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에서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며 읽은 책들이다. 의외로 장편이 읽히기는 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작년부터 소소하게 읽은 히가시노 작품 중에서 제일 놀라웠다. 범인을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나 흡인력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
천재수학자가 옆집에 이사온 모녀를 통해 생의 의미를 찾고 그들을 위해 '인생'과 '명예'를 거는 크나큰 낭비를 한다.
전체적으로 신파인데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의 친구의 말에 더 큰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 필요없는 톱니바퀴란 없고 톱니바퀴의 의미는 그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고.
결말에 야스코가 자수를 한 것도 적절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작가의 하층민에 대한 애정이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호스티스 출신 여성들에 대한 이상한 '향수'에 공감할 수 없다.
그 바닥이 그렇게 마음 잡고 종자돈을 모아 나올 만한 곳이 아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마음잡고 술집에서 나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는 호스티스가 나오는데 전혀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 세계가 그렇게 발빼기 만만한 데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뭔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 보면 그만이다.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가준다. 복잡한 일도 잊고 푹 빠져서 보았으니 그걸로 족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읽기 힘들었다. 처음으로 만나본 작가인데 뭔가 혼돈이었다.
여러 판타지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어 어수선하다.
소년의 현실은 무겁고 한데 마법사는 뭔가 포근하지 않고 흑마술사 같기만 하다. 소년을 분명히 숨겨주고 잘해주고 했는데 캐릭터가 참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잘못잡은 츤데레 캐릭터.
실제로는 엄청난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배 선생도 그렇고, 소년도 그렇고
끌리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면 이 책을 읽던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작가님이 무슨 죄.
어떤 책이 읽히는 상황에 따라 걸작이 졸작이 되기도 하고 오독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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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헌신'에 대해 생각해봤다.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흔한 말장난,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말과 같이 이시가미와 같은 맹목적인 헌신은 무섭다.
자신의 생을 낭비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모든 걸 던진다는 것은 그 헌신을 받는 상대에게도 크나큰 부담을 갖게 하는 것이다.
과연 야스코 모녀는 이시가미의 그런 헌신이 필요했을까.
이시가미가 아니었다면 자수를 해서 죄값을 치르고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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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이들에게 너무 헌신하지 말고
이제 내 길을 찾을 시기.
동생 결혼도 잘 마무리하면
우리 집도 좀 돌아보고 할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