위일체와 예정론을 교리적으로 아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평소 내 삶과 언어에 어떻게 녹여내는가에 대한 방법적·언어적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즉 뜬구름 잡는 신학 교리가 아닌 삶과 신앙의 실제적인 적용을 원했다. 이런 내 갈증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는 적확했고 탁월했다.

2권으로 구성된 책은 웨민 33장을 매우 자세히 살핀다. 1권은 '14장 - 구원하는 믿음'까지 다루고 2권은 이후 33장 끝까지 다룬다. 각 항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내 깔끔한 개혁주의적 해석과 일반 신자도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설명으로 주해한다. 이 책의 탁월함은 신앙고백의 문장 독해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웨민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신성/인성)을 다룰 때에 "신성과 인성은 변환이나 혼합이나 혼동됨이 없이, 한 위격 안에서 분리할 수 없게 서로 연합되었다"는 문장의 주석 외에도 테스토리우스의 두 인격과 유티케스의 단성론의 문제점, 그리고 교리 논쟁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함께 다룬다. 그럼으로써 '칼케돈 공의회(451)'의 교회사적 유의미성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 준다.

이 책의 또 다른 탁월함은 각 장을 다룰 때 연관성 있는 다른 장·항을 수시로 인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웨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유기적이고 통일성 있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해당 장을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기술적 장치가 된다. 예컨대 소명, 중생,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어지는 구원론의 논리적 서정을 다루면서 '3장 - 하나님의 작정'과 '8장 -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 항들을 수시로 인용·반복하는 것이다. 독자는 전체에서 부분을 들여다보는 '전체 성경적' 안목을 고양할 수 있고, 매장마다 수시로 소환되는 앞선 장들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교리 공부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근거 성경 구절을 직접 수록해 성경을 찾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덤이다.

두꺼운 책을 정독하면서 "교리가 이토록 은혜로울 수 있구나" 하는 감동과 도전이 적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은혜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교리 학습은 앎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차원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조차도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는 걸 알려주기에 주변에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을 전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나를 올려놓는다. 모든 게 예정되어 있어 우리의 기도는 무의미한 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래서 나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각성시킨다. 자만과 교만은 줄어들고 겸손과 섬김이 증가한다. 교리가 삶을 바꾸는 것이다.

근자에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면서 개혁주의 신학을 고집하는 장로교회에서도 신자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다고 한다. 먹고살기 힘들고 멘토와 힐링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죄와 회개는 따분한 얘기일 수 있다. 어린이 영어 학교나 부흥회와 같은 실용적이고 촉촉한 터치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많다. 교회는 양적 부흥을 위해서라면 일단 온갖 이벤트를 다하고 본다. 하지만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더욱이 성경의 일부 구절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이단적 세계관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 시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항시 전체 성경(tota scriptura)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신앙)은 성경->신조->신학->신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적인 개혁주의 장로교 신자 중에서도 '이중예정'이나 '제한속죄'와 같은 교리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꽤 있다. 가령 제한속죄는 도르트 신조가 결의한 칼빈주의 5대 강령 중 하나로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과 함께 구원론의 핵심을 이루는 교리다. 이 5대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의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불가해한 신정론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웨민은 신론(2~5장)을 다룰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방식(2장)을 다루고 그 후에 작정과 섭리(3~5장)로 넘어간다. 웨민은 그만큼 성경의 완벽함과 신자의 부족함 사이를 잘 가늠한다.

