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 

 

요며칠 여전히 서류 제출과 면접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면접을 10시 반까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지원자 전체를 부른데다가 다른 과목까지 섞어서 불러서 대기실이 인력시장 같았다. (사실 그렇지) 

 

대기실 한켵에 책이 꽂혀 있는데 의외로 읽을 만한 책이 가득했다. 특히 이 학교에 <정신병동 이야기>가 있어서 무지 반가웠다. 다른 지원자들이 흘끔거리는데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이런 책은 도서관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리.

 

책을 빨리 읽기는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 차례가 거의 12시 가까워져 시작되어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린 셈이 되어 거의 다 읽었다.

 

대개 지원자끼리 말을 섞지 않는 편인데 하도 오래 기다려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떤 과목이시고 어디서 일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 학교 성격상 인내심이 많아야 해서 그거 테스트 하느라 잡아두나보다 하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여기는 지원자들.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최고령인듯하고 나머지 분들은 이 학교 지원자들 중 유독 어린분들이 많았다. 경력단절 여성과 각 졸업한 무경력 청년 지원자들. 공통된 삶의 경험이 없지만 이 인력시장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야지.

 

대릴 커닝엄은 정신병동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병동 이야기>를 그렸다.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질병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고 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썼다. 장을 마칠 때마다 각각의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의의 간략한 소개가 이어진다.

 

양극성장애라고 하는 조울병,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통했던 조현병, 치매, 우울증, 경계성 인격장애 등 살아가면서 한번은 들어보았으나 가족이나 내 자신이 걸리고 싶지 않은 그런 질병들이 소개된다.  

 

대릴 커닝엄이나 다른 전문의들이 말하듯이 정신질환자가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비율은 일반인이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비율보다 낮지만 그들이 워낙 눈에 띄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평소 자주 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

 

일상에서도 자신에게 조금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병자'라고 하거나 나 '조증'이 올라오나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가까운 이들이 오래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았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이다. 그리고 유명인들 중에는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창작 활동을 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꽤 많다.

 

치매의 여러 종류에 대해 소개하고 가족들이 어떻게 도울지 이야기한 부분이 좋았다. 망상을 보일 때 무조건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망상이 나타난 배경을 이해하고 참을성 있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족들이 돈을 가져갔다고 의심한다면 화내지 말고 돈이 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면 된다.

 

어제야 알았는데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면접을 망쳤는지 그 학교는 잘 안 되었다.

 

우리네 헛짚는 면접살이

한 세상 걱정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래도 책 한 권은 건졌잖소. 우하하하핳

 

다행히 다른 중학교가 하나 되어서 시간표를 조정해서 다른 학교 하나만 더 되면 일년 농사는 어찌될듯하다.

 

 

 

 

 

 

 

 

 

 

 

 

 

 

면접 마치고 병원에 가느라 아이에게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이때 누군가가 반납해서 눈에 들어와 읽어내려간 책.

 

서현진 팬이지만 기간제 교사를 소재로 한 <블랙독>을 일부러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어쩌다 읽게 되었다. 15년차 중등 기간제 선생님이 세월호 때 순직한 기간제 교사 분이 순직 인정을 받는데만 한참이 걸린 현실을 알리려고 쓰신 책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지금은 집안사정상 전일로 매이면 안 되어서 수업노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래도 학교에 내 자리라도 있던 시기의 일들이 그립고 부럽다.

 

익숙한 에피소드라서 그런지 술술 읽히면서도 어느 장에서는 막혔다.

 

그래도 대부분 잠시 있다가는 손님에게 친절하신 정규직 분이 더 많았는데 학생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갔다.

 

당시에 동아리 축제 때 부스를 운영하던 중에 평소 좀 뺀질거렸던 친구가 부스 지키는 것을 이탈하고 다른 데로 놀러 가려고 했다. 아이들과 내가 뭐라고 힐난하자 난 내 시간 다 채우고 가는거다, 나도 기간제거덩.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잃고 대꾸를 못했다.

지금이라면 나는 기간은 잘 채우고 성실하게 일하는데 네가 이러면 시간 관념도 없고 일도 못하는 거야, 라고 웃으며 훈육했을 텐데.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기간제교사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보다는 사학법이 개정되어 사학재단도 공동으로 임용을 치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난 이제 임용과는 인연이 없고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혹여나 사립 선생님들도 많으실 테니 노파심에서 한 말씀. 모든 재단이 다 비리로 얼룩져서 친인척만 뽑는 것도 아니고 재단에 맞는 인력을 뽑는 것이니 현직에 계신 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국민정서상 교사가 수업노동자라는 개념도 없고, 기간제 교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나오면 늘 민이든 관이든 억울하면 임용 통과하든가로 일관한다.

 

교원수급정책 실패,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교학점제 등 다양한 교육정책 변화로 임용으로 인원을 충원하기보다는 계속 수업노동자가 수업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일반의 인식은 한참 떨어져서 그게 답답하다. 국가자격증도 있고 한번 계약하면 동일노동이거나 기피업무를 맡고 있는데도 실력 없는 잉여 취급하는 학부모나 관리자들이 종종 있다.

 

앞에서는 선생님은 기간제같지 않다는 요상한 칭찬을 하고 연말정산 기간에 모모는 6개월짜리였나 했던 어떤 감님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일부 아이들은 내가 어떤 신분이든 개의치 않고 다가와 쿠키도 주고 편지도 써주었다. 학교에는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 미숙한 사람도 가끔 어떤 아이들에게는 간택받아 사랑받기도 한다.

 

*

 

면접 일정을 마치고 금요일 아침

비장하게 마스크로 무장하고 본가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여 힘들게 사설구급차를 불러 엄마를 다시 입원시켜드렸다. 작년 11월에 정형외과 통합간호병동에서 열흘 넘게 보내고 나서 다시 또 병원이라니 지긋지긋해 하시지만 연락도 안 되고 식사도 안 되어 할 수 없이 초강수로 입원을 했다.

 

여기저기 병원을 수배해 구로구의 한 병원으로 가는 길. 

이제 17개월이 된 조카가 손바닥보다 작은 마스크를 쓰고 함께 동행했다. 아기띠에 안겨 땀을 뻘뻘 흘리고 자는 모습을 보니 안스럽기만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 시국에 이 어린아이가 왠말이냐며 빨리 수속하고 가라고 하셨다. 면회는 가능한데 코로나 19로 당분간은 병실에 아무도 가볼 수가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늘 입원할 때면 애틋해하다가 퇴원하면 잘 못해드렸다.

이번에는 언제 퇴원할지도 기약이 없고.

 

집에 가서 대기하는데 다음날 두유를 주고 가야고 한다고 해서 지하철로 병원에 가는데

주말에 사람이 없어 앉아가다니 충격.

 

막차로 집에 도착하려고 하는데

기사님이 대구에서 온 신천지 환자가 유숙헤어 영풍문고점에서 쓰려져서 조선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빨리 귀가하라고 안내방송을 하셨다.

 

내리니 방역복을 입은 분들이 있고

다들 바쁘게 택시를 잡아 타러 가는 손님들이 약간 있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님께 환자가 쓰러진 소풍 터미널에서 출발해 또 역시 환자가 쓰러진 유숙헤어에서 탔으니 기사님 여기저기 꼭 손소독제 쓰시라고 했다.

 

당분간은 미사 취소이니

이번 주일은 집에 콕 박혀서 밀린 예능이나 봐야겠다.

 

책이 있어 다행이라며 마무리는 예능이라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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