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신앙서적을 만났다. 정요석 박사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Ⅰ·Ⅱ』는 장로교회의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후 '웨민'으로 칭함)를 주해한 해설서다. 웨민 해설서는 시중에 많이 출간되어 있다. 로버트 쇼나 R. C. 스프로울의 책을 필두로 국내 출간된 해설서만 수십여 권에 이른다. 단언컨대 지금껏 내가 읽어본 웨민 해설서 중 최고다. 깊고 풍성하고 은혜롭다. 사역자와 평신도, 학생과 성인 모두를 아우를만큼 폭넓은 수준으로 쓰였다. 웨민을 딱딱한 교리적 관점을 넘어 우리의 삶까지 적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런 귀한 책을 왜 이제서야 만났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눈부시다.
주지하다시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는 1647년 영국에서 여러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경건과 학식을 겸비한 121명의 목사와 신학자, 귀족과 하원의원 등 159명으로 구성된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Westminster Assembly, 이하 WA)가 5년 8개월간 기도와 금식을 동반한 마라톤 회의와 충분한 숙려 끝에 완성했다. 문장 하나하나 매우 신중하게 다듬고 수정하여 처음부터 아예 논쟁을 배태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게 현대 신학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미국에 영향을 받은 한국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표준 문서로 지금까지 채택되어오고 있다.
교회에 새롭게 부임한 담임목사님 주관으로 웨민 교리 공부를 하던 중에 보다 깊은 흐름을 통찰하고 싶었다. 웨민 신앙고백과 소요리 문답은 이미 오래전 수차례 훑어본 교리서라 색다를 건 없었으나 무언가 '깊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가령 삼위일체와 예정론을 교리적으로 아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평소 내 삶과 언어에 어떻게 녹여내는가에 대한 방법적·언어적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즉 뜬구름 잡는 신학 교리가 아닌 삶과 신앙의 실제적인 적용을 원했다. 이런 내 갈증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는 적확했고 탁월했다.
2권으로 구성된 책은 웨민 33장을 매우 자세히 살핀다. 1권은 '14장 - 구원하는 믿음'까지 다루고 2권은 이후 33장 끝까지 다룬다. 각 항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내 깔끔한 개혁주의적 해석과 일반 신자도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설명으로 주해한다. 이 책의 탁월함은 신앙고백의 문장 독해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웨민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신성/인성)을 다룰 때에 "신성과 인성은 변환이나 혼합이나 혼동됨이 없이, 한 위격 안에서 분리할 수 없게 서로 연합되었다"는 문장의 주석 외에도 테스토리우스의 두 인격과 유티케스의 단성론의 문제점, 그리고 교리 논쟁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함께 다룬다. 그럼으로써 '칼케돈 공의회(451)'의 교회사적 유의미성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해 준다.
이 책의 또 다른 탁월함은 각 장을 다룰 때 연관성 있는 다른 장·항을 수시로 인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웨민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유기적이고 통일성 있게 조직되어 있는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해당 장을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기술적 장치가 된다. 예컨대 소명, 중생,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로 이어지는 구원론의 논리적 서정을 다루면서 '3장 - 하나님의 작정'과 '8장 -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 항들을 수시로 인용·반복하는 것이다. 독자는 전체에서 부분을 들여다보는 '전체 성경적' 안목을 고양할 수 있고, 매장마다 수시로 소환되는 앞선 장들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교리 공부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 근거 성경 구절을 직접 수록해 성경을 찾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덤이다.
두꺼운 책을 정독하면서 "교리가 이토록 은혜로울 수 있구나" 하는 감동과 도전이 적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은혜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교리 학습은 앎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차원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조차도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는 걸 알려주기에 주변에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을 전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나를 올려놓는다. 모든 게 예정되어 있어 우리의 기도는 무의미한 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그래서 나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각성시킨다. 자만과 교만은 줄어들고 겸손과 섬김이 증가한다. 교리가 삶을 바꾸는 것이다.
근자에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면서 개혁주의 신학을 고집하는 장로교회에서도 신자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다고 한다. 먹고살기 힘들고 멘토와 힐링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죄와 회개는 따분한 얘기일 수 있다. 어린이 영어 학교나 부흥회와 같은 실용적이고 촉촉한 터치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많다. 교회는 양적 부흥을 위해서라면 일단 온갖 이벤트를 다하고 본다. 하지만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더욱이 성경의 일부 구절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이단적 세계관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 시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항시 전체 성경(tota scriptura)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신앙)은 성경->신조->신학->신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수적인 개혁주의 장로교 신자 중에서도 '이중예정'이나 '제한속죄'와 같은 교리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꽤 있다. 가령 제한속죄는 도르트 신조가 결의한 칼빈주의 5대 강령 중 하나로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과 함께 구원론의 핵심을 이루는 교리다. 이 5대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의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불가해한 신정론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웨민은 신론(2~5장)을 다룰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방식(2장)을 다루고 그 후에 작정과 섭리(3~5장)로 넘어간다. 웨민은 그만큼 성경의 완벽함과 신자의 부족함 사이를 잘 가늠한다.
신천지나 알미니안이 요동치고 있는 혼탁한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존재는 귀하다. 나는 목사, 장로, 집사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치는 직분 모두, 즉 구역장과 교사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순종할 것에 선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고약한 사조가 교회 안까지 침범해 참된 진리를 허물어뜨리려 하는 세태가 정말이지 짜증 나서 못 견디겠다. 이럴 때 성경을 붙잡고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그 거룩한 컨택의 건강한 안내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풍성한 강해서로 정요석 박사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가 놓여 있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