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커가면서 요구하는 게 많아진다. 요구사항이 구체적이고 규모도 커진다. 어렸을 때는 작은 인형 하나에도 울고 웃던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요구하는 스케일도 커졌다. 돈의 개념을 알아가면서 싼 것보다 비싼 것을, 헌 것보다 새것을 지향하고 욕망한다. 물론 인간에게 물욕(物慾)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돈과 물질에 관한 올바른 철학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자식이 커가면서 요구하는 게 많아진다. 요구사항이 구체적이고 규모도 커진다. 어렸을 때는 작은 인형 하나에도 울고 웃던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요구하는 스케일도 커졌다. 돈의 개념을 알아가면서 싼 것보다 비싼 것을, 헌것보다 새것을 지향하고 욕망한다. 물론 인간에게 물욕(物慾)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돈과 물질에 관한 올바른 철학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어느덧 고학년이 되어 돈과 물질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예민하게 배워가는 중이다. 할아버지·할머니로부터 금일봉을 받을 때마다 '세종대왕'보다 '신사임당'을 열망하는 나이가 되었다.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용돈이나 금일봉을 받으면 바로 엄마·아빠에게 주었는데 이제는 자기 지갑으로 먼저 들어간다. 아직까지 돈은 부모가 관리하는 것이기에 1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을 경우 본인 계좌에 넣어주다고 압수하곤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현금 회수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요컨대 돈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해(구정)를 맞이해 스마트폰을 바꿔주기로 약속했다. 두 딸 모두 바꿔준다고 약속했기에 최근 어떤 기종이 좋을까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지금 첫째 딸이 사용하는 기종은 내가 과거에 사용한 '갤럭시S7'이라는 오래된 모델이다. 출시 시점으로 보면 만 6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게다가 액정이 깨졌고 디스플레이에 잔상과 번인까지 있어 그간 불편하게 사용해왔던 게 사실이다. 둘째는 말할 것도 없겠다. 이에 전격 바꿔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고민하지 않았겠다. 그냥 내가 쓰던 것을 주거나 조금 더 쓰라고 얘기하면 큰 탈 없이 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돈 개념과 물질 가치를 아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에게 무조건 "이거 그냥 써라", "저것으로 그냥 바꿔 써라" 라는 접근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책정한 예산이 있었다. 그 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보급형 새 모델을 사줄까 생각했다. 가장 유력한 선택 후보였다. 그런데 아무리 보급형이라 해도 새것은 제법 비쌌다. 가족결합으로 요금제가 묶여있어 자급제로 구매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득이었다. 기기 자체를 생돈으로 구입해야 했다. 돈이 없진 않았지만 과연 그렇게 하는 게 맞나 생각했다.
고심 끝에 성능이 우수한 상위 기종을 중고로 구매하는 것을 생각했다. 남이 사용한 제품이지만 깨끗하게 잘 관리한 모델은 새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관심 모델들을 검색한 결과 보급형 신품보다 하이엔드 중고가 가성비 차원에서 높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미 무선 충전, 방수, 지문 인식 등의 고급 기능을 사용해온 아이가 이를 지원하지 않는 보급형 기기를 사용하는 건 왠지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다. 돈의 가치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당* 마켓'에서 괜찮은 S급 중고품을 찾았다. 거래 의사를 타진했다.
단 아이를 설득하는 게 문제였다. 아이가 "돈 아끼려고 새것이 아닌 남이 쓰던 것을 사주는 게 아니냐" 반문(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면 알아듣기 쉽게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겠지만 첫째 아이는 한참 예민하고 효율성을 잘 모르는 초등학생 5학년 여자아이였다. 이 대목에서 내 고민이 깊어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기능적으로 더 좋은 제품을 아이 손에 안겨주고 싶었고 다만 내가 예상한 금액 선을 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엔드 중고제품이 가장 적합했다. 한편 아이가 무작정 새것을 추구하기보다 남이 쓰던 것이라 해도 내용이 괜찮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외연보다는 내면을, 비본질보다는 본질을, 형식보다는 내용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아이로 커가기를 갈망했다.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떤다고 나무랄 사람들이 있겠다. 그냥 고민하지 말고 새 거 사주면 되지 유난 떤다 말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두 딸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고 시각적 인지 이면에 있는 고결한 가치를 탐색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새것의 화려함보다 옛것의 묵직함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욕을 인정하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돈의 가치를 아는 아이로 자라가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 세계 곳곳에 존재해 있는 여러 헌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목도하면서 본질적으로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단 이 시대 부모들이 가진 잘못된 전제 중 하나는 '좋은 것'을 '새것' 혹은 '비싼 것'으로 아무 고민 없이 환치한다는 데 있다. 새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비싼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그 시기와 상황에 맞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누군 능력이 없는가. 나도 아이에게 사과 회사에서 만든 최신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사줄 경제적 역량이 있다. 사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아 안 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산을 미리 정해놓았던 것이다. 아이가 주변 친구 중 몇 명이 위아래로 접히는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며 자랑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비싸고 히트작인 신상을 사주려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과연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다.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다음을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새것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비싼 것도 근원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못한다. 별이 아름다운 건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별에 도달하는 순간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와 같은 유행가는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이다. 아이에게 가질 수 없는 것, 굳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 나중에 가져도 되는 것, 을 가르치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내 신념에서 이번 선택은 아이와 나와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하나의 시험이자 도전이었다. 결국 나는 계획대로 중고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선물했다. 비록 새것은 아니지만 성능 면에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기기를 사준 나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기분 좋았던 건 아이의 반응이다. 새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쓰던 것보다 나아진 성능에 고무되어 마냥 즐거워하는 첫째 딸의 모습에서 궁극의 기쁨을 엿본다. 아빠에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연신 춤을 춘다. 성능 떨어지는 새것보다 성능 좋고 상태 좋은 헌것이 더 좋다, 라 말한다. 괜히 우려했던 나 자신만 멋쩍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농밀한 감동에 가슴을 적신다. 부모에게 아이를 키우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힘들고 속상할 때도 많지만 아이가 가끔 이렇게 순수한 영혼의 빛을 뿜어낼 때마다 부모는 행복하고 경이로운 순간을 맛본다. 첫째 딸이 아빠의 '헌것 철학'을 잘 받아주고 이해해 줘서 너무 기쁘고 대견하다. 정말 기분 좋다.
사랑하는 나의 첫째 딸 다인아. 아빠의 작은 선물에도 밝고 명랑하게 반응해 줘서 고맙구나. 아빠는 오늘 너의 모습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단다. 아빠는 기도한다. 다인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새것의 획득됨에 잠시 기뻐하기보다 헌것의 실용성을 오래 누릴 수 있기를. 그래서 새 친구를 사귀는 일 못지않게 옛 친구를 챙길 줄 알고, 알 수 없는 새로운 미래에 두려워하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사상과 조류에 흥분하기보다 옛것의 본질인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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