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혼란한 주말 어린이 도서실에서 읽었던 책들이다.

 

작년에 태안반도에 놀러갔을 때 숙소 유리문이 딸아이에게 그대로 떨어져버렸다. 홍콩느와르에서나 보던 장면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정신없이 맨발로 유리더미를 밟고 얼굴을 손을 모아 가린 아이를 살펴보니 눈윗쪽이 가장 많이 벌어져 있었다. 수산시장에서 생선에 칼을 대고 그은듯이.

 

바닷가로 나가기 전 수영복을 갈아입은 상태 그대로 119를 불러 타고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시골동네 한적한 병원 응급실에서 심난한 아이상태를 보더니 어쩌다 저리되었냐고 모두 혀를 찬다.

 

새로개원한 시골병원에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보였더니 즉시 봉합수술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지독한 하루>에도 나왔듯이 크게 다친 아이는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 두려움이 압도했는지 제대로 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식염수로 오물과 작은 유리조각을 치우고 나니 천만다행으로 가장 큰 상처는 이마 윗쪽의 7센티 정도는 되게 벌어진 상처와 등에 유리조각이 박힌 그 정도였다. 한 시간 반 동안 마취주사를 여러 번 찔러가며 겨우겨우 봉합을 마쳤다. 징징징 낮게 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떠는 아이를 붙잡아 주며 의사선생님의 단정한 뒷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아파도 조금만 참자, 잘해주고 있어, 라고 선생님은 아이를 달래가며 집도를 하셨다. 아이 다루는 목소리와 어조가 분명히 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분 같았고 아파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하시는듯했다.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사고로 응급실을 드나들면서 이렇게 친절한 분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분들이 특별히 불친절한 게 아니라 응급실 상황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 환자들이 만족을 못 느끼는 것이겠지.

 

어릴 때 무섭고 싫으면서도 공포괴담류를 읽었던 것처럼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도 그런 심정으로 보았다. 내가 있는 이 안온한 자리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만약은 없다>보다는 <지독한 하루>가 보다 더 정돈된 느낌이다. 중증외상환자가 신속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려면 멀었다는 것과 응급실 주취자들의 행패를 박아낼 방법이 없다는 데에 한숨이 나온다.

 

나는 모멸감과 피로로 당장 쓰러져버리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멸시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예이츠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46쪽)

 

저자는 조직폭력배 수하로 추정되는 사내에게 맞아가며 두목을 살려내려고 했다. 그전에도 부하들은 온갖 모욕적인 말을 퍼붓고 무례하게 굴고 있었다.

 

이외에도 선천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족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게 되었다.

 

아....정말이지 아이를 낳는다는 건 일생을 건 크나큰 도박이자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아니지 마땅한 장비가 없는 익스트림 스포츠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다 해도 생명이라면 크고 작은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온갖 세상걱정근심 품고 사는 신경증 환자인 나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극도로 예민해졌다. 어디를 보내든 안심 못하고 전전긍긍. 초등학교에 간 지금은 전보다 덜하지만 어린이집 시절에는  매번 견학을 보낼까 말까 갈등하고 짧은 거리라도 늘 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그렇게 꼭꼭 싸매고 키웠는데도 시골에 살 때 뱀에 물리기도 하고(강릉아산까지 가서 검사했는데 독성이 없는 물뱀 정도) 벌에도 쏘여 봤다. 그때 대처 큰 병원으로 가려고 응급실로 가며 마음 졸이던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때를 다시 떠올려보니 내 모습은 우습기만 하다. 슬리퍼에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지갑도 없이 큰애 태우고 구급차에 올랐다. 당시 네 살 아들은 그 와중에 삐뽀삐뽀 탔다고 좋아하고.   

 

이 책에 나오는 그런 심각한 중증외상도 아닌데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본래 인간이란 자기 손가락 밑의 가시 하나가 더 위중한 법이라 그런지.

 

 

나는 심상치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원래 세상 일이란 인간들의 육신이 이토록 부서지고 시들어가는 과정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의 변주를 의연하게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유난한 날이었다. (86쪽)

 

의사들의 무심한 반응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워낙 심각한 상황이나 죽음을 많이 맞이하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자들과 가족에게는 그 상황이 정말 처음 맞닥뜨리는 특별한 상황이다.  

