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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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료한가.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가. 하지만 가벼운 장르소설은 싫은가. 그렇다면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기 바란다. 이시구로의 소설은 한결같이 재미있고 묵직하고 감동적이다. 초기작 『창백한 언덕 풍경』(1982)부터 최신작 『클라라와 태양』(2021)까지 그의 소설은 삶과 시간과 기억 너머에 있는 인간성의 희망을 추적한다. 대부분 1인칭 화자를 주인공으로 배치해 역사와 추리, SF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인간 문명의 이기와 한계를 고발하는 동시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 또한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녹턴』은 2009년에 출간된 이시구로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부제가 눈에 띈다. 총 다섯 개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는데 부제가 암시하듯 단편 곳곳에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인물이 정면에 배치된다. 이시구로는 음악을 문학적 소재로 차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는다. 『녹턴』에는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다양한 삶의 양태가 녹아 있다. 음악적 예술혼 위에서 사랑과 기억과 시간을 관통하는 애잔한 단편들이 독자의 가슴을 적신다.

첫 번째 소설 「크루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광장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얀(야네크)이 화자로 등장한다. 그가 광장에서 연주하던 중 한물간 가수 토니 가드너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얀의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토니의 광팬이었다. 얀은 토니에게ㅡ어머니와의 관계도 있고 해서ㅡ적극적으로 다가가 말을 건다. 근데 토니는 아내 린디와 헤어지기 위한 이별 여행 중이다. 토니는 린디의 인생 여정을 얀에게 자세히 들려주고 린디의 호텔 창문 밖 곤돌라 위에서 그녀를 위한 세레나데를 준비한다. 토니가 노래를 부르고 얀은 기타 반주로 합류한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얀은 토니와 아내의 이별 소식을 전해 듣고 그날 밤(베네치아에서의 만남)을 회상한다.

두 번째 소설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레이 찰스의 곡 'come rain or come shine'에서 따온 제목이다. 레이먼드는 자신의 절친 찰리의 요청으로 런던에 있는 찰리 집으로 향한다. 레이먼드가 친구 집에서 겪는 예기치 않은 에피소드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찰리는 아내 에밀리와의 부부 생활에 위기가 닥쳤다. 에밀리는 레이먼드의 대학 동기여서 서로 아는 사이다. 아내와의 위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친구 레이먼드밖에 없다고 여긴 찰리는 레이먼드에게 도움을 청하고 해외로 출장을 떠난다. 찰리의 요청을 수락하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레이먼드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한다. 그런데 레이먼드와 에밀리가 옛 시절에 음악을 매개로 공유했던 기억 너머의 공감대로 인해 이야기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열린 결말을 통해 독자는 사랑과 우정과 시간을 관통하는 음악의 힘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된다.

