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일이 있었던 가정의 달 초반이었다.

그 가운데 읽고 있는 책들.

 

은유 님 책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다. 어렵게 글을 쓰는 분은 아닌데 당시의 내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지 더디게 읽혔다.

 

읽다가 아는 분 성함이 나와서 놀랐다. 대학 때 동아리 간사를 해주신 분인데 성착취 당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계시는구나.

 

성함으로 기사도 검색해보았다.

참, 여전하시네, 하고 반가웠다.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지내실 거라고 예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여서 많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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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나는 여성주의자도, 투사도 아닌 그냥 '상처받은 아이'였던 듯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하고 과도하게 밝은 새내기 역을 자처하던 내게 간사님은 '뻥쟁이'라고  하셨다. 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신 분 같다. 입으로는 소외된 여성, 민중이 어쩌고 했지만, 현실은 가장 소외된 여성인 엄마를 보듬지 못하고 있었으니.

 

결혼, 출산, 양육을 통해 켄 로치의 '되어보기의 망토'를 직접 입고 나서야 내가 십대이십 대 때 답답하게만 보았던 '그 아줌마들', '엄마', '이모'의 행동을, 감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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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은유 작가님은 가사, 육아를 온전히 전담해본 시기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이런 사회제도 하의 중년 여성은 가정에서 이중의 임무를 떠맡는다.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이라는 사회적 돌봄 기능은 아무런 비용 지불 없이 여성에게 떠맡겨진다. 작가님이 간간히 토로하는 양육의 힘겨움과 봉양의 까다로움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요즘 남성들은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수고로움까지는 공감하면서도 생애 주기를 통해 가정 내에 돌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간과하는 듯하다. 초등고학년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아이들과 소통하고 먹거리를 챙겨주고 또 여러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의 안부를 묻고 병원에 동행하고 하는 건 모두 사사로운 일로 취급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돌봄노동은 여전히 '사회제도'가 아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가정 내 사적 돌봄에 머문다.

   

*

 

 

은유 님 책을 읽다보면  성인 여자의 애니메이션 타임(大人女子のアニメタイム)이라는 서늘한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야마모토 후미오의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를 각색한 삽화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주인공은 마트 캐셔를 하며 아이들을 기르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엇나가고 연로한 부모는 딸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남편은 가정에 큰 관심이 없다.  

 

 

 

그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한 적 없는데 어느새인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은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고,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그래도 글쓰는 학인들과 연대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간간이 보여서 작은 희망을 찾게 된다.

 

 

자기 언어로 쓰고 연대하고 주변에 소소한 친절을 베풀라!

확실한 것, 무조건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마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이 그림책도 따스했다.

 

헌신하고 희생하신 우리 어머님들의 언어.

뜻밖에도 어떤 회한 없이 담백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며 그 힘든 세월을 누구의 원망으로 돌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시는 태도에 감동했다.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를 보면서 조금 과장해서 평행우주급으로 거의 다른 시공간을 사는 우리 부부도 나중에는 저렇게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노년이 되게 노력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홧병 다스리는 비법을 어느 유튜브에서 봤는데 상대(파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도가 모래성을 허물듯이 파도는 그렇게 치는 것이니 원망하지 말고 모래성을 옮기란다.

 

그러니까 파도가 치든 말든 '내 모래성(내 감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애초에 바닷가를 잘 선택했어야 했나. ㅎ  현재는 뭐 주위를 보니 어느 해변도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 훗.

 

 

 

 

 

 

 

 

 

 

 

 

 

 

 

 

 

 

 

집 근처 북카페에서 읽었는데 아무튼 시리즈는 부담없이 읽기 좋다.

 

<아무튼, 계속>을 쓰신 분을 굳이 명명하자면 초식남 계열인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저자는 혼자 사는 남성으로 수영장에 오랜 기간 꾸준히 다니고 있는데 아마 이런 연유로 오래 다니게 되는 듯하다고 전한다.

 

 

나 역시 (열심히 나가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클럽에서 가끔 이런 느낌을 받는다.

 

대화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단톡방에 올라오는 아재 개그들에 오후에 잠시 웃게 되는 때도 있다.

 

 

 

소소하게 밑줄 그을 부분이 있었는데 집에 와야 했다.

아이들이 올 시간에 그냥 밖에 있기, 이것이 참 아직도 어렵다.

 

 

 

 

 

 

 

 

 

 

 

 

 

 

 

정은 작가님의 추천도서.

 

몇 장 읽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에 빠져서 그런가보다 ㅋ

애들도 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혼자 놀아야 하기도 하니

책을 진득하게 못 붙들고 있다.

 

정은 작가님이 가부장제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역작이 나오리라 믿는다.

 

<디디의 우산>을 잘 읽었는데 말하기 어렵다. 아직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연대에서의 그 일들

멀찍이 보고 안타까워만 했는데 이제라도 증언이 나와주어 고맙다.

그래, 아시는구나, 싶었다.

 

 

*

 

참 여전하다.

대학 때 어느 선배가 지적했듯이 정리되지 않고 장황하다, 나란 사람.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는

이런 내가 나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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