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짜 프로분실러 아들 덕분에 여기저기 연락하고 학교를 헤매고 다녔다. 화요일엔가 새로 산 점퍼(우리 형편에는 꽤 고가인 아웃도어 점퍼)를 분실해 반에 있겠지 했는데 없는 것이다. 학교분실물함에도 가보라 하고 창피하지만 담임선생님에게도 문자를 드렸지만 못 찾았다. 그러다 혹시나 하고 방과후 바둑 선생님에게 연락드리니 뭔가 파란 걸 보셨다 해서 아이더러 가보라 하니 3시인데도 문이 잠겼단다.

 

그 와중에 팽이 한다고 운동장에 애들 기다린다고 난리. 게다가 이제 가방까지 학교 운동장에 두고 오고.

 

팽이하라 보내고 다시 방과후반에 가보니 교실 사물함 뒤에 점퍼가 널브러져 있다. 거의 물려입히다 딸애랑 남매 커플룩으로 산 점퍼라 찾으니 무지 반가웠다.

 

아들은 1학년에만 실내화를 네 번 잃어버렸다. 실내화란 게 참 이렇게 잃어버리기도 힘들다.  접이식 우산 몇 개에, 소풍 가면 새로 산 모자나 도시락 뚜껑 놓고오는 건 다반사다. 필통은 있지만 연필이 가방 속에 굴러다니고 늘 몇 자루 사라진다.

 

딸은 이와 대조적으로 학기 초에 필통 세팅한 고대로 가지고 다닌다. 점퍼는 벗으면 항상 가방 안에 두고 소풍 가면 시킨대로 점퍼 벗으면 허리에 둘러맨다. 모자도 혹시 벗게 되면 길이 조절하는 버클 풀러 가방에 야무지게 매고 온다. 피곤한 점은 가끔 숙제를 잊고 안 가지고 오면 학교에 도로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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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는 육아하면서 겪는 소소한 일들을 엮은 가족소설이다. 애들이 보더니 여든까지 아냐? 라고 배운 티를 내는데 미취학 아이가 속담을 접하고 자기에게 익숙한 단어로 이해한 것이다. 이 두 책은 엄청 소소한데 특이하게도 작가의 이력이 나의 행동 반경과 겹친다. 애들 키우며 살았던 강원도나 현재 본가 부천이 자주 나오고 작가님이 계시는 곳에 현재 살고 있어서 그런지 공간들이 막 그려진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님 정말 부인 잘 만나셨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246-247쪽)

 

 

 

 

 

 

 

 

 

 

 

 

 

 

 

 

 

 

 

 

 

 

 

 

 

 

 

 

 

 

어제 문화의 날이라 도서관에서 다 읽은 아이들 책과 교환해온 책들이다. 아이들 책도 성인책으로 바꾸어주니 좋다. 증정도서나 수험서 등이 아닌 출간된 지 5년 내의 상태 좋은 책들만 해당된다.  

 

진화심리학을 가볍게 푼 <본성이 답이다>부터 읽고 있다.

 

 

 

 

 

 

 

 

 

 

 

 

 

 

 

도서관 예약 끝에 받은 책이다. 아직 읽어본 적이 없는 이시구로.

기대되고 두렵기도 하다. 상을 받은 작가들과 인연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일단 빌려보기로 하자.

 

 

 

 

 

 

 

 

 

 

 

 

 

 

 

 

지난 주에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일단 내가 의연해지기로 했다.

 

아들이 방과후 가기 전에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는데  티와 바지에서 쉰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 말에 의하면 급식실에서 '보이지 않는 일진'(아들 표현)인 희철(김희철 닮음)이랑 부딪혔는데 식판 국물이 흘러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경악한 내 표정을 보더니 그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돌아서다 실수라서 자기도 사과 받고 끝냈다고 한다. 내가 정말 그애 표정까지 미안한 거냐고 하니 그렇다고 장난으로 사과한 건 아니라고 해서 넘어갔다.

 

이 문제의 희철 군과 어린이집, 1학년에도 한 반이었다. 얼굴은 아이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생겼고 운동도 잘하고 처세에 능하다.

공원이나 놀이터에서도 늘 우리가 물 가지고 다니는지 알고 따라다니며 물을 마셨다. 결정적으로 1학년 겨울에 아들이랑 눈싸움할 때 장갑도 빌려서 끼고는 아무데나 던져두고 돌려주었다고 했던 전적이 있어 약간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그런 친구다.  

 

<교실 카스트>는 일본 상황이긴 하지만 한국 현실과도 들어맞는다. 학교는 어쩌면 사회보다 더 철저히 계급사회이다. 성적, 외모, 집안환경, 아이들 개인의 인간적 매력 등에 따라 교실 내에서 서열이 정해지고 각 그룹은 학급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는다. 교사는 상위그룹 아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해 학급을 손쉽게 경영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는 현재 교실에 오면 어느 그룹일까? 현재는 물리적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가 좀더 정교해졌고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학폭이 열리자 아이가 친구랑 대화를 녹음한 자료를 내놓아 판도가 뒤바뀌기도 했다.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중학생이 친구와의 대화를 녹음하다니.

 

*

딸아이가 처한 위치도 나름대로 머리 아팠다. 영화 <우리들> 같은 여아들의 세계도 만만치 않다.

딸아이는 현재 반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가 별로 없다. 역시나 걸그룹같이 어여쁜 아이가 반 여자애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딸아이는 그 그룹에 속하지 않고 마이웨이하려고 학교에서 열심히 책보고 그림 그리고 그애들 그룹이 아닌 두세 명 정도랑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작 2학년인데 말과 행동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중학생 같다. 자기한테 도전하는 애가 있으면 인기투표를 해서 눌러버리고(선생님이 뒤늦게 아시고 투표 금지시켰지만 당한아이는 마침 집안일과 맞물려 겸사겸사 전학을 갔다) 학교에 화려한 드레스나 한복을 입고 오기도 한다고. 반에서 늘 뒤에서 애들과 춤을 추고 화장실로 친한애들과 몰려다닌다. 중2 아니고 초2 인데 요즘은 정말 빠르다.

 

이렇듯이 학기 말이 되어가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속한 그룹이나 위치를 나름대로 알고 있다.

중심 그룹은 아니지만(내가 우리 아이들도 은근히 중심 그룹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이고 창피하기도 하다) 중심 그룹 아이들과도 척지지 않고 이만하면 잘 지내는 편이다.

 

무엇보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 엄마가 있고 간식거리와 장난감, 읽을책이 있다. 집에 고정적으로 놀러오는 애들이 있고 가끔 생일파티에 초대받기도 한다.

 

금요일에만 애들 놀러오게 하라는 약속을 자주 어기기는 하지만 아이들 친구 엄마들이 거의 일해서 가끔은 사람 있는 집에 오고 싶어하는듯해서 한 시간이라도 놀다 가라고 한다. 학원 오가며 비는 그 한 시간이 유년의 한 조각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일하는 엄마 대신에 나를 반겨주었던 친구 엄마들이 내어준 떡 한 쪽이나 그 집에서 읽었던 책이 가끔 떠오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정말 끝없이 내 일부를 내어주는 시간들이다.

 

숙명의 기아팬(이름 약자마저 KIA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도 못보고 있다. 책도 누더기 시간에 이것저것 읽다보니 뭐가 남는지 모르겠다. 글발도 후져지고 말발은 더 말할 것 없이 유치해져서 이렇게 화면에 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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