표제작 「녹턴」은 첫 단편 「크루너」와 연결된다. 토니 가드너의 아내 린디가 「녹턴」에도 등장한다. 린디는 「크루너」에서 화자 얀과 남편 토니로부터 언급되고 수식되는 수동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녹턴」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린디는 재능은 있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저평가를 받는 색소폰 연주자 스티브와 함께 위험하고 대담한 일을 벌인다. 스티브와 린디 모두 전과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당대 최고의 의사 보리스로부터 성형수술을 받는다. 같은 병원에서 같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서로 옆방에 놓이게 된 두 사람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만나 서로 인정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된다. 그러던 중 생각지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블랙코미디와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삶과 사랑과 자존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무명의 젊은 뮤지션 '나'가 시골 카페를 운영하는 누이 부부의 집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말번 힐스」는 수록작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화자는 누나의 카페에 종종 들리는 스위스인 부부 틸로와 소냐와 가까워진다. 그들은 관광차 영국에 방문했는데 음악과 예술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가진 프로 뮤지션이다. 그러나 두 부부 사이에 벽이 존재하고 갈등이 있음을 화자는 알아차린다. 소설의 말미에 남편 틸로가 산책하는 동안 화자와 소냐가 대화하는 장면은 삶과 성공의 방정식에 지친 수많은 독자에게 위로를 안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마지막 단편 「첼리스트」다. 헝가리 출신 첼리스트 청년 티보르는 우연히 미국의 중년 여인 엘로이즈를 만나 첼로 개인 교습을 받는다. 티보르는 교습을 받을 때마다 엘로이즈에게 빨려 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엘로이즈는 말로만 코칭할 뿐 자신이 직접 첼로를 켜진 않는다. 티보르의 의심이 쌓이는 만큼 소설의 긴장은 고조되며 무언가의 비밀이 밝혀진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서사의 전개 과정이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다섯 편의 소설 모두 음악을 소재로 하여 인간이 처한 현실과 이상의 문제를 관통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낭만을 꿈꾼다. 그러나 낭만으로만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실력과 경쟁이라는 냉엄한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진짜 사랑과 진짜 행복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참 나'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옳은 명제임에도 일부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나'가 '나 외의 것'과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인식 하에서만 인간 문명의 발전은 가능하(했)다. 나를 발견하는 것. '참 나'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타자와 어떻게 분리되는지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사랑하고 진실한 행복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녹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꿈과 사랑을 채우지 못한 결핍의 존재들이다. 부재와 결핍은 인간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흥미로운 건 인물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 모두 음악을 갈망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는 노래하고 어떤 이는 연주하며 어떤 이는 교습한다. 음악은 인간에게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게 하는 윤활유가 되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침잠 속에서 외부를 잠시 잊게 하는 힐링과 위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음악은 모든 공간을 채우고 전 시간을 장악한다. 소설 『녹턴』의 주인공은 음악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위원회는 이시구로에 대해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우리의 환상적 감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발견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그는 과거를 이해하는데 큰 관심을 보여왔고, 개인이자 사회로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탐구하고 있다”며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어놓은 듯하다. 여기에 마르셀 프로스트의 성향도 약간 가미돼 있다”고 극찬했다. 카프카와 프로스트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 한림원의 평이 낯설긴 하지만 이시구로의 소설 속에 오스틴의 로맨스와 유머감각, 카프카의 꿈과 기억, 프로스트의 시간과 의식의 흐름이 여러 층위에 긴밀하게 뒤섞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서평의 서두로 돌아가자.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지루하고 난해하고 만연한 소설은 질색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훈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의 존재 목적은 '인간성의 탐구'이다. 즉 '좋은 소설'은 재미있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옹호하고 성찰하는 소설이다. 이 명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녹턴』을 아낌없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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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길
김욱동 지음 / 연암서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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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입장에서 번역된 책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역자가 얼마나 거대한 엉덩이의 힘을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서평 한 편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려울진대 방대한 원문을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며 다른 언어로 변환하는 번역가들의 수고는 감히 어림잡기 힘들다. 존경스럽기도 하다. 글쓰기는 고통이다. 글은 써본 사람만이 안다. 시든 소설이든 평론이든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텍스트를 직접 써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의 영역이란 게 있다. 그것을 알기에 역자의 수고는 그 자체만으로 경이로워 보인다.

고전을 즐겨읽는 나에게 세계문학 번역가들은 모두 지적이고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채권자다. 특히 원문을 잘 이해하여 탁월한 한국어 역량으로 군더더기 없이 번역한 명망 있는 번역가들의 수고는 찬란하다. 가령 고 박형규 명예교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와 김화영 명예교수(고려대 불문학과)는 톨스토이와 카뮈의 작품세계를 안정적으로 탐독하는 데 도움을 준 분들이다. 세계 문학사에서 난해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10년 동안 매일 같이 6시간씩 번역 작업에 매진해 완역본을 낸 김희영 명예교수(한국외대)의 집념도 대단하다. 우리 같은 일반 독자는 이들의 수고와 헌신에 기대어 문학을 향유하고 있음을 부인해선 안 된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등 오랫동안 영미문학을 번역해온 김욱동 명예교수(서강대)가 번역을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번역가의 길』은 작가이자 학자이며 번역가인 김욱동 교수가 번역에 관한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밝힌 책이다.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번역에 관한 여러 주제를 훑는다. 책의 구성은 이렇다. 번역의 의미와 성격을 가장 먼저 배치했고 여러 오역 사례를 실었다. 속담에서 드러난 성차별을 꼬집고 성경 번역의 긴요성을 논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명대사를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어떻게 번역해왔는지 추적한다.

