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호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이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폐기된 시대에도 '노처녀'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된 동생은 올해 엄마가 주선하신 소개팅으로 좋은 짝을 만났다. 내년 초로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2호는 이모의 결혼을 대비하기 위해 책을 빌려왔다고 한다. 그 순간 어찌나 귀엽고 기특한지 웃고 말았다. 2호는 진지했는지 왜 웃냐고 심통을.
동생에게 책표지를 전송하니 식장도 안 알아보는 자기들보다 낫다며 웃는다.
지난 5월에 친정에 가서 집 앞에서 동생의 짝이 될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엄청난 흑역사를 생성하고야 말았다. 혹시 어디서 읽은 건 아닐까. 입 밖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
무슨 말 끝에 "그냥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피붙이같이, 여동생같이 잘 대해주세요."
아 쫌.....눈물까지 글썽거려서 동생이 사실은 창피했다고 한다.
날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조증이 도져서 고백합니다.
날이 좋아서 잠깐 동네 산책을 한다는 것이
양림동 이장우 가옥을 거쳐 유진벨 기념관, 사직공원을 거쳐 광주천을 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내처 걸었다. 둘러보며 잠시 쉬며 두 시간도 넘게 걸어만 다녔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아시아 건축과 한국 사진작가들에 대해 상설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냥 둘러보다 도슨트 해설로 건물 정면 외벽, 파사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여러 나라의 파사드를 둘러보고 만져봤다.(도슨트께서 만져보라 하심)
떼어내서 전시해두니 생경하다. 오가며 보던 게 동대문 DDP파사드라니.
관람객은 서울서 온 듯한 어떤 젊은 남자분 그리고 나. 아마도 그 넓은 홀에 관람객보다 직원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진작가들 있는 데서 혼자 보고 싶다고 나와서 서가에 가서 사진집을 두 권 넘겨보았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사진집이 나란히 꽂혀 있어 신기했다, 꼭 의도한듯이.
<미친년 프로젝트>
'또문'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때의 사진집.
단정하지도 정숙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여자들이 거의 대개 멍하니 심술궃게 있다.
흐트러졌거나 신체 일부를 드러내거나 '미친년'의 표상인 낡은 베개를 안거나 꽃 속에 둘러싸여서 불온하게 어딘가를 응시한다.
패기 있던 시절이었지, 훗.
웃기도 하고 심각하게 보기도 했다.
한참 보게 되는 얼굴도 있었다.
<어머니>
들에서, 장에서, 바닷가에서, 탄광에서 일하는 어머님들.
고되고 힘든 현장에서 막걸리 한 잔에 웃기도 하고 흥정을 하기도 하고 힘차게 물질을 하러 나서기도 하신다. 우리 시어머님 얼굴이 겹친다. 묵직하다.
심심해서 해설까지 읽다보니 의학박사인 부인이 본업도 버리고 내조에 힘써서 이런 좋은 작품들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사둔 지 오래되었는데 어제 밤에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청춘시대>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양'의 세계.
'양'이 살아내고 있다면 앞으로 어딘가에서 '여사님'으로 살아가겠지.
그 드넓은 전시관에 '양'이 여러 명, 여사님은 단 한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