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새움) 작가 이광수는 정주 사람으로 그의 서문 격인 "말"은 이렇다.

단종대왕처럼 만인에게서 동정의 눈물을 끌어낸 사람은 조선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두고 보더라도 드문 일일 것이다. 왕 때문에 의분을 머금고 죽은 이가 사육신을 필두로 백이 넘고, 세상에 뜻을 끊고 일생을 강개한 눈물로 지낸 이가 생육신을 필두로 천에 이른다.


육신의 충분 의열은 만고에 꺼짐 없이 조선 백성의 정신 속에 살 것이요. 단종대왕의 비참한 운명은 영원히 세계 인류의 눈물을 자아내는 비극의 제목이 될 것이다. 더구나 조선인의 마음, 조선인의 장점과 단점이 이 사건에서와 같이 분명한 선과 색채와 극단적인 대조를 가지고 드러난 것은 역사 속에 유일무이 할 것이다. 


나는 나의 부족한 몸과 마음의 힘이 허락하는 대로 조선 역사의 축도요. 조선인 성격의 산 그림인 단종대왕 사건을 그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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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26-03-0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계가 불안정 했을 때 주변의 야욕이 들어난다. 박경리 <토지>(마로니북스)의 최참판댁에서도 그렇다. ‘서희‘의 할머니/ 어머니가 죽고 고아가 된다. 그리고 이종사촌의 조준구의 야욕이 들어난다. 처럼 ‘단종‘ 또한 할머니/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고아 격이되었을 즈음에 삼촌 ‘수양대군‘의 야욕이 들어난다.

목동 2026-03-07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1457년 10월 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청령포를 바라 보면서 아래와 같은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천만리 머나먼 길의 고은 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듸 업셔 냇가의 안자시니
뎌 물도 내안 갓도다 우러 밤길 녜늣다

2. 단종 서거 160년 후에 1617년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이 영월 순시 때 아이들이 부르는 이 시조를 아래와 같이 한시로 지어 전해졌다.

千里遠遠道(천리원원도) 美人離別秋(미인이별추)
此心無所着(차심무소착) 下馬臨川流(하마임천류)
川流亦如我(천류역여아) 鳴咽去不休(명열거불휴)

목동 2026-03-07 21:45   좋아요 0 | URL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중략--

- ‘개여울‘, 김소월 -

목동 2026-03-07 21:49   좋아요 0 | URL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이 두 시의 각 문장이 마음을 뒤 흔든다.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강(냇)가에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