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칼의 노래>를 부르며 <남한산성>(책)에 올랐다. 허허로운 세월속에 나는 초초했다. 주말에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오르는 산성은 먼 날의 그리움처럼 아른거렸다. 모두가 떠난 밤에 혼자 별들을 보며 그의 말을 외우곤 했었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울네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칼의 노래>를 부른지 6년이 지나 그는 지쳐 나딩구는 나를 다시 깨웠다. 그의 글은 이순신이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쓴 휘호를 연상케 했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책)은 치밀한 구성과 거침없는 문장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민중의 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글로 토해냈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라면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런 삼전도 굴욕을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는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조선의 운명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인조를 비롯한 위정자들이 국제정세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책실패의 원인이기도 하다. (책)은 1636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청나라(후금) 군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지하는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하며 결단을 미루는 인조 임금과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흥미롭다.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의 상징성을 더 높여준다.


  그의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은 뜨거운 말들이 나의 마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는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작년 5월말경에 <남한산성>에 올랐을 때 몹시 궁금했었다. (책)의 <하는 말>의 첫줄 때문이었다.“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성남시청과 성남기능대학을 지나 <약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산성마을닭죽촌> 입구 못가 죄회전하면 산성 진입도로가 나온다. 도로는 2차선 아스팔트로 한 참을 들어가야 했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산성까지 가기에는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때 나는 (책)의 뒷쪽 산성지도 7.남문(지화문)에 올랐었다. 남문에서 좌측(서문쪽)으로 올라 서장대에 이르러 내려다 보이는 성남시는 아파트로 꽉 차있었다. 산성밑에 골프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370  조선의 왕이 <오랑캐>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렸던 역사의 치욕을 정교하고 복원하였다. () 표지는 김선두 화백의 작품으로 장지에 채색이다마치 이마의 핏물이 장지에 스며민듯하면서도 봄날의 창꽃을 연상케 하는 함축미가 있어 왕의 치욕을 여실이 보여주는 듯하다그의 문체는 아버지 김광주의 영향이 크다그가 어렸을  아버지 원고료는 집안의 생계를 이여갔다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불러주는 문장부호 하나까지 받아쓴던 그는 환갑이  되어 노래의 연분홍빛으로 피여났다그의 글을 읽으면 눈물이이 났다. 0806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대중의 반역”을 읽은 후로 얼마 간 책을 잡지 못했다. 잡다한 일상들 사이로 게으름이 도졌다. 하루 이틀 피해지더니 읽어야 한다는 마음만 커졌다. 하루 중 나를 관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은 거미줄처럼 가늘고 희미해 손을 놓을 것 같다.


  내 마음에 이끼가 끼여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야 내 자신이 잘 보인다. 잘 보여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책이든 뭐든 오감으로 받아들인 감각을 재구성하여 실토하는 작업은 비지땀을 흘리며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다. 산등선에 오르면 탈력이 붙어 정상을 향해 술술 걸어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작가들은 보통 기억으로 글을 쓴다. 문학의 언어는 기억을 통해 뇌 전체의 감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르 클레지오”는 말한다. 작가는 상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기억인 경우가 많다. 직접 체험한 것만이 아니라 책이나 예술, 문화 전반의 기억 일부를 새롭게 선보인다.


  집단의 기억 일부를 표현해 주는 동시에 그 기억에 일부를 보태주는 존재가 작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 노벨문학 수상 작가의“아프리카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 삶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며 따라가 보는 일인칭 서술자의 자선적 소설이다. 십여전 전에 작고한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되밟으면서 그의 삶과 가치를 재구성하는 전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작가의 문학세계의 형성 배경과 근원을 더듬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작가에게 아프리카가 어떤 존재인지, 그의 상상세계가 어떻게 이 대륙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 아버지가 직접 찍은 오백여 장이 넘는 아프리카 사진들은 아프리카에서 이십여 년 이상의 긴세월을 보낸 아버지의 삶의 기록인 동시에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희망과 열정, 고독과 비탄 그리고 절망을 표현한 일기였다.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의 삶의 순간들을 채웠을 생각과 느낌들을 자기 자신의 상상세계의 리얼리티 속에서 되살린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친밀한 시선과 작가의 것이 서로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바나”를 향해 질주해가던 자신의 분방하고 위험스럽기까지 한 자유를 회고하는 그 서정적이고 감동적인 어조로, 뜨거운 햇살 아래 광할한 아프리카 고원지대를 횡단하는 아버지의 모험을 그린다.


