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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ㅣ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평점 :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한 문화권이어서 가족의 풍경마저 같은 것일까?
신기할 정도로 <걸어도 걸어도>에서 묘사하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의 정경은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쌓아온 시간 속에서 서로 데면데면해졌고 작은 불평 불만을 자식들에게 내비친다.
어머니는 다 먹지도 못할 먹거리를 무리해서 장만하고 뿌듯해하고 자식들은 온갖 불평을 하면서도 먹어치운다. 어렸을 때의 일화를 이야기하는데 서로의 기억이 어긋나 있어 그게 또 많이 서운하다.
아버지는 한창 일에 빠져 살던 젊은 때처럼 가족들과 관계 맺기에 서투르고 무게 있게 보이길 원한다.
형제들은 서로 사는 처지나 형편이 다르고, 부모의 관심과 남은 자원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화자와 화자의 누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막강한 대상을 두고 있다. 바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막 그 꿈을 펼치려 하던 때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의인이자 영원불멸의 이상적인 아이인 준페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준페이와 연관되어 있고 준페이만이 고귀하다. 차남인 료타는 오래 전 죽은 형의 방은 고요히 잘 보존되어 있는데 자신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가 쌓인 창고가 되어버린 데에 크게 실망한다. 어릴 때의 총기가 엿보이는 작은 일화들도 부모님의 기억 속에는 형의 것으로 되어 있다. 료타가 아이를 하나 둔 미망인과 결혼한 것을 알고도 아버지는 무신경하게 아이 딸린 여자는 결혼이 힘들다고 말해버린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형 준페이가 죽은 후 그의 형수가 재혼하여 잘 산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버린 실언이다. 이런 식으로 대화는 자주 어긋난다.
형의 기일에 전에 형이 구해준 아이였던 요시오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고도 비만에 프리터에 불과한 요시오가 자신의 귀하디 귀한 아이 준페이 대신 살아가는 게 못마땅하다. 물론 아버지도 모든 생명의 값은 동등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그 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억울하고 분하고 슬픈 감정을 저렇게 표현하는 것인데 료타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비인간적이고 냉혈하게만 보여 한참 훈계를 늘어놓는다.
가끔 가까운 노인 분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저렇게 멍한 순간이 많다. 티브이를 보다가 장애인이 나오거나 힘든 분들이 나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든가 할 때.
살아오면서 쌓인 이런저런 감정이 친밀한 사이에서는 어떤 포장 없이 바로 배설이 되어버린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이이다 보니 가끔 막말, 폭언 수준의 대화가 오고간다. 그래서 가장 상처받게 되는 관계는 어쩌면 가족 안에서의 관계가 아닐까.
언제나 예의를 차리고 늘 사람들을 거리를 대하고 만나는 편인 나도 본가에만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말, 할 수 없는 말들을 무신경하게 내뱉는다.
모든 질문은 그저 독촉으로 여겨지고 사소한 불만은 내게 가해지는 혹독한 평가로 여겨져 늘 마음이 불편하고 잔뜩 날이 서서 결국 서로를 베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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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성묘를 갔을 때 노랑나비가 따라오고 집 안에서도 나비가 날아들자 엄마는 형 준페이의 현신(現身)이라 여기고 요란하게 동요한다.
이것도 우리집이랑 비슷하다. 어디선가 새가 날아들면 늘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러 온 거라고 하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늘 면박을 준다. 엄마랑 아빠는 생전에 그다지 사이가 좋거나 하지 않았어라든가 아버지 살아계셨어도 우리가 부자로 살 리는 없어라든가 하면서.
그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지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든가 지금이라면 좀 더 이렇게 했을 텐데라든가......이제 와서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종종 있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가라앉아서, 오히려 흐름을 가로막는다. 잃어버릴 것이 많았던 하루하루 속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이란 언제나 한발 늦는다는 깨달음이다. 체념과도 비슷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10쪽
소설을 읽는 내내 나직이(류준열 배우 목소리로) 여러 문단들이 마음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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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친구들이 와서 오렌지망고청을 타주고 다시 이어서 쓴다.
극적인 사건이라고는 장남 준페이의 이른 죽음이 다이고 대개 소소한 일화들로 채워진다. 우리 누구나 한번쯤은 가족과 보냈을 그런 시간들로 채워진다. 가족은 이런 것이라든가 가족애는 이래야만 하는 것이다, 가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힌 풍경을 보여준다.
걸어도 걸어도 조각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려 당신 품 속으로 137쪽
소설에서는 엄마와 료타의 다감한 추억이 얽힌 노래 가사인데
영화에서는 사연 깊은 노래로 나온다.
엄마의 영화 속 대사로 미루어보아
남편이 젊은 시절 잠시 한눈을 팔았고
밤늦은 시간에 그를 찾으러 아이를 업고 나가 엄마는 이 노래를 듣게 된다.
한창 어린 아이들과 말 그대로 독박육아 중에
일을 핑계로 나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정겹게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듣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이 사연 많은 노래를 들으며 원한을 달래는 엄마가 애처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해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 숨어서 듣는 노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같이 느끼고 같이 아파해줄 수는 없다.
그저 지켜볼 수 있는 정도이다.
책을 읽고 나면 여러 가지 회한에 답답하고 묵직하고 썩 개운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냥 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살아내는구나,
나만 비정상은 아니구나 하며 살짝 마음이 놓이는 구석도 있다.
완벽하게 이해받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그런 관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위태위태 흔들흔들하며 너무 멀어지지만 않게 그렇게 나아가는 거다.
시간이 주는 무게를 견디고 이토록 험한 세파를 같이 헤쳐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