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12월3일의 비상계엄은 나에게는 두 번째다. 그때('80년5월17일) 나는 대학의 정문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정년 이후이다. 비상계엄은 삶의 공간과 시간을 두려움으로 채워졌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키호테 2024-12-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은 <의로움>이다. 의로운 사람은 외로운 길을 걷게 된다. 그 외로움을 지나 많은 사람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때가 온다.˝

독립군이었던 홍범도 장군이나 12.12 군사반란을 막으려 했던 전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의 말년에 대한 연민을 갖게 한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항일 의병장 홍범도(1868~1943) 장군은 말년에 소련군 편입과 레닌의 예우, 강제 퇴역, 극장 야간 수위, 정미공장 근로자 등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기필코 막으려 했던 장태완 전 사령관의 말년 또한 그렇다. ˝3대가 풍지박산 나버린 집안 꼴이 누구 탓인가를 생각하니 울컥 차올랐다. 가족의 권유로 작은 용역회사 사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 장군은 1993년 7월 19일 전두환 노태우 등 34명을 반란 및 내란죄 협의로 대검에 고소하여 신군부 세력을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우울증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친 그들의 말년은 한 인간으로서 파란만장한 생이었다. 항일독립전장에서 정미공장 노동자로까지/ 6.25 전장과 군사반란의 현장에서 용역회사로까지. 그들의 자괴감이 얼마나 컷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