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인 어제 아이들과 쥬만지를 다시 보았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책은 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20대에 재미있게 보았고 이후로도 가끔씩 보았다.

아이들이 엄마, 스포는 절대 안 돼, 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장면도 있었나 싶게 많이 새로웠다.
무엇보다 전에 볼 때와 다르게 로빈 윌리엄스 아저씨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느껴져 울컥했다. 10대에서 20대에 로빈 윌리엄스 나오는 영화를 꽤 많이 보아서 그런지 기분이 참 이상했다.
화면 속 로빈 윌리엄스는 아직 생생한데 이제 그는 이곳에 없다. 2014년에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리셔서 ㅜ.ㅠ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칠순을 바라보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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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주일학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처음 본 걸 시작으로 대학에 가서 <굿모닝 베트남>,
<굿 윌 헌팅>, <미세스 다웃파이어>, <피셔킹>, <패치 아담스> 등 로빈 윌리엄스 영화를 보며 참 많이도 웃었다. 누구랑 언제 보았는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싸이월드 도토리로 OST를 사들이던 허세 작렬하던 그때의 나도 많이 그립다.
그렇게나 영화를 즐겨 보았던 20대 생기발랄하던? 아가씨는 어느새 배나온 아줌마가 되어 구석진 컴퓨터방에서 캠핑 의자를 펴고 아이들과 이 영화를 보고 있다.
아련하다, 그저.

혼자 너무 숙연해졌네.
요즘 아이들은 이 짤방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으려나.
또래에게 따돌림 당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불화하던 앨런은 쥬만지에 빠져들어 26년을 허비한다. 하지만 주디와 피터를 만나고 어릴적 친구인 사라를 소환해 쥬만지 게임을 무사히 마치고서야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게 된다.

아이들은 온갖 동물들이 나오고 소동이 벌어지는 데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주방이 엉망이 되고 집은 부서지고 경찰차는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가는데 마냥 웃고만 있다.
특히 아이들이 박장대소한 부분은 미친 사냥꾼과 대형 마켓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싸우는 부분이었다.
피터가 반칙을 해서 퇴화해 원숭이가 되니 좋다고 난리.
부르마블하면서 오빠의 주사위 조작(주사위를 손으로 잘 감싸쥐고 살짝 고대로 놓는 수법)에 많이 당했던 딸아이가
오빠도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ㅋㅋㅋㅋ
마지막에 홍수가 나서 악어가 나오고 미친사냥꾼이 앨런에게 총을 겨눌 때도 조마조마해하더니 이제 쥬만지 하면 끝이네, 하면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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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겁이 많아 다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나중에 게임이 끝나면 엄마아빠도 다시 살아나고 잘될 거 같다고 끝까지 본다고 고쳐 앉았었는데 잘 봐주어 기뻤다.
영화 끝나고 나서 내 말이 맞지 하며 의기양양.
아들은 얼마나 집중해보고 웃었던지 나중에 얼굴이 벌개져서 구니스 이후로 넘나 잘 봤다고.
어째 엄마 탓에 점점 애들 취향이 아재 취향으로
구니스, 인디아나존스, 백투더퓨처, 나홀로 집에... 이런 거 다 보고
이제 터미네이터 이런 것도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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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 모두 피터에 감정이입해서 쥬만지 판을 지키려고 응원하는 모습이 어쩐지 뭉클했다.
아이들 둘 다 뭐가 나올지 무서우니 그만 해, 하고 하지 않고
빨리빨리 던져, 빨리빨리.
그래,두려워 말고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일단 가보는 거지.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환상이 가득한 세계로 들어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해 위험을 헤쳐가다 결국엔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고 더 강해지는 이런 해피엔딩이 이제 너무나 좋다.
그리고 눈물이 한참 많아지는 40대
여기 말로 여로워서 화면을 닫고 미뤄둔 설거지를 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