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역에서 했던 <커피사회> 전시를 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다녀왔다.
들어서면 커다란 케이크 조형물이 먼저 보인다. ‘커피, 케이크, 트리’라는 박길종 작가의 작품이다. 5단 케이크 곳곳에 낡은 전화, 보온병, 맥심 커피 프리마, 찻잔, 주전자 등이 놓여 있다
이렇듯 커피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딸이 좋아한 건 시소와 탁구대였다.
탁구대에 언제 서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 치는 시간보다 열심히 공 줍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때 전시장을 안내하던 분이 다가오시더니 원래 탁구선수 생활을 잠시 하셨다며 잡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탁구대 바닥이 실은 향초라는 것도 알려주셨다.
커피를 마신다, 는 건 실은 당신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뜻이라고 하시며 시소나 탁구대를 두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셨다.
여기는 양림동 양림살롱 근대 의상을 체험할 수 있게 꾸민 공간이지만 소심한 우리들은 굳이 입어보지는 않았다. 미스터션샤인 고애신이나 쿠도 히나가 입었을 풍의 옷들인데 많지는 않다.
입장권 대신 받은 컵을 내려두면 핸드드립 커피를 주신다. 광주 지역의 유명 카페들이 참여해 시간당 한정으로 커피를 내려주신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도 결론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가 나오게 설계된 작품.
정말 마음에 든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마땅치 않는다 해도
다 내 탓은 아니라는 거.
그냥 애초에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것.
전시 끝부분에 이상, 박태원 등 문인들이 애정한 제비다방, 멕시코다방, 낙랑팔러 등이 소개된다.
192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다방은 커피 마시는 공간이자 문화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아지트였다. 제비다방을 이상이 운영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상과 박태원 등이 속했던 모더니즘 단체 구인회 동인들이 모이던 낙랑팔러는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나름 전공자인데 이름이 왜 이리 낯설까? 내 탓이 아니라 재미없게 수업하신 분들 탓. ㅋ
이제 천변풍경보다 봉준호 감독 외할아버지로 유명하신 박태원 ㅎ 그리고 또 여러 문인들의 글 좀 읽어보려는데 역시 초등과 다니기 어렵다. 평일에 혼자 다시 와서 찬찬히 읽어보아야겠다.
같은 층에서 안녕, 민주주의라는 사진전도 하고 있었다.
딸은 앉아서 쉬게 두고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도 있고 낯선 사진도 있었다.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이 생각나는 여러 자료들
광장으로 나오니 세월호 5주기 분향소가 있었다.
당시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을 아이들이 이렇게 분향소를 마련하고 떠들고 어딘가로 달려가며 분주히 사람들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니 또 다시 슬퍼졌다. 집에 리본이 있지만 다시 받아서 딸 핸드폰 가방에 달아주었다.
알라딘에서 딸이 책보는 동안 <오정희의 기담>을 읽었다.
이렇듯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지 않는 구슬픈 옛이야기들도 있다.
*
반나절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다녀서 잡다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도 평온하기만 한 4월 어느 토요일이었네.
산책하고 커피 마시고 딸과 탁구도 쳤던 어제를 기념하기 위한 간만의 사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