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내가 사는 곳에서도 <환상의 빛>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풍문으로 들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라니......<환상의 빛>이라니.
이 도시의 나름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은 70-80년대의 영화관 분위기이긴 하지만 또 정확히 그것과는 같지 않다. 비오는 월요일에 누가 이 영화를 보러 오겠나 싶었는데 중년 여성 무리가 꽤 있었다,고 적고 보니 나도 이제 어엿한 중년 여성이네. -_-:
묵직한 상영관 문을 정년 퇴직한 영어 선생님 분위기를 풍기는 분께서 오래 잡아주셨다. 사양하고 붙들고 하다 상영관에 들어섰다. 광고 없이 바로 시작하는 영화.
어둡다.
나직하다.
영화 전반부 내내.
후반부에 들어서야 간혹 환하다.
해변마을 소소기의 풍광은 쓸쓸하고 위태롭기만 했지만, 아이들과 아이들이 터널에서 나올 때의 환한 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전날 자다가 1호의 발에 얼굴을 맞고 깨어서 한동안 잠들지 못한지라 간간이 장면장면이 빈다.
그래도 어느 장면에서 정신을 차리더라도 마냥 좋았다, 고 내 몸이 기억한다. ㅋ
특히 바다 위로 흩날리는 눈들
계단을 닦을 때 흘러드는 빛들
풍경화로 그린다면 미술 잘알못이지만 카미유 코로의 어떤 작품처럼 마음에 남는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볼 때는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소설을 찾아보았다.
책이 더 좋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번엔 영화에도 실망하진 않았고 영화도 참 고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소설 속 내용을 적절하게 생략한 것들도 좋고 소설과 다르게 새롭게 창조한 장치들도 좋았다.
자전거 열쇠에 달린 아련한 방울 소리가 요령 소리 같기도 한 것, 같은.
<환상의 빛> 이런 저런 장면을 찾다가 동명의 시들이 들어 있는 이 시집을 발견해서 주문.
세상엔 좋은 시가 참 많구나.
그리고 예전부터 유명했던 <금수>는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애들 책 보는 사이에 읽었다.
나름 문자를 아는 1호가 동물 얘기야 하고는 지나쳐갔다.
참으로 금수만도 못한 초딩 3학년이로세.
자연과학인지 알고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겠다는 녀석이니.
<금수>는 錦繡,,
수를 놓은 비단이다.
설정이나 인물, 서간체라는 형식마저 고루하지만,
옛날사람 중에서도 상옛날사람인 나는 빨려들어가듯이 읽었다.
2호랑 같은 학년 엄마가 중간에 와서 수차례 인사를 건넸는데 겨우 알아차렸다.
점심 먹고 바로 도서관에 들어와서 주말의 북새통인 어린이도서관에서 거의 다 읽어버렸다.
저녁을 주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후반부를 읽다가 아키가 너무 안쓰러워서 잠시 울 뻔했지만
모기장을 치느라 울 새가 없었다.
부재로써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지 아픈데
난 더 이상 아프면 안 되는데도 그런 이야기에 또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