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카스트
스즈키 쇼 지음, 혼다 유키 해설, 김희박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교실에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정말이냐고? 자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언젠가 지켜본 적이 있는데 진짜 아이들이 닿는 것도 싫어하는 그런 애들이 전교에 한둘은 있었다.

 

요즘 애들은 왕따, 학폭이나 일으키고 허 인성이 참.... 혀를 끌끌 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세대에도 뭔가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아이들은 늘 있었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모든 아이들이 그냥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원래 1학년 때부터 성격이나 하고 다니는 게 그랬고 생긴 것도 그렇고 아무튼 원래 그렇단다.

아들아 너마저. ㅜ.ㅠ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다 여기고 부정하려고 해도 교실 역시 사회의 축소판이며 어쩌면 학교현실은 사회보다 더 잔인하다.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와 같은 차별과 배제는 현실에서도 흔하다.

 

<교실 카스트>는 이렇듯 현존하는 학생들 간의 묘한 역학관계를 밝히고 하부계층이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밝히고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관심사와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같은 연령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커리큘럼 하에 한 공간에 지나치게 장시간 머무르게 하는 곳이다.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같은 공간 장시간 이게 의외로 큰 문제다.

 

초중등 시기에 학폭, 왕따를 경험했는데 대학에 가서 극복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대학에 가서 그 학생이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기보다는 학급 체제가 아니라 수업을 선택하여 듣고 집단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중등 시기에 보다 커리큘럼을 다양화하여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수업할 수 있다면 계급이 공고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학급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다수의 아이들을 관리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에 학급 체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는 정보의 축적이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아이들은 발달을 다 마치지 않았고 판단력 역시 아직 부족한 초등 시기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한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 힘센 아이, 예쁜 아이 등 아이들 사이의 평가는 사실 무자비하다. (결국 어른들의 시선이 투영된 결과이다)

 

이때 감정표현이 서투르거나 별 특징 없는 아이들 중 아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의 배척을 받는 애들이 몇 명 생기고 고학년이 되면 그간 축적한 정보에 의해 그 아이는 헤어날 길이 없는 비호감 재수탱이로 낙인 찍힌다. 그애 곁에만 가도 아이들은 옮는다고 싫어한다. 대체 뭐가 옮아?

 

책에서는 하위계급 아동이 적극적인 성격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하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고 한다. 오직 지배계급 아이들이 그만 이제 그애를 받아주자 하는 신호가 떨어져야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배층 아이들의 특성은 호감 가는 외모, 이성들 사이의 인기, 공부, 운동, 가무 실력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공통되는 특성이라면 소통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상위계급인지 학급에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쉬는 시간이든 수업시간이든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고 쉽게 호응받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상위계급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어떻게 행동해도 비웃음을 산다면 그애는 하위계급인 것이다.

 

소위 초등 시절부터 약은 아이들.

이 아이들이 학급의 행사를 주관하고 학급의 귀찮은 일은 적당히 다른 애들에게 맡긴다. 이 아이들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건 놀랍게도 교사이다. (우리가 이미 학창시절에 목도한지라 별로 놀랍지 않을 수도 있지만. ) 교사들도 필요에 따라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아첨하고" 각 계급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기가 약한 교사들이 상위계급 아이들에게 찍혀 힘들게 교직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교사들 사이의 계급이라면 인기교사, 비인기교사로 나눌 수 있겠다. 중등에서는 상위계급 아이들이 인기 교사들과 협력해 그 학교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나머지는 비주류이고 비인기교사들이 하위계급 아이들을 챙겨주어도 그 아이들은 크게 반가워하지 않는다.    

 

학교에는 수업말고도 축제나 운동회 등 각종 행사가 있는데 이때 성과를 내기 위해 상위 학생들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책에서 재미있는 사례는 해외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상위계급 아이들이 물갈이로 배가 아파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자 하위계급 아이들만으로도 무사히 프로그램을 잘 마쳤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지 애초 계급간에 능력 차라는 것이 크지 않은 것이다.

 

화합의 장이라는 명목으로 마련하는 축제가 계급간의 차이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여름에 학교운동장에서 6학년 아이가 학예회에서 출 걸그룹 댄스를 친구에게 앙칼지게 가르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현실이라지만 우리나라의 학교현장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라면 이 책을 읽고 학급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부모라면 내 아이의 소통력에 대해 고민하고 중심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적대적으로 지내지는 말라고 조언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교실 카스트'는 인정하기 싫어도 현존한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은 상당 부분 어른들에게 있다. 외모지상주의, 물질숭배, 능력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쉽게 이러한 가치들을 내면화하고 자신들의 세계에 적용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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