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요 몇 년 사이 알라딘보다는 지역 육아 카페에 글을 더 많이 쓴다. 세간에서는 맘충의 온상이라고는 하지만, 새벽에 아이 열 보초 서다가 막막할 때, 남은 식재료가 애매할 때, 나들이갈 곳이 마땅치 않을 때 육아카페는 도움이 되었다. 열심히 알뜰살뜰 가족들 먹일 요리 사진을 올리거나 말끔하게 거실 청소한 사진이 올라오면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책이나 보며 노닥거릴 때가 아니지 무엇보다 난 주부지, 하는 자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육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대로 영영 아줌마가 되는가 싶어서 아줌마들이랑 어울리기를 싫어했는데 진짜 생각해보니 너무나 우습다. 그런 시기를 겪으며 나이들어가는 것이겠지.

 

지난 주에는<소년이로>를 들고 다니며 세 편 정도 읽었고,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엄청 놀러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말도 엄청 많이 했다.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이나 행동을 한 듯해서 또 부끄러웠지만 어떤가. 흔한 중년 아줌마인데 그 정도 주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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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는 수업 준비 스트레스로 여기저기 헤매다 이석원 님 블로그를 보았다. 찾으려 들었으면 진작에 찾아 읽었겠지만, 딱 어제 밤에 찾아 읽게 되어 딱 좋았다.

 

석원 님의 드라마 리뷰들을 보며 <스카이캐슬>을 언젠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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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나대로 놀고 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밥을 해주어야 하고 숙제를 봐주어야 하고 준비물 등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고학년이 되고 아이들 생활이 자기들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내가 관여할 부분이 적어지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석원 님과 어머님 이야기를 듣고는 아들이 나랑 좀 덜 친해도 서운해 말고

결혼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금부터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초등인데 비장하다. ㅋ 역시 아직은 집착을 말끔하게 버리지 못한 것)

 

가끔은 아들에게 여자친구랑 열 번 영화를 보면 한 번은 엄마랑 봐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그만 해야겠다.

 

그때마다 아들의 답은 여자친구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알 수 없는걸

혹은 혼자 볼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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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시간에 아들과 요즘 우리 지역에 활개치고 다니는 신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엄마, 그럼 사이비 구분하는 법이 뭐야.

 

일단 사이비는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요구해.

 

엄마도 성당에서 꽤 오래 시간을 보내잖아.

 

아니지 사이비는 돈도 많이 빼앗아가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엄마, 성당도 헌금도 내야 하고 건축헌금인가도 내잖아.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기는 첫영성체 교리 때도 엄청나게 삐딱선을 타다가 주임 신부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첫영성체도 못할 뻔한 전력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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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오전 여덟 시 미사를 드리고 딸과 바로 조선대학교 장미원에 갔다. 해마다 이 시기에 가는 곳인데 작년에 아들을 억지로 데려와 고생한 기억이 있어 딸과 왔다.

 

어제는 기후가 고르지 못 했고, 다들 종교활동을 하거나 늦잠 잘 시간인 일요일 오전 아홉 시여서 아주 느긋하게 걸어다녔다.

 

장미들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의 세례명인 안젤라라는 품종 앞에서 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제 4학년이다 보니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더 재미있어하고 꽤 잘 찍는듯하다.

 

다니다 우연히 딸아이 같은 반 친구를 보아서 또 사진을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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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피자를 포장해와서 아이들과 3주 전 <나혼자 산다> 잔나비 부분을 보며 별것도 아닌 장면에 엄청 웃었다.

 

아들이 요즘은 친구들과 잘 놀지 않는데 잔나비 리더같이 초등 친구들과 저렇게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고 또 훈수를 두었다.

 

딱 같이 웃기만 하면 좋았을 것을.

 

 

*

 

<소년이로>와 석원 님 블로그 이야기들이 많이 겹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하고 아픈 사람들 이야기.

 

연결되지 않고 분절되고 뚝뚝 끊기는 그 이야기들에 한참 마음이 쓰인다.

 

오다가다 만나는 엄마들 이야기와도 겹쳐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그저 그런 이야기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하루하루는 전도부인들이 외치는 그런 승리하는 삶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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