저자가 소개한 고전문학의 오역 사례는 일반 독자가 놓치기 쉬운 부분이라 흥미를 끈다. 저자는 우리가 서점에서 쉽게 선택하는 피츠제럴드, 포크너, 헤밍웨이 번역본의 오역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저자가 진단하는 오역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 번역자가 원천어에 대한 문해력이 부족하거나 소설의 시대적·문화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대표적이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은 가독성은 좋지만 정확성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는 한국 모 소설가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은 오역을 넘어 졸역 수준임을 여러 사례를 들어 증명한다. 잘 읽히는 유려한 번역은 정확성을 전제할 때만이 의미가 있음을 저자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사실 잘 읽히는 번역과 정확한 번역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독자들 사이에서도 뜨겁게 토론하는 주제다. 오래전 카뮈 번역의 올바름을 놓고 신생 출판사 대표가 국내 최고 카뮈 전문가에게 도전장을 던진 일이 있었다. 당시 많은 논란과 토론이 있었으나 결국 기존 권위를 전복하지 못한 채 싱겁게 끝이 났다. 그 사건은 번역에서 독창성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원리를 독자에게 일깨웠다. 원문이 난해하면 난해한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즉 있는 그대로를 옮기는 게 가장 정확한 번역인 것이다. 16세기 번역 이론가 에티엔 돌레가 번역가로서 염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으로 '원천어와 목표어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꼽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장 「성경 번역에 대하여」 또한 흥미롭게 읽힌다. 사실 성경의 문체는 지나치게 예스럽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은 '개역개정'이다. '개역개정' 번역 당시 보수적인 역자들이 문체를 조선어식으로 고집한 탓에 사어가 많고 의미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에 개인적으로 '개역개정'을 기본으로 하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불가피하게 주석을 보거나 '새번역'이나 '쉬운성경'을 참고하곤 한다. 한편 '새번역'의 경우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 번역했고 쉬운 말로 되어 있어 의미 파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시편》을 전부 산문으로 번역해 가독성과 시적 느낌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말씀의 음미성 차원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신학적인 부분과 맞물려 있어 평신도가 뭐라 논설하긴 적절치 않지만 시대와 상황을 고려할 때 '개역개정'만 고집하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개신교단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통합적인, 합의된 성경 번역에 대한 갈망은 지나친 욕심이자 환상일까.

서평을 정리하자. 작년 말 한강의 노벨문학상 쾌거에 온 국민은 열광했다. 평소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사람도 서점에 나가 소설을 손에 쥐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노벨상 효과일 것이다.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환호 속에서 놓치기 쉬운 헌신이 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의 성취 과정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수고가 있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성실하고 적확한 번역이 없었다면 한국 작가가 쓴 한국어 소설의 노벨상 수상은 요원했을 것이다. 번역은 그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작가의 글이 아닌 번역가의 글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번역의 현실과 중요성을 진솔한 에세이로 풀어낸 김욱동의 『번역가의 길』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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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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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인 줄 모르고 구독했다. 원래 책을 읽기 전에 사전 검색을 하지 않는 편이다. 과거 작가의 에세이가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저 그렇고 그런 소소한 이야기 모음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 예루살렘에 간다고. 아차 싶었다. 그제야 책 표지가 보였다. 황량한 사막 위에 솟은 성스러운 교회 사진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감동적인 에세이다. 공 작가가 이렇게 산문을 잘 썼나. 오래전부터 작가의 팬이었지만 나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왔다. 조금은 냉정하다고나 할까. 소설가로서 공지영은 인정해도 산문가로서 공지영은 쉽게 인정 못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풀어내는 작가의 '글결'이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 에세이는, 너무 좋았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공지영의 예루살렘 순례기이다. 작가는 수년 전 모든 sns 활동을 접고 서울을 떠나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배경이 된 후 '문학의 성지'처럼 여기던 곳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균열에 빠진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던 어느 날 한 후배의 부고를 접한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동경해온 예루살렘 순례 길을 결심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작가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기에 가능했지만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했다.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 강, 쿰란,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을 차례로 순례한다. 예수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죽음, 부활의 역사를 훑는다. 국경을 이동할 때마다 예수의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쟁 지역의 삼엄함을 목격한다. 여러 성소를 방문해 걷는 동안 성경을 묵상하며 거기에 자신의 삶을 포갠다. 작가에게 예루살렘의 글라라 수녀원은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안정된 수도자의 길을 버리고 오직 예수를 닮고자 했던 샤를 드 푸코 성인의 흔적이 담겼다. 작가는 푸코 성인의 삶을 많은 지면을 할애해 추적한다.

