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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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설가 김연수는 어려운 존재다. 한국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시절 유독 김연수의 소설만은 잘 읽히지 않았다. 주제나 소재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그의 소설을 싫어한 이유는 오직 문장 탓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이 문장을 이유로 그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문장 때문에 그의 소설을 멀리한다. 관찰과 사유의 깊이는 제법인데 그것을 문장력이 못 받친다고나 할까. 예나 지금이나 그의 문장을 읽는 내 평가는 여전히 냉소적이다.

『소설가의 일』은 2014년에 출간된 김연수의 소설론을 정리한 산문집이다. 작가의 창작론 정도로 보면 되겠다. 책 속에는 국내 거의 모든 문학상을 휩쓴 중년 작가의 집필 내공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소설의 구조, 플롯, 인물, 주제 등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거의 모든 설명서가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폴 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오르한 파묵 등 작가가 평소에 좋아하고 영감받아온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명문장이 곳곳에 소개되며 작가의 주관을 돕는다.

김연수에게 소설 쓰기란 '무조건 닥치는 대로 쓰는 일'이다. 초반부터 완벽히 와꾸를 잡고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소설의 길이 열린다는 게 김연수의 논리다. 그가 이 깨달음의 절정에서 쓴 소설이 바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내가 소설을 쓴 게 아니라 소설이 나를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는 작가의 고백을 통해 글쓰기(특히 소설 쓰기)에 대한 운명론적 견인을 엿본다. 그리고 자신을 소설가로 이끈 다음 문장을 소개하는 대목은 일류 소설가 다운 걸쭉한 집념을 확인하게 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가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를 '캐릭터'와 '플롯'의 견인으로 설명한 대목이다. 동기를 중요시하는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 본격소설이고, 사건 중심의 플롯이 이끄는 소설이 장르소설이라는 얘기다. 작가는 전자(본격소설)를 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데 소설에서 사건보다 인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소설 인물의 전형성이라는 측면과 맞닿아 있는데 외부 상황에 의해 이끌려가는 인물보다 자기 내면의 천착과 성찰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가는 인물이 더 매력적이고 생명력이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리라. 바로 그것이 본격문학의 위대함 아니겠는가.

소설의 시점을 얘기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소설가는 전지적 시점으로 소설을 써야만 하며 전지적 작가가 될 때까지 최대한 느리게 소설을 써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일인칭 소설이라 해서 작가가 일인칭 안에 구속돼서는 안 된다. 일인칭 안에는 일인칭의 시선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인칭 시점에는 이인칭 시점이 숨어 있다. 늘 타인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상정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부정하지 못한다면 '너로서의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의 간극과 균열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궁극의 힘이라는 사실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유명한 소설 제목이 '싱클레어'가 아니라 '데미안'이 된 것을 가장 좋은 예로 소개한 작가의 설명은 탁월하다.

작가의 말을 계속해서 빌리자면, 종국적으로 소설가는 전지적 시점에서 소설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일인칭과 이인칭의 시점이 '너-나'의 관계를 넘나드는 공간적 관점의 입체성을 부여한다면 전지적 시점이란 소설 안팎의 구분을 넘어서 절대적인 시간의 차원을 확보한다는 걸 의미한다. 작가는 이를 신(神)의 존재와 등치시킨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를 창조하되 자신은 그 시간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전지적 작가가 될 때 비로소 그 작품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객관적 예술성을 확보하는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레오 톨스토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한 일, 그러니까 '소설가의 일'이다,라고 끝맺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은 감동적이다.

이제 이 서평의 첫 문단으로 돌아가자. 나는 서두에서 작가의 문장력에 호감을 갖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교정되지 않은 난잡하고 장황한 장문장에 대한 거부감을 발산해왔다. 작가는 이 책에서 생각(사유)보다 문장이 우선한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일단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라는 것이다. 오히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에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작가의 작품에서 유독 생각이 많은 소설의 전형을 발견해왔다. 화려하고 무언가 있는 것 같지만 정작 문장 자체는 제대로 잘 읽히지 않는 역설이랄까.

많은 독자들이 김연수의 문장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문장에 대한 대중적 찬사에 동의하기 힘들다. 김연수의 문장은 확실히 현란하다. 하지만 그 현란함은 문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언어와 사유가 철저히 호혜적인 관계를 이룰 때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김연수의 문장은 사유의 빈곤을 감추려는 수사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연수의 문장에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은 우선 의미 파악이 쉽게 안 되기 때문이다. 평론가 조영일은 이에 대해 '문장이 사유에 짓눌렸다'고 비평했다. 즉 생각이 너무 많아 문장을 억누르고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영일의 입장에 있다.

서평을 정리하자. 김연수의 문장에 관한 내 개인적 호오와는 별개로 『소설가의 일』은 탁월한 산문이다. 오직 '소설 쓰기'라는 창작론을 주제로 이만큼 실제적이고 집중력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플롯 포인트, 불안과 무기력, 욕망(혹은 사랑)과 결핍이 채워주는 핍진성, 퇴고의 중요성, 캐릭터와 플롯 중심 소설의 차이,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 등등 작가의 20년 내공이 담긴 많은 충고들이 돋보인다. 소설을 위시한 창작 글쓰기를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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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연수 소설집은 재미없었는데 이 책은 재미있었어요. 에세이와 소설 문장의 온도 차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