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려고 나는 이런 제목들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것일까?

 

제목이 무시무시하지만 한번쯤 일독해보고 싶은 책들이다.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이런 시기의 어떤 날의 풍경.

 

원서를 내려고 들어보지도 못한 학교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도로명주소도 알고 구글 앱도 켰는데 길을 찾지 못하는 미스터리.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에게는 길을 잘 묻지 않는다. 언젠가 학교 근처에서 학생에게 길을 물었더니 귀에서 콩나물도 뽑지 않고 내 휴대폰을 가리킨 적이 있다. 

 

대개 길을 물을 때는 마스크 쓰고 목도리를 친친 감고 동네를 슬슬 다니시는 어르신에게 묻는 편이 낫다. 아니면 택배기사분들이 잘 알고 계신 때가 많다.

 

학교 근처에서 뱅뱅 돌다 근처 택배기사님에게 길을 묻고 그 방향으로 열심히 가는 중이었다. 빵빵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그분이 차에 타라고 하셨다. 죄송해서 망설이니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고 근처 가니 타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무려 학교 안으로 데려다 주셨다. 멀리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려달라고 했는데 어차피 차를 돌려야 하니 괜찮다고 하시며 아이들 가르치기 힘들지 않냐고 하신다. 아마 내 서울말?을 듣고 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교사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친절에 감사하여 가방 안을 뒤지는데 거의 구비하고 다니는 마카다미아 초컬릿 하나 없어서 아쉬웠다.  

 

무사히 원서를 내고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집에서 한참 먼 중학교에서 면접에 오라고 한다. 공립인 이 중학교는 면접 대상자를 선정한 지 두 시간만에 면접에 오라는 것이다. 아마도 열일 젖혀두고 올 의지가 투철한 사람만을 뽑겠다는 의지인 건지.

 

생각보다 환승버스가 일찍 와서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샀다. 삼십 분 이상을 있어야 할듯해서 투 플러스 원으로 묶인 과자를 나중에 애들 주려고 여러 뭉치 샀다. 학교 앞의 테이블이 많은 생각보다 큰 편의점 안에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어 깜박 졸 수도 있었는데 흥미로운 사연이 들려와 잠이 깼다.

 

황혼 시기에 이르러 바람이 난 아버지 때문에 분노한 딸들과 사위가 엄마를 대동하고 늙은 상간녀의 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상간녀에게 무려 이천만 원이나 빌려준(아니 그냥 준) 상태이고 상간녀인 아줌마는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는 것이라며 방패막을 굳게 친다. 상간녀의 아들 역시 사연을 보낸 이의 말에 따르면 너희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외롭게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겠냐고 뻔뻔하게 항변한다. 

 

심각한 사연인데 딸이 이런 상간녀 모자의 행동에 화가 나서 너희 엄마는 꽃뱀이고 너는 그 뱀의 자식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해버렸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아닌 편의점 사장님이 분명한 아주머님도 나랑 같은 부분에서 빵.

 

분명히 내용은 엄청 슬프고 비참한데 역시 타인의 불행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니 이런 정도인 것인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노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상간녀 소송도 진행해서 이천만 원을 돌려받았고 딸들 근처?인지 딸들과 함께인지 아무튼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소송 과정에서 상간녀 아줌마가 너무 지쳐서인지 그 아줌마와도 헤어져서 쓸쓸하게 산다고. 반면 어머니는 한 딸은 약사이고 다른 딸들이나 사위도 유복하고 다감해서 힘들지만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이후로 한 아가씨가 파혼한 사연을 이야기한다고 하는 부분에서 아쉽게도 학교에 면접보러 갈 시간이 되었다. 목소리도 낯설고 해서 어느 주파수의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판 라디오판 사랑과 전쟁은 꽤 흥미율율했다.  

 

도착하니 방학 중의 한가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또 무심한 척 소머즈급으로 엄청 귀기울여 들었다. 달리 이유가 없다. 그저 무료했으므로.

 

미취학 아동부터 초딩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를 기르는 서너 분의 선생님들이 방학중 육아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면접대상자 분과 어색한 미소를 주고 받고 내 차례가 되어 교장실에서 짧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비슷비슷한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고 교감인 듯한 분이 대뜸 원서를 몇 장이나 내셨냐고 온다고 하시고는 못 오면 곤란하다고 희망 고문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내 뒷 번호분이 워낙에 포쓰가 있어 보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은 터였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을 계산하니 밥하기에 빠듯 밥도 하기 귀찮아서 미리 치킨 체인에 전화를 해두었다. 배다른민족 등 어플사용에 반감이 있어 그런지 서툴러 늘 전화를 하는 편이다.

 

정류장 근처 시장에서 귤과 내일 저녁에 먹일 목살, 가래떡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먹거리를 사고 가방을 푸니 애들이 엄청 좋아한다. 가방 안에 아까 편의점에 산 과자까지 들어 있고 곧 취킨이 온다는 소식에 애들이 일제히 열광한다. 조삼모사 원숭이들같이.   

 

아침에 돌려둔 빨래를 깜박하고 널지 않아 널고 아이들끼리 점심 먹고 치우지 않은 것들 설거지하고 동생 전화를 받았다.

 

거의 일주일? 열흘간을 엄마가 전화도 받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아 입원이 필요한 시기인듯.

 

예상했던 패턴이기에 며칠 전에 미리 병원에 예약도 해두었는데 사실 그날 가봐야 아는 일이라서 갑갑하기만 했다.

치킨이 와서 애들과 <검사내전>을 다시보기로 보았다.

 

 

 

 

 

 

 

 

 

 

 

 

 

 

 

 

 

진짜 뜬금없이 4학년 딸아이 꿈이 검사여서 보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현재 근황이나 검찰의 현실과는 별개로 나름 볼 만하다.

 

검사 미화가 양념같이 있지만 범죄와 수사, 재판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흥미로워 현실 도피하기엔 딱이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고 반장 모임에서 가끔 본 친구가 드라마의 배경인 통영에서 검사로 있던 적이 있다고 하자 딸이 놀란다.

 

엄마는 왜 그런데 공부 잘했다며 법대 갈 생각은 안 했어?

그러게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도 사실은 막연하게 법조인이 꿈이기는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미제 사건으로 남아 파헤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실은 모든 죽음이 약간은 미제 사건일 수도......

모든 죽음은 실제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기도 하다.

 

황당한 에피소드에 깔깔 웃고 치우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그날 무려 10891보나 걸었다고.

이 시기에 뚜벅이인 나는 만보 선생이 되곤 한다.

어제는 엄마가 치료받고  광주로 내려오시면 살 집을 보러다니느라 거의 또 만보를 찍었다.

그래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는.

 

다음날 아침에 눈이 하도 빡빡해서 눈 온찜질팩을 했더니 진짜 포근했다. 

금요일에 본가 가는 버스 타기 전에 하나 사서 챙겨서 숙면을 취하며 집에 가야겠다.

 

 

*

 

참참,

 

월요일에는 눈구경 한번 못했던 이 남도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눈이 많이 와서 단지 근처와 공원에 눈이 쌓여 딸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지난 겨울에 아껴가며 읽었던 에세이들

다시 꺼내보고 눈팩 수면안대 챙겨서 가야지

 

본가 가면 진짜 또 본격적인 간병? 투병이 시작될 예정이니 다시 마음 단단하게 먹고.

부디 엄마가 그날까지 잘 버텨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