작가의 대표 에세이 『수도원 기원 Ⅰ·Ⅱ』의 계보를 잇는 듯하지만 결은 다르다. 두 책 모두 기독교(가톨릭) 신앙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다만 『수도원 기행』이 외부로부터 제안받아 기획되어 기행문 콘셉트가 강한 반면 이 책은 자전적 성찰에 더 방점을 두었다. 작가 스스로 그렇다 할 동기 없이 무심코 떠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글쟁이로서의 존립 위기의 한가운데서 출발한 순례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전보다 더 자유화한 작가적 고백과 성찰이 돋보인다. 미혹적 문장이 이끄는 울림이 대단하다. 완성형 에세이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작가는 한없이 낮아지는 자아의 현존을 느낀다. 작가가 전 인생을 통틀어 깨달은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을 예루살렘에서 더욱 명징하고 밀도 있게 받아들인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이 알고 믿은 것이 실상 거짓과 위선에 가려져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안 충격은 비단 작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마음을 이해한다. 작가의 통찰을 재청한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걸.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 믿음의 대상은 오직 신밖에 없다는 것을.

15년 전이다. 작가와 서초동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직접 만나 보니 '현실에 제법 화나 있는 여성 작가'란 아우라가 분명 있었다. 동시에 '작가라는 존재는 타자와 세계를 극히 세밀하게 바라보는구나' 하는 이미지도 강렬했다. 누구나 부조리를 안다. 비정의와 불공정을 목도한다. 못마땅하고 바꾸고 싶다. 하지만 들춰내기에 피곤하고 당장 이익이 되지 않기에 대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특별한 개입이나 혁명적 행동이 없는 한 이 세계ㅡ큰 사회이든 작은 조직이든ㅡ의 조악함과 비루함은 일반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독자보다 불편하고 예민하다. 조명하고 들춰낸다. 아니 들춰내고야 만다.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는 소설가 조정래의 말처럼 그들은 현실을 비틀어 더 생생한 진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때 나는 소설가 공지영에게서 그걸 생생히 느꼈다. 그리고 그해에 소설 『도가니』가 출간됐고 이듬해 그녀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의 제목을 생각한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얼핏 보면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하지만 책을 읽은 사람은 안다. 외로움이 부정적인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걸. 외로움은 독특한 상태다.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꼭 필요한 무언가이다.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어떤 내적 체제와 같은 것이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유를 관통해야 하듯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히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것이 외로움이 가진 거룩한 비밀이다. 참된 고독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공지영의 산문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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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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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시민의 책을 즐겨 읽는다. 잘 알다시피 나는 그의 정견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탐독하는 건 그의 말과 글이 논리와 재미 면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유시민만큼 지식을 언어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대중과 잘 호흡하고 전달 능력이 탁월한 지식인이 흔한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지식은 더 단단하고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반대자의 탄탄한 논설은 미처 생각지 못한 내 견해 너머에 있는 곳을 바라보게 해준다. 내가 유물론자이자 진보주의자이며 진화론자인 유시민을 '어색하게' 좋아하는 이유다.

유시민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흥미로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문과 출신인 저자가 자신의 비전문 분야인 과학을 다루었다. 여태까지 많은 책을 집필해왔지만 과학 관련 책은 단 한 권도 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과학 이야기를 들고나온 건 순전히 아내 한경혜 박사 덕분이다. 자신의 유튜브 도서 비평 방송 '알릴레오 북스'를 소재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수학사를 전공한 아내가 중간에 조정하여 기획하게 된 것이라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서문부터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에 불과하다고 안전장치를 깔아두는 저자의 너스레가 요란하다.