신천지나 알미니안이 요동치고 있는 혼탁한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존재는 귀하다. 나는 목사, 장로, 집사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치는 직분 모두, 즉 구역장과 교사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순종할 것에 선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고약한 사조가 교회 안까지 침범해 참된 진리를 허물어뜨리려 하는 세태가 정말이지 짜증 나서 못 견디겠다. 이럴 때 성경을 붙잡고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그 거룩한 컨택의 건강한 안내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풍성한 강해서로 정요석 박사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가 놓여 있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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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5대 제국 - 통通박사 조병호의
조병호 지음 / 통독원(땅에쓰신글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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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녁이다. 두 딸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 녀석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큰딸이 질문한다. "아빠! 성경은 진짜 있었던 이야기야?" 아니 이게 웬일인가. 3대에 걸친 기독교 가정에서 성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있다니. 하긴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이라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신화 같은 에덴동산 이야기, 이집트의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모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간 엘리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등 기독교는 온갖 신비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아이는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이 진짜 있었던 실제 역사임이 궁금했던 것이다. 아빠(나)의 답변은 뭐였겠는가. 당연히 "그렇지"였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주변 지인에게 기독교 신앙과는 별개로 성경은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전도에 어느 정도 목적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지만 성경만큼 완성도 높고 배울 게 많은 책도 많지 않다. 특히 구약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데 당시 중동 지역의 역사와 포개지면서 흥미롭고 박진감 넘친다. 성경에 나온 인명과 지명이 모두 세계사의 실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차원을 넘어 역사적 맥락에서 탐구하면 과히 놀라움과 스펙터클함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일독을 권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총 다섯 제국이 나온다. 실제 역사 순서대로 아수르(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알렉산더), 로마 제국 순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각 제국은 당시 근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였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섯 제국의 역사는 비단 성경이 아니더라도 세계사라는 대양 위에서 다양한 기록과 문헌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개되어 왔다. 조병호 교수의 『성경과 5대 제국』은 기독교의 역사가 다섯 제국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성경적·역사적 관점에서 기술했다. 명저다.

이 책의 강점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력에 있다. 신자든 불신자든 불편하지 않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성경적이지만 세계사적이고 역사적이지만 신앙적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거대 제국을 당신의 구속사를 위해 어떻게 들어 쓰셨는지를 은혜롭게 읽어낸다. 비기독교인은 마냥 신화와 같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실제 있었던 세계 제국의 역사에 포개며 학습한다. 신자에게는 은혜롭고 비신자에게는 교훈적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히는 점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라는 분량에서 핵심만을 짚어낸 점이 탁월하다. 저자는 목사이자 교수로서 평소 성경 통독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꾸준히 강조해왔다. 저자가 그간 집필한 책들의 대부분이 성경 읽기와 관련이 있고 공개석상의 강연과 유튜브 영상도 온라인상에 적잖이 올라와 있다. 성경은 세밀하게도 읽어야 하지만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맥을 잡고 큰 틀에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정독과 깊이 있는 묵상이 가능하다. 맥을 잡지 못한 채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만 함몰되면 오독하거나 이단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런 면에서 성경 읽기의 통독적·조망적 관점을 명료하게 제시한 저자의 수고는 아름답다. 

사실 그렇다. 성경은 개신교를 비롯한 범 아브라함 태생 종교(유대교/이슬람교/가톨릭/성공회 등)가 공유하는 신(神)의 선물이다. 기독교 중심적으로 말하자면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말씀이다. 간혹 구약을 그저 옛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성경의 완결성에 대한 무지한 도전이다. 창세기 12장부터 펼쳐지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민족의 역사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당대 세계를 제패한 여러 제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이집트, 앗수르, 바빌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에 이르는 고대 근동의 패권은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 일깨운다. 모든 제국은 한결같이 다 망했다. 영원한 제국은 없었다.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세계의 왕이 누구인지를 성경은 일관된 흐름으로 설파한다.

최근 교회의 젊은 후배 집사와 차를 한잔할 일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함께 자란 사이인데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 친구다. 최근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어 아내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제법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힘 있고 건강한 신앙생활의 선결조건은 '성경을 아는 것'임을 도전 주었다. 그저 문장을 읽는 게 아니라 골격을 갖춰 조망해야 함을 강조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시간과 공간 위에 올려놓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훈수했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이 책은 그날 추천의 최전선에 있다. 그 후배뿐 아니라 성경을 세계사적 실제 사건으로 읽기 원하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조병호 교수의 『성경과 5대 제국』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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