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사운드파크페스티벌에 갔다. 집 근처 사직공원에서 열리는 공연이었지만 멀리서 동생이 와주지 않았더라면 가기 힘들었을듯.

 

야외공연은 정말 간만이었고, 공연장은 작지만 아늑했다. 라인업 중 10센치, 가을방학의 계피, 이승환 말고는 정말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네시 반부터 공연은 시작되었는데 처음엔 정말 어수선했고 아직은 타는듯한 햇볕.

양산을 쓰고도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볕이 강했다.

 

'권나무'님

가수라기보다는 문과 대학원생 같은 분위기였다.(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선생님) 

이 더위에 정장으로 차려입으시고도 옛날 선비같이 더운 기색도 없이 차분히 노래를 이어가셨다.

짬이 안 된다며 멘트는 사양하시고 노래를 연달아 네 곡.

노래가 필요할 때, 어릴 때,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너를 찾아서?  

 

좋구나, 집에 가서 다시 찾아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자체 제작한 플래카드를 열심히 흔들며 곡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담담한 가수와 열성적인 청년 팬을 보니 그냥 무작정 찡해졌다.

저렇게 대책없이 좋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청춘이지. 

'어릴 때'를 열심히 따라 부르던 청년의 수페르가 운동화 옆선까지 지금도 기억난다.

 

나무 님은 여기에 앉아 있는 모두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기쁘다고 하셨던가.

이후 권나무 님 차례가 끝나고 언덕 같은 데로 일행들이 올라가자 주변에서 모두 그 팬을 생각하며 빨리 따라가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외국 밴드 둘, 샘 김 순서가 지나고 드디어 계피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무대를 꼼꼼하게 세팅하고 나서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평범하고 참하고 수수하지만 뭔가 고집스러울 듯한 발목에 시선을 고정하고 노래를 들었다.

 

<속아도 꿈결>을 라이브로 듣게 되는 날이 있다니.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사하>도 잘 들었다.

중간중간 다정한 멘트와 귀여운 동작들도 예상과는 달랐다.

 

계피 순서가 지나고 공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10센치가 나왔고 권정열 씨의 잔망스러움에 많은 처자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 대중적인 곡들과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적절히 섞어 부르는듯. 막 신나다가 이젠 발라드에요. 너무 관객들 좋아하고 분위기 들뜨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는데 ㅋ 아주 요물이셔. 

떼창이 자주 이어졌다. 봄이 좋냐?, 아메리카노, 쓰담쓰담,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애상 등등

  

마지막으로 승환옹 순서

1999년에 보고 진짜 오랜만인데 세월은 나만 정통으로 맞은듯

페스티벌 특성상 많이 못 불렀는데 원래 받은 만큼만 하는 거라고 농을 하시고 그래도 몇 곡 더 하고 가셨다.

공연장마다 다닌 열성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맨 처음 산 테이프는 승환옹 1집이었다. 꾸준히 듣다가 언제부턴가 찾아듣지는 않았다. 몇 집부터인지도 모르게 멀어져갔다.

 

그래도 10억광년의 신호를 여기서 듣다니. 신기했다. 

 

쨍쨍한 한낮에 시작한 축제는 밤 열 시가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동생이랑 한여름밤의 양림동 길을 걸으며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왔다.

 

다 오랜만이지, 둘에게 이런 시간.

내년에 동생도 가정을 꾸리면 이런 시간은 쉽지 않겠지.

 

육아를 시작하면서 노래를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늘 집 안에는 크고 작은 소리들이 떠돌았고 언제부터인가 쉴 때는 음악을 듣지 않거나 클래식 FM 정도로 만족하곤 했다.

 

이젠 또다시 노래가 필요할 때

오전에 토요일에 들었던 곡들을 다시 찾아들었다. 특히 권나무를 오래 들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CD를 좀 더 살 것 같다.

난 옛날 사람 쪽에 가까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