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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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와의 전쟁' 중에서 “자, 쭈욱 한 잔하자! 하자~.', 세관의 밀수단속팀이 저녁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일련사태에 대해 누가 총대를 메느냐를 놓고 입씨름하는 장면이다. 부양가족이 적은 최익현이(최민식 분) 암묵적으로 옷을 벗기로 결정된다. 


  조직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명령체계이다. 망년회에서 잔을 들어 올리며 한 마디씩 외치는 건배사처럼 최익현에게 주어진 운명은 조직의 밀어내기다. 개인적으로 건배사에 대한 울렁증이 있는터라, '쭈욱' 한 잔 하는 것처럼 묵시적인 표현이 내게는 편하지만 개인 PR시대에 사는 술자리 문화도 작은 권력의 각축장이다. 사람사는 이치다.


  연암 박지원의 풍채는 그의 손자인 박주수가 그린 초상화에서도 나타나듯이 덩치가 큰 대인이었다. 이 책은 연암의 둘째 아들이 쓴 박지원의 전기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계절은 봄도 아니요, 여름도 아니요, 더구나 가을 남자도 아니다. 술 한 잔하고 비틀비틀 걸어가는 겨울의 모퉁이다. 연암은 임금(정조)의 권력 가까이에 가지 않았다. 도승지인 홍국영의 사정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연암에게 음직을 내리곧했었다. 연암의 박씨 가계는 신라에서 비롯된 나주의 반남현(백제 반내부리)을 본관으로 삼아 반남 박씨가 되었다. 나주 반남 고분일대로 내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 중세기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문호이다. 근대문학까지 포함시키더라도 연암을 능가하는 문호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아버지의 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 면모와 함께 목민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려준다. 18세기 영•정조 시대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대한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 성격을 갖고 있다.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로서 조선시대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다.


  저자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의 책이 아직 간행되지 못한 채 고본으로 집에 간직되어 있어 걱정했었다. 기축년(1830) 가을, 효명세자(순조 아들)가 저자의 집에 둔 글들을 읽고 다음 해에 돌아가신다. 그후 반환된 책들을 점검하면서 아들은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세자는 매권마다 책갈피하여 두었는데, 대개 옛일을 근거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강구한 대목 중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는 게 있으면 갈피해둔 것이다. 


  연암은 과거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고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신 적도 없지만, 임금이 알아주시는 인물이었다. 이는 특별한 임금의 은총이다. 지금도 지도자가 휴가중에 읽은 책은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이 농성 중에 읽었다는 책도 눈길을 끈다. 사회의 지도층 인물들이 읽는 책은 중간 여과없는 보고서로서 권력화된다.


  부인에게 존경 받는 남편, 남편에게 존경 받는 아내, 아들딸에게 존경 받는 부모, 모두는 쉽지 않은 언행 일치의 결과이다 번은 연암이 양양의 원님으로 부임하였으나 아전들이 곡식을 훔치고 빼돌리는 탓에 관가의 창고에는 곡식이 톨도 없었다


  연암은 아전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고을 원이 일이란 군정과 전세와 환곡이거늘 창고가 비어 있고서야 고을 원이라 할까?', 연암은 마침내 공무 일체 그만 두고 조그만 방에 거처하면서 아전들이 빼돌린 곡식을 회수 하면 고을의 수령이라 없다며 자처한다.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녹봉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며,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일관한다. 결국 관가의 곡식 창고는 원래대로 채워진다. 연암의 지혜와 삶의 철학을 느낄 있는 대목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갑오년 시작을 앞둔 겨울에 '열하일기' 읽어 본다면 좋은 중국 여행이 될듯 싶다. 1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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