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있어서 뒤늦게 이런저런 영화들을 보았다.

 

정말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벌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벌새의 움직임같이 오래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 맞았다.  

 

나와 같은 세대인 현재 30대 후반-40대 초반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1994년 이야기이다.

기이하게 더웠고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은 없는데

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터졌던 1994년.

 

영생할 것 같았던 김일성의 사망 소식도 충격이었지만, 뉴스에서 두 동강 난 성수대교를 보고 엄청나게 충격받았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부천에서 시청까지 지하철을 타고 통학 중이었는데, 내가 지나고 있는 이 다리도 어쩌면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리가 저렇게 속절없이 무너지는데

내신 유지한다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의미냐고 유치하게 끼적이기도 했다. 

 

*

 

막연하게 그래도 유년기를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서 보냈으면 유복하게 상처없이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게으른 버릇이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어 처음에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어릴 때 집이 아닌 방, 방이 아닌 칸에 다름 없는 공간에 살았던지라 은희의 가정환경, 경제적으로 중상층 이상에 양친 모두 살아 계시고 한문 서당을 다닐 수 있고 유행하는 컬러풀한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 보고 나니 그런 것보다는 어릴 때 윗학년 언니를 동경했던 기억,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균열, 중학교 시기의 막연한 불안은 누구나 같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폭력에 충격받았다. 그 시대에 여동생이 오빠에게 저 정도로 맞는 건 꽤 있었던 일이구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에게 부럽다고 하면 라면이나 끓여오게 하고 맞았고 놀림 받았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은희는 집안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고 있고 오빠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오빠가 때렸다고 말하는데도 엄마는 싸우지 좀 말라고 일축해버리는 정도이다. 엄마 아빠는 생계로 바쁘고 학원 가는 오빠에게 밥을 차려주는 게 이상하게 은희의 몫이 되어버렸다.

 

은희의 아빠는 꽤 성실하게 가게를 꾸려 가족들이 경제적 불편 없이 생활하게 하지만 상가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겪는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거친 방식으로 토해내기도 한다.

 

아빠나 오빠에 대한 묘사가 이 수준에 그쳤으면 은희가 너무 가여웠을 것이다.

은희의 수술을 앞두고 아빠가 어린아이같이 펑펑 울어버린 장면이 좋았다.

 

그 당시의 아버지들은 적절하게 말로 위로해주는 방법을 잘 몰랐고, 너무나 걱정되면 감정이 극에 달해 저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

은희가 단지에서 엄마를 크게 부르는데 엄마는 듣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며 앞으로 앞으로 가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은희는 이 정도 거리라면 들리겠거니 하고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엄마는 듣지 못한다. 어릴 때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법하다.

 

엄마가 외삼촌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와서 누워 있는데 발꿈치가 건조하고 갈라져서 스타킹 올이 다 나가 있는 것도 자주 봤던 장면이다. 중년이면 생계와 집안 대소사로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기에. 

 

 

***

은희가 작은 의원에서 나이든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을 때 관객들 중에는 혹시 은희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했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 기사로 읽었다.

 

신기했다.

나 역시 그 장면에서 의사 선생님이 은희 목덜미로 손이 갈 때 긴장했으니까. 

 

나중에 그 의사 선생님은 은희가 오빠에게 맞아 고막이 찢어졌을 때 조심스럽게 진단서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한다. 예전 동네에 있을 법한 적절하게 무심한 의사 선생님 연기도 좋았다. 어릴 때 자주 가던 동네 서점 아저씨 분위기였다.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는데 과장되게 다정한 게 아니라 딱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분.

 

영지 선생님도 그런 분이라 좋았다. 아이와 다기를 앞에 두고 앉아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어른이 그 시대에는 많지 않았다.

 

영지 선생님은 수업을 할 때도 과도하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건네듯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나누는 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였던가?

 

영화를 보고 잠시나마 마음을, 순간을 나눈 기억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그렇다고 할 정도이다.

 

연락처도 있고 SNS로 어느 나라에 다녀왔는지 어제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쉽게 연락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이 영화는 신기하게 누구에게 보라고 쉽게 권할 수는 없는데

혼자 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중학교 2학년 때 엄청나게 더웠던 여름날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픈데도

같이 집에 갈 사람이 없었던 날이나

 

그 추운 겨울에 기말고사를 망치고 친구와

비를 엄청 맞고  걸어다녔던 날이 떠오른다.  

 

그냥 그 때를 떠올리고

마지막에 무리들 사이에서 초연하게 서 있던 은희같이

혼자 뿌듯하면 되는 거다.

 

사족이지만

영화음악도 엄청나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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