이 책은 크게 여섯 장으로 나누어 과학을 얘기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를 설명하고 이후 각 장마다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각 파트별 과학 분야의 개념이 설명될 때는 지루함과 난해함이 교차되는 것 같다가도 저자의 언어로 해석과 리뷰가 가미될 때는 흥미롭게 읽힌다. 과거 『청춘의 독서』에서 여러 고전을 소개했던 것처럼 여러 과학의 법칙과 뒷이야기를 저자의 시각으로 리뷰했다. 저자 특유의 입담이 글에도 잘 녹아 있어 독자를 과학의 세계로 촉촉이 견인한다.

초반부터 흥미롭다. 2장 '나는 무엇인가'에서 뇌과학을 다루며 칸트를 소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에게도 칸트 철학은 도저히 범접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명저라고 불리는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려다가 몇 장 넘기다 책장을 덮은 기억이 수도 없다. 저자도 그랬던 듯하다. 저자는 칸트의 난해성에 대해 문장은 철학적인데 내용은 과학적이라는 데서 찾는다. 『순수이성비판』 서론부터 물리학·기하학·대수학·생물학 용어가 출몰하고 본론 '선험적 원리론'에서 감성·직관·개념·감각 등의 개념이 과학적 용어와 뒤섞여 독자를 곤욕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칸트의 인식론을 양자역학에 대입해 풀이하기도 한다. 결국 (과학적이진 않았지만) 칸트가 옳았다는 것이다. 흥미롭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화학을 다룬 4장이다. 최근 환경과 기후 문제로 이슈가 된 탄소에 대해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탄소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다들 탄소를 비난하고 미디어에서 탄소 때문에 인류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로 이는 탄소에 대한 지나친 혹평이라고 탄소를 대변한다. 탄소야말로 화학적으로 유능한 '중도(中道)'라는 것이다. 탄소에 대한 저자의 변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탄소가 중도라는 건 원자번호 6번으로 주기율표 왼쪽 오른쪽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 원자핵과 전자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잘 깨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지도 않다.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이런 성격(성질) 때문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된 것이다.

저자의 강력한 변호가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이 탄소라는 사실 자체를 전복하지는 못한다. 다만 저자가 서술했듯이 탄소가 새로 생겨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지구에 존재했었으나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있던 게 풀려나 산소·수소와 결합한 탓에 기후 위기가 생긴 것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 규제 및 동결 정책의 핵심은 탄소가 산소와 수소와 결합하지 않도록 최대한 줄이고 주의하자는 메커니즘이다. 지구에 석유가 남아도는데도 전기 자동차로 인간의 이동 수단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기 배터리와 자율주행을 위한 AI, 반도체 기술의 도약적인 발전과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패권의 구조적 변화 등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탄소의 중용의 도(道)를 알고 난 후 숯불에 고기를 굽다가 손과 얼굴에 검댕이 묻어도 예전처럼 닦아내지 않고, 어두운 자기 피부색에 대한 불만도 줄었다고 하는 저자의 너스레는 흥미를 넘어 코믹하기까지 하다.

뒷부분에는 물리학과 수학을 다룬다. 물리학을 다룬 5장에서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엔트로피 법칙, 빅뱅 등을 일반 독자의 수준에서 쉽게 정리했다. 양자역학을 불교와의 유사점으로 풀이하고 과거 청년 때 열심히 공부했던 유물변증법에 대입한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 거대하고 복잡한 과학 이론을 대하는 저자의 지적 겸양이 이번 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저자의 겸손함은 "모르는 것에는 침묵하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6장에서는 몹시 아름답지만 오직 천재들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수학에 대해 할애했다.

