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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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의 노래>를 부르며 <남한산성>(책)에 올랐다. 허허로운 세월속에 나는 초초했다. 주말에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오르는 산성은 먼 날의 그리움처럼 아른거렸다. 모두가 떠난 밤에 혼자 별들을 보며 그의 말을 외우곤 했었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울네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칼의 노래>를 부른지 6년이 지나 그는 지쳐 나딩구는 나를 다시 깨웠다. 그의 글은 이순신이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쓴 휘호를 연상케 했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책)은 치밀한 구성과 거침없는 문장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민중의 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글로 토해냈다.


  <칼의 노래>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라면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런 삼전도 굴욕을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는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조선의 운명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인조를 비롯한 위정자들이 국제정세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정책실패의 원인이기도 하다. (책)은 1636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간 청나라(후금) 군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지하는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하며 결단을 미루는 인조 임금과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흥미롭다.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의 상징성을 더 높여준다.


  그의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은 뜨거운 말들이 나의 마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는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작년 5월말경에 <남한산성>에 올랐을 때 몹시 궁금했었다. (책)의 <하는 말>의 첫줄 때문이었다.“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성남시청과 성남기능대학을 지나 <약진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산성마을닭죽촌> 입구 못가 죄회전하면 산성 진입도로가 나온다. 도로는 2차선 아스팔트로 한 참을 들어가야 했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산성까지 가기에는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때 나는 (책)의 뒷쪽 산성지도 7.남문(지화문)에 올랐었다. 남문에서 좌측(서문쪽)으로 올라 서장대에 이르러 내려다 보이는 성남시는 아파트로 꽉 차있었다. 산성밑에 골프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370  조선의 왕이 <오랑캐>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렸던 역사의 치욕을 정교하고 복원하였다. () 표지는 김선두 화백의 작품으로 장지에 채색이다마치 이마의 핏물이 장지에 스며민듯하면서도 봄날의 창꽃을 연상케 하는 함축미가 있어 왕의 치욕을 여실이 보여주는 듯하다그의 문체는 아버지 김광주의 영향이 크다그가 어렸을  아버지 원고료는 집안의 생계를 이여갔다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불러주는 문장부호 하나까지 받아쓴던 그는 환갑이  되어 노래의 연분홍빛으로 피여났다그의 글을 읽으면 눈물이이 났다. 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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