  아버지가 빅토리아만에 첫발을 디디면서 찍은 사진을 묘사할 때, 작가 자신이 그 사진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낡은 사진과 그것을 찍을 때 느꼈을 감격에 대한 아들의 묘사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일체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속이며, 자서전과 전기의 성격이 이 책속에 어우러질 수 있는 비밀은 아프리카가 그들에게 주었던 혜택이었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 8살의 “클레지오”는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 서부 “오고자”라는 마을로 떠난다. 식민정부하의 의무장교로 일하던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인자한 여성들의 품 속에 보호되던 작가 자신의 삶은 거침없는 햇살과 한밤의 폭풍우, 끝없는 황갈색 “사바나”의 풍경앞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혼란을 경험한다.


  성인이 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다른 세상속으로, 라틴 아메리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삶의 방식, 세계와 예술에 대한 생각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 걷고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방식, 그리고 꿈꾸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파나마로의 여행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덕택으로, 작가는 오랜 아프리카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일상용품들에서 사소한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비와 바람과 태양의 흔적들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프리카는 아버지를 입양한 마음의 고향이었다.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상상세계가 끊임없이 도달하려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작가의 “유년기의추억”, 작가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들이 뿌리내린 원천이 되었다.


  작가가 아프리카에 대해 느끼는 끈은 단순히 향수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이프리카인들처럼, “르 클레지오”는 진정한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수태된 고장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자신이 잉태되던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 속에서 끓어오르던 아프리카의 에너지를 자신의 몸 속에서 직관적으로 감지한다. 작가는 육체에 기입된 물질적 감각적 기억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깨우는 신화와 전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소설적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글쓰기 여정은 아프리카와 함께, 아프리카를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는 작가의 상상세계를 잉태하고 젖을 준 상상의 어머니이며 그의 상상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그 자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듯 보인다.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주었지만 또한 작가의 아버지를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르 클레지오”는 노년의 아버지를,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완고한 침묵으로 버텄던 당신의 삶을, 그 고독과 비탄을 이해하게 된다. 60대 중반이 된 작가의 그 이해는, 기아와 질병의 아프리카 현실과 관계된 자신의 오랜 꿈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불어로 글을 쓴다는  외에 프랑스인라는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작품들 모두 소위 주변부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며그래서 그는 불어의 작가이지만 프랑스 작가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0810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소월 평전
김학동 지음 / 새문사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둑에 홀로 나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소월이 흐르는 강물을 한 없이 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가 나 일까 싶어 진다. 소월이야 말로 나의 청춘기를 가장 잘 대변하기에 좋은 시인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갈 날의 첫날이기도 하다. 재즈 가수  '말로' 가 부르는 '개여울' 을 들어 본다.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 은 1972년 수원대 교수 였던 '정미조' 씨의 학생시절 리메이크 버전이 제일 듣기 좋다. 그녀의 '비음' 이 주는 느낌은 소월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소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었다. 개여울은 1925년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소월의 비루했던 삶과 위대했던 정신의 초점화에 한정되어 있다. 소월은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다.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났던 곳이며 소월(1902~1934) 이외에도 이광수(1912-?), 김억(1896-?), 백석(1912-1995) 등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고장이다.

   평북 정주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은 혼종성있다. 봉건 지배 권력의 중심인 한양으로부터 밀려나 소외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곳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근대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일찍 받아들여 근대 지식인과 민족지사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소월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혼종의 시공간(정주)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었다.

   소월은 1909년에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에 오산학교 중학부에서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유학을 중단, 귀국 후 4개월간 서울에 머문다. 다시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폐업한 후 조부에게 얻은 돈을 밑천 삼아 고리대금업을 시작한다. 곧 실패한다.

 

   지병인 '저다병'(팔과 다리가 붓는 각기병)을 앓았다. 그는 '내면적 인간의 비극적 운명' 을 떠안았던 시인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촉망 받은 장손으로 가족의 관심과 기대 속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소월은 고향 밖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열망했다.

