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극장에서 아이들과 본 영화이다.

초등 4학년, 2학년 과연 잘 볼까 싶었는데 다행히 버텨주었고 나름의 감상도 내놓았다.

 

영화를 다시 보고 충격을 받은 건 수용소 가기 이전의 삶이 영화 내에서 훨씬 긴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소박하고 아름답게 촘촘하게 구축된 세계가 단번에 파괴되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었나보다. 아들은 나오면서 독일이 정말 싫다, 이럴수는 없어, 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4학년인 아들은 딱 한 번 나오는 키스씬에서 고개를 돌리고 아주 유난이셨다. 키도 140이 넘어가고 몸무게도 40킬로가 넘어가지만 귀여운 구석이.

 

딸은 수용소 장면부터 공포에 질려 가자고 하더니 그래도 봤다. 수용소에서 귀도가 독일군 장교말을 엉터리로 번역하는 부분에서 애들이 배를 잡고 웃어서 민망했다. 영화 끝무렵에는 미취학 아동들이 다가고 우리만 남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열심히 보고 아빠가 정말 대단하다더니 일요일 저녁에서야 아빠가 죽은 걸 알고 충격받은 눈치이다. 아..끌려가서 총소리가 들렸잖아, 바보야 라고 오빠가 소리쳐서 알게 되었다. 다쳐서 어디서 있나보다 했지. 다 그런 거면 좋겠다.

 

아이들과 추억의 영화를 다시 보니 어쩐지 OST 흐를 때부터 주책맞게 울컥하다가 막상 시작하고 나서는 애들이랑 같이 신나게 웃으면서 봤다.  

 

나오니 충장축제라서 풍선터트리기에 만원 버리고 알라딘에서 책사고 일찍 들어왔다.

시내 알라딘에 그렇게 사람 많고 더러운 건 처음본다.

 

 

 

 

 

 

 

 

 

 

 

 

 

 

 

 

 

<인간 실격>은 드디어 주말에 다 읽고

<스토너>는 3분의 1이 남았다.

스토너와 요조

이렇게 놓고 보니 대조적인 두 사내

 

늘 끝까지 본 적이 없는 <인간 실격>을 중년이 되어서야 다 읽었다. 이 시기에 읽으니 그래도 요조가 웬 역겨운 미친놈이 아니라 한없이 가여운 사내로 보인다. 그래도 주변 여성들의 신산한 삶도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하느님처럼 착한 친구였어요.˝

 

자신의 전 생애를 알뜰하게 낭비해버린 사내와 그 곁에서 역시 소모된 여자들의 삶이 참 덧없다.

다 읽고 나니 나윤선이 부른 <사의 찬미>를 다시 듣고 싶어졌다. 

 

<스토너>는 아껴서 야금야금 읽고 있다. 초반부에 잘 읽다가 중반부에 한번 늘어지다가 스토너가 이상한 학생과 돌+아이 동료교수 때문에 고생하는 부분에서는 대학원 시절이 겹쳐졌다. 꼭 그런 함량 미달의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무지를 도리어 현학으로 감추는 학생이 있고 그 학생에게서 어린시절의 자신을 찾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고집불통 교수가 있다. 학부 시절에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편애하는 교수님도 있어서 별로 놀랍지도 않다. ㅋ   

 

스토너, 스토너 부인 이디스, 그들의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도 이해가 된다. 정말 철저하게 외로운 스토너 못지 않게 이디스도 결혼생활이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가을이라 연달아 현장학습이 잡혀 있다. 아무리 별주부라 해도 그래도 체험학습 도시락만은 신경 써서 싸준다.

 

아끼는 책 중 하나인 <도시락의 시간>을 간만에 펼쳐본다.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도시락 컨셉으로 싸서 보내면 애들 분명히 입나오기 때문에 어여쁜 도시락 책을 펴서 참고한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_ 04. 핑크색 밥알과 하트 계란말이

 

딸아이 어린이집 시절에 좋아하던 캐릭터가 리락쿠마여서 늘 사각초밥을 사서 리락쿠마 몇 마리 넣어주었다. 그 시절 딸아이는 맘에 드는 애들에게만 그걸 나눠주고 온갖 유세를 부린 모양이다.

재롱잔치 가니 다들 그거 어떻게 만드냐고 난리였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서는 반애들이 이게 뭐여, 유치해 하니 이제 시들해져서 엄마 그냥 초밥은 두고 김밥만 싸줘, 라고 한다.

 

그래도 사과라도 토끼 모양으로 깎고 비엔나 문어나 메추리알 토끼, 돼지 검색해서 싸주면 좋아한다. 안 먹어본 애 주었어 라고 거들먹거리기도 하고 누가 싸왔는지 미니언즈 좀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스팸 토토로도 있고 뭐 도시락 호작질에는 끝이 없다. 몇년만 참으면 이제 김밥집에서 사가는 날이 올게다. ㅋ

 

다음달 독서모임에 이 책 참고해서 도시락 싸가면 좋을 것 같다.

사회초년생 때나 조교할 때 도시락 먹던 그 시기같이 나만을 위한 도시락을 정성껏 싸서 두런두런 책수다 참 좋겠다.

 

그래도 말이죠, 단순 반복 작업이라 해도 즐거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그걸 발견했죠. 그래서 이 일이 참 좋아요. <도시락의 시간> 32쪽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행운도 따라오나 봐요 184쪽

 

이 가을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무르며 책도 읽으니 좋쿠나.

 

오늘은 학교 책읽기 봉사날이라

간만에 찾은 궁극의 체크무늬 재킷을 입을 수 있어 또 좋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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