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를 3분의 2 정도 읽고 <창백한 언덕 풍경>을 주문했다.

이것만 도서관에 없어서.

 

(가즈오 이시구로 머그 정말 질감이나 색이나 다 딱 좋다. 구매욕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진을 싣지 않음)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데 복제인간의 슬픈 운명이 현실 세계와 겹쳐 보이며 엄청 쓸쓸해졌다. 현실세계의 많은 사람들도 누군가를 위한 대용물로 소모되는 삶을 살다 스러져가는 듯해서. 현실세계의 그림자노동이나 돌봄노동 종사자들에게 감정이나 영혼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않는다.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SF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슬프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처음 읽은 작품이 <편지>이다. 우리나라처럼 연좌제의 전통이 깊은 일본사회에서 범죄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영특한 동생이 대학 가는 데 돈을 보태려고 부유한 노파를 살해한 형. 동생에게 자신 대신 피해자 가족에게 속죄의 편지를 보내고 장례에도 가달라고 하는 형. 충동적이고 사고뭉치에 미련하기만 한 형.

이 형 하나 때문에 동생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형무소에서도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보다는 동생이 대학가고 잘사는지만 궁금해하고 자신에게 안부편지를 보내올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뭔가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뭔가를 포기하는 일이 반복되는 거야. 인생이란.(205)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많아지는 인생이다. 더불어 가족도 영원히 고통받는다. 결국 동생은 자신의 딸을 위해 형과 절연하기에 이른다.

 

<공허한 십자가>는 범죄에 대한 속죄가 가능한가와 사형제의 실효에 대해 묻고 있다. 한 작품에 너무나 많은 주장이 난무하고 인물들이 다 매력적이지 않아 읽고 나면 찜찜하다. 막장 드라마 보듯이 길티플레져. 엄청 몰입해서 애들 밥도 늦게 주면서까지 하루 만에 다 읽었는데 그냥 읽고 나니 허탈하기만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설마 다 이런 건 아니겠지. 장르 문학에 내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지.

 

 

 

 

 

 

 

 

 

 

 

 

 

 

 

차라리 며칠 전에 틈틈이 읽은 단편들이 더 낫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질투 등으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사고들.

 

<수상한 사람들>에서는 <등대에서>라는 단편이 매력적이었다. 친하지만 묘한 경쟁심을 품은 친구 사이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비극을 보여주며 인간 심리의 어두운 이면을 잘 파헤쳤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도 도시괴담이나 여성 주간지에 나올 만한 사건사고로 장식되어 있다.

 

으으으- 하면서도 읽고 있는 나.

그것도 이렇게 추운 계절에 달달 떨면서.

애들한테는 구스범스 같은 거 보지 말라고 하면서.

 

 

 

 

 

 

 

 

 

 

 

 

 

 

 

꼭 읽어봐야지 하고 있다가 <아연 소년들>부터 읽고 있는데 현실이 픽션보다 더 비참하고 처절하고 가슴 아프다. 

 

<아연 소년들> 읽고 있는데 거실이 크게 울렸다. 윗층이 리모델링 공사라 그런가 했는데 진짜 지진이었다. 

 

어제 밤에 수능이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사상 초유의 사태인데 우리집 초등들은 그냥 학교 열 시까지 가는 거냐 그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빨리 중학교 가서 수능날 안 가고 싶다고. 조삼모사 같은 녀석. 너 수능 볼 날이 곧 다가오고 있다.

 

 

표적을 똑바로 겨누어 맞히자 사람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는 게 보였어요. 순간, ‘내가 처음 죽인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투가 끝나면 늘 부상당하거나 전사한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어요. 하지만 다들 하나같이 아무 말이 없죠…… 시가전차가 나오는 꿈을 꾸곤 해요. 시가전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꿈을요…… 좋아하는 기억이 있어요. 엄마가 피로시키를 구워주던 거요. 집안 가득 달콤한 밀가루 반죽 냄새가 퍼지고……

 

 

그나마 지금까지 읽은 데에서 온건한 문장이다. 전쟁터에서의 상황과 돌아와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상황이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기가 힘들다.

 

읽기도 이리 힘든 작품을 어떻게 여러 편 남긴 것일까.

 

엄청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도 쓰고 또 썼다.

 

작가는 본래 그런 걸까.

아프고 힘들지만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겠지.

 

아픈 누군가를 위해 대신 이야기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이 필요해.

 

*

 

연말에 어쩌다 이런 작품들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계속 알 수 없이 불안하기만 하고 불안에 대한 도피로 더 큰 불행을 들여다보면서 또 다시 떨고 있다. 

 

올해 참 많이 힘든 일이 연달아 있었고 아직 여진같이 계속 미세하게 떨고 있어서 이런 작품들에 끌리나보다.

 

 

 

 

 

 

 

 

 

 

 

 

 

 

 

 

 

 

 

 

 

 

 

 

 

 

 

 

 

 

이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랑 <츠바키 문구점>은 아직 읽기 전인데

중간중간 이런 책을 읽어가며 알렉시예비치를 읽어나가야겠다.

 

약간 손난로 같은 소설들이니.

 

잠시 손 녹이며 또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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