서평을 마무리하면 이 책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읽기에는 적절치 않을 듯하다. 저자 스스로 '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이라 표현할 정도로 겸양을 떨기는 했으나 실제로 과학의 각 분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과학 전공자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독자에게는 심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저자의 강점인 인문학 잡담이 가미된 건 덤이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독서, 여행에 이어 과학에까지 글쓰기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가 유시민의 '확장'을 지지한다. 그의 말과 글은 언제나 여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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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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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파울류 코엘류를 참 많이 좋아했다. 오래전 정치와 인문도서를 즐겨 읽다가 문학으로 기호를 옮길 시점이 있었다. 그때 나를 강렬히 끌어들인 게 바로 코엘류의 연금술적 문장이었다. 당시 몇 달 만에 코엘류의 모든 소설을 읽었을 정도로 그의 글과 이야기를 좋아했다. 15년 전 신(神)의 여성성을 탐구한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처음 매료된 후 코엘류의 소설들을 거꾸로ㅡ현재에서 과거 순으로ㅡ읽기 시작했다. 『연금술사』 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그의 유명작들을 두루 훑었다. 그중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내 마음속을 가장 강렬하게 붙들고 있는 작품은 그의 처녀작 『순례자』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선연하다.

소설 『순례자』 탓인지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로망이 되었다. 이후 내 나이 서른이 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산티아고의 존재를 잊었다. 그러다 아이돌 그룹 GOD가 재결성되어 산티아고 길을 함께 걸은 TV 예능을 본 후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열망이 다시 샘솟았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산티아고는 완전히 잊힌 듯 보였다. 내면의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산티아고에 대한 내 무의식을 다시 일깨운 건 여행작가 손미나의 신간이다. 그녀의 신간 에세이는 오랜 시간 잠재적으로 봉인되어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 갈망의 불꽃을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

신간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는 작가 손미나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 약 40일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완주한 여정을 담았다. 이 책은 기존 여행기와는 달리 오직 '산티아고'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의 스페인 사랑을 생각하면 더 먼저 떠났어야 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떠났어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언제 걸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때가 되면 그 길이 부른다"는 말처럼 지난해 봄, 작가는 가슴속에서 드디어 산티아고 길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지독한 전염병이 3년간 전 세계를 뒤집어 놓고 사라지려 시작하려던 시점이다. 작가는 산티아고 길로부터 '계시'를 받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끊는다.

책 속에는 인생 2막으로 넘어가는 한 중년 작가의 도전과 용기, 열정과 사랑, 위로와 사유가 포근하게 담겨 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 24.2km 구간을 거쳐 총 800km에 이르는 대장정 가운데 작가는 여러 유의미한 주제를 포착하고 가치 있는 사유를 추출한다. 아름다운 경치와 거쳐가는 마을마다의 고유성을 관찰하는 재미는 현상적인 것일 뿐 본질적이지는 않다. 긴 여로에서의 본질은 결국 '나 자신'이란 걸 깨닫는다. 죽도록 힘든 피레네산맥 코스가 끝나면 앞으로 쭈욱 펼쳐진, 마치 자기 인생길을 은유하는 듯한 길고 긴 도보길이 펼쳐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작가는 산티아고의 울림을 더 깊이 발견하고 음미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한 작가는 종국적인 깨달음 앞에 고개를 숙인다.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면의 질문과 그것에 대한 해답, 그리고 자신이 받아야 할 위로와 사랑, 더 나아가 인생 2막에도 더 무겁게 짊어져야 할 타자와 세계의 무게 등. 작가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여러 의미는 결국 자기 마음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 걸어야 했고, 그 길을 걸었기에 그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준다.

여행 에세이로서 이 책의 강점은 적확한 사진의 배치에 있다. 글과 사진의 불일치성과 외연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잃게 된 글의 무게는 조악한 여행수기가 갖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불편함이 없다. 책 속 빼곡히 들어선 다양한 산티아고 사진들은 나란히 기술된 작가의 글을 잘 수식하고 보완한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책 속에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이 소중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앞으로 길게 늘어선 산티아고 길을 향해 홀로 걷는 작가의 뒷모습을 풍경과 함께 찍은 책 표지 사진은 탁월하다. 표지만 보고도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기술이다.

책장을 덮은 후 생각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나는 왜 산티아고 길을 가고 싶어 했는지. 모호했다. 구체적 이유 없이 그저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애매한 일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결국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발견하기 위해 걷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의 비루함을 부인할 수 없겠다. 언젠가 꼭 떠날 것이다. 혼자도 좋고 아내와도 좋다. 때에 따라서는 큰 딸과 함께도 좋다. 산티아고 길의 로망을 다시 한번 내 가슴속에 밀어 넣으며 기분 좋은 감상을 갈무리한다. 손미나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독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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