 

아직도 몸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다시 읽기는 힘든 책이다.

 

*

우연히 어제 아침 <어쩌다 어른>에서 남궁인 작가 강연도 앞부분을 잠깐 보았다. 말씀도 잘하시는듯하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초(만병초)를 약으로 착각해 술로 담가 먹기도 한다는 데 놀랐다. 그렇게 쉽게 독을 먹게 되는 건 지인이 권하기 때문이라나.

망할 지인 찬스. 

뭔지도 모르면서 몸에 좋다고 하고 그게 또 아는 사람이 주는 거면 쉽게 먹어버린다고.

 

*

<숨결이 바람될 때는> 전도 유망했던 한 의사의 투병기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의사에서 환자가 되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 남은 생을 알차게 꾸려가려 했던 의지, 생에 대한 통찰력 등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재앙(disaster) 이란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116쪽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161쪽)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165쪽)

 

남궁인의 작품과는 천양지차. 아주 다른 어조였다. 자신의 죽음인데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차분히 들여다보았다. 아쉽고 억울할 텐데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가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내가 전형적 한국아줌마라 그런지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기로 계획하고 아이를 낳은 부인의 선택이 더 마음 아팠다.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생활을 지키는 비결은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쪽, 에필로그: 루시 칼라니티)

 

 

 

 

 

 

 

 

 

 

 

 

 

 

 

 

정말 옛날옛적에 읽은 의료 관련 만화들. 거의 15년 전에 봤다. 

 

데츠카 오사무의 블랙잭이 역시 레전드이고 이후 이 작품의 여러 변주가 나온듯하다.

 

블랙잭은 어린 시절 폭발사고를 당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혼마 죠타로의 수술로 살아나 후에 의사가 된다. 의사 면허도 따지 않고, 상황에 따라 환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수술비를 받지만 어떠한 병이라도 고치는 초인적 실력을 가졌다. 전 세계에서 환자들이 찾아올 정도로 명성을 쌓는다.

 

각종 의학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성은 황당하지만 실력만은 최고인 그런 의사의 모티브가 블랙잭이다.

 

<헬로우 블랙잭>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팔아버린듯하다. 이제 아이들 읽히기 좋은데 ㅜ.ㅠ

 

<닥터 노구찌>는 언제 주문해서 다시 봐도 좋을 듯하다. 거의 위인전, 휴먼드라마라 애들 읽기 좋을듯하다. 내가 김윤아 남편인가 암튼 그 치과의사 수입 정도 된다면 홍대 00문고 가서 왕창 사오련만.

 

 

 

 

 

 

 

 

 

 

 

 

 

 

 

 

 

보려고 했다가 못본 작품들이다. <요시오의 하늘>이 주문할 만하다.

 

 

 

*

사실 책을 봐도 그렇고 만화를 봐도 그렇고 의사는 격무에 시달리며

되기까지도 그렇고 되어서도 그렇고 힘들기만 하다.

 

의료 관련 직은 죽음이나 그와 비슷한 상황을 거의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극한 직업이자 사명감이나 체력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무작정 아이들 의사 만드는 게 목표인 엄마도 가끔 보인다. 아이들이 결정할 문제인데 말이다. 남궁인 작가의 경우도 강연에서 엄마의 권유로 의사가 되었다고 밝혔을 정도이니.

 

우리 아이들의 경우는

병원에 가본 경험을 들어 의사는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하는데. ㅋ

역시 너희 뭘 좀 아는구나.

 

온라인에서 본 어떤 글에 아들은 의사 만들기 싫고 의사 사위는 보고 싶다나.

아무리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지만 후안무치의 극치다. 아니 솔직한 거겠지. 그래도 쫌 속으로만 생각하자.

 

중년이 되니 가족이 아프다거나 다른 이들의 문병을 간다거나 해서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병원은 피하고 싶은 공간이고

어떤 병들과 의사, 병원을 둘러싼 잡담은

일상에서는 비속하고 가볍기만 하다.

 

아직은 불운이 나를 피해 갔으니 안도한다거나

공허한 감사 타령이 주를 이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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