 

   오늘날 소월 시의 수용이 시집 '진달래꽃'(1925, 초판이 3억원)에 편중된 것은 독서 대중의 오해가 생겨낸 또 다른 이유이다. 소월 시의 화자들은 대체로 상실감과 비애에 몰입되어 있다. 근원의 세계, 본질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과 감각의 세계, 그 허깨비 같은 것 현실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실존적 상황의 부조리함 앞에서 소월의 화자들은 눈물에 젖은 채 비통해 한다. 

   지구 상에 '한'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한'은 인간의 실존의식, 즉 존재의 모순과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생겨난 역설적 감정 이다. '한'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경험에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1950년대의 '고석규'는 소월의 '한'은 근대가 애써 망각하고 부정했던 '자연 속의 서정'을 발견한 '눈'이었다고 했다. 즉 소월의 '님'은 자연이다. 그 자연은 웅장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네 일상속에 늘 함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로 우리 조상이 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고 후손이 살아 갈 삶의 공간이다.

 

   소월이 마주쳤던 식민지 근대의 현실과 인간 실존의 비극성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다. 어쩌면 소월이 당면했던 마음의 짐들이 여전히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삶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대결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인깨워 준다. 소월은 세계의 시인으로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월의 진실이다.  1409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함
김영구 지음 / 다솜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더는 혼자 놀 줄 알아야 한다. 술 한 잔을 마셔도 그렇다. 그의 수하나 기쁨조를 데리고 즐기다 탈난다. 리더는 절대고독에 익숙해야 한다. 진시왕이 중국의 천하통일을 이루어 낸 것은 좋은 인재가 많아서였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좋은 인재에게 지혜를 구했다. 진시왕은 인제들에게 너그러웠다. 하지만 우주에서 보면 지구의 유일한 건축물인 만리장성 축조때는 백성의 원성을 샀다. 


  개인이 조직을 이기기는 힘들다. 대세는 조직과 조직의 싸움과 경쟁이다. 폐쇄사회나 열린사회던 괘씸죄에 걸리면 숙청바람처럼 토사구팽 된다. 넘치러 할때 물러나야 한다. 때를 아는 자의 지혜다.


  지금 나라 빚이 450조원을 윗 돌고 있다. 앞으로 10녀간은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할 때이다. 현재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의도도 부채에 대한 정부 해법 중 하나다. 저자는 국제법학자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 제고 측면에서 그의 주장을 펴며 건전한 보수 학자임을 자평한다. 이런 자신감은 2선으로 물러난 학자나 언론인 등에서 뚜렸히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 우리는누구인가?,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반성, 독도영유권 문제와 우리 국민의 기질적 약점, 북한 핵무장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냐?,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의 혼돈, 인식의 혼돈을 누리는 자와 방치하는 자, 혼돈과 미망에서 깨어나기 위한 제언 등이 그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잘 못을 실랄히 비판한다. 특히 우리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에 반한 종북 좌파의 몰인식이나 비전문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해군사관학교 법학 명예교수이다. 현재 부산 '려해 연구소'를 운영하며 관련된 저작과 자문 등을 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내용 중에는 북한 인권법 제정을 옹호하며 소위 좌빨이라는 분들의 논리적 허구성에 대한 학자적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 진보학자들에게 논란의 여지를 두고 있다. 또한 조선 말에 이여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 민국 임시 정부, 대한 민국 건국에 이르기까지의 법적 정통성을 논한다.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늑약은 불법으로 일본군이 군사적 강점기 일뿐 일본 영토화는 아니였음을 강조한다. 현재 분쟁화를 시도하고 있는 독도 영유권에 대한 박정희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어떻게 대처하며 지금에 이르렀는가를 얘기한다. 일본이 국제 재판소에 이 문제를 끌고 가려는 의도를 였볼 수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사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투쟁을 역설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독립투사를 비롯하여 김일성 같은 인물에게 공산주의가 스며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열거 한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연속성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노예 흑인 인권에 대한 미국 지식인(존 퀸시 애담스 변호사)의 자유민주주의 정의 실현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 국민의 기질적 문제를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북한 정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 혼돈에 대한 우려도 언급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법적 혼돈과 모순, 종북 좌파들의 생각, 북한 동포에 대한 대한민국의 윤리적 책무 등이다. 미국의 '롬니'는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이 중국과 함께 북한의 치안 유지와 인도주의적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말을 인용하며 협의해야 할 당사국은 중국이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여야만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김일성 그리고 김정일에 이여 김정은의 탄탄히 권력세습이 진행되고 있을 북한 지도부의 경제적 축적과 동시 권력의 균열이 진행 밖에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 푸틴 정권이 세계적인 러시아 석유 재벌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봐도 현재의 북한의 권력 재편에 대한 패턴을 읽을 있다. 조직을 벗어난 개인은 초라 뿐이다. 조직은 생존 본성을 응축시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골몰해 있다. 1505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에서 “자, 쭈욱 한 잔하자! 하자~.', 세관의 밀수단속팀이 저녁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일련사태에 대해 누가 총대를 메느냐를 놓고 입씨름하는 장면이다. 부양가족이 적은 최익현이(최민식 분) 암묵적으로 옷을 벗기로 결정된다. 


  조직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명령체계이다. 망년회에서 잔을 들어 올리며 한 마디씩 외치는 건배사처럼 최익현에게 주어진 운명은 조직의 밀어내기다. 개인적으로 건배사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터라, '쭈욱' 한 잔 하는 것처럼 묵시적인 표현이 내게는 편하지만 개인 PR시대에 사는 술자리 문화도 작은 권력의 각축장이다. 사람사는 이치다.


  연암 박지원의 풍채는 그의 손자인 박주수가 그린 초상화에서도 나타나듯이 덩치가 큰 대인이었다. 이 책은 연암의 둘째 아들이 쓴 박지원의 전기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계절은 봄도 아니요, 여름도 아니요, 더구나 가을 남자도 아니다. 술 한 잔하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겨울의 모퉁이다. 연암은 임금(정조)의 권력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도승지인 홍국영의 사정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연암에게 음직을 내리곧했었다. 연암의 박씨 가계는 신라에서 비롯된 나주의 반남현(백제 반내부리)을 본관으로 삼아 반남 박씨가 되었다. 나주 반남 고분일대로 내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 중세기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문호이다. 근대문학까지 포함시키더라도 연암을 능가하는 문호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려준다.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 성격을 갖고 있다.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로서 조선시대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다.


  저자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의 책이 아직 간행되지 못한 채 고본으로 집에 간직되어 있어 걱정했었다. 기축년(1830) 가을, 효명세자(순조 아들)가 저자의 집에 둔 글들을 읽고 다음 해에 돌아가신다. 그후 반환된 책들을 점검하면서 아들은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세자는 매권마다 책갈피하여 두었는데, 대개 옛일을 근거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강구한 대목 중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는 게 있으면 갈피해둔 것이다. 


  연암은 과거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신 적도 없지만, 임금이 알아주시는 인물이었다. 이는 특별한 임금의 은총이다. 지금도 지도자가 휴가중에 읽은 책은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이 농성 중에 읽었다는 책도 눈길을 끈다. 사회의 지도층 인물들이 읽는 책은 중간 여과없는 보고서로서 권력화된다.


  부인에게 존경 받는 남편, 남편에게 존경 받는 아내, 아들딸에게 존경 받는 부모, 모두는 쉽지 않은 언행 일치의 결과이다 번은 연암이 양양의 원님으로 부임하였으나 아전들이 곡식을 훔치고 빼돌리는 탓에 관가의 창고에는 곡식이 톨도 없었다


  연암은 아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고을 원이 일이란 군정과 전세와 환곡이거늘 창고가 비어 있고서야 고을 원이라 할까?', 연암은 마침내 공무 일체 그만 두고 조그만 방에 거처하면서 아전들이 빼돌린 곡식을 회수 하면 고을의 수령이라 없다며 자처한다.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녹봉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며,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일관한다. 결국 관가의 곡식 창고는 원래대로 채워진다. 연암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느낄 있는 대목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갑오년 시작을 앞둔 겨울에 '열하일기' 읽어 본다면 좋은 중국 여행이 될듯 싶다. 131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