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에서 인기를 끌다 초록색 고운 표지로 나온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최근에 내가 아끼는 책이다. 이슬아 님을 찾아보았듯이 김예지 님도 인스타에서 찾아보았다. 기사에 실린 어머님과 작가님이 환하게 웃는 사진과 친구들과 함께한 사진들 모두 곱고 유쾌했다. 역시 딱 책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지내고 있는듯해 흐뭇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형태가 분명한 일(육아, 가사, 청소, 여러 기술직, 농업, 어업 등)을 하는 사람들이 지식노동자보다 임금이 낮은 것을 당연시한다. 어떤 정치인도 미화원이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며 백만원 정도 버는 거 아니였냐며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예술 전공 출신의 20대 여성이 청소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편견)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장면에서 울컥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처럼 흘긋 보거나 외면하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하면서도 그림을 보는 순간은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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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소일로 돈을 벌고 일러스트로 자아실현 하는 작가님도 단단해 보이지만 어머님이 참 대단해 보였다. 자녀가 미래를 모색하는 데 실질적 조언을 해주고 독려하고 기다려주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법이다. 

 

나도 꿈(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직업(정교사)이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로 자기 연민에 젖기도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했다. 내가 원하던 직업에서는 멀어졌지만 미약하게나마 아직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지속하고 있고 적지만 보수도 있다.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게 하는 그 보수를 주는 이 노동(수업)에 충실하는 것만이 답이겠지.

 

그리고 시선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그냥 견디자. 그런 무의미한 시선에 상처받지 말고, 그냥 주어진 하루의 비질을 잘 마치면 되는거지.  

 

(지금은 이렇게 무심히 말하지만 시선이 꽂힐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타격을 받는다. 기간제 수업을 했던 중학교에 축제가 있을 때 담당 동아리 학생이 축제 부스를 지키지 않고 일찍 가려고 한 적이 있다. 같은 부서 친구가 넌 왜 일찍 가냐고 하자, 학생이 내 쪽을 돌아보고 난 기간제거덩 하고 돌아섰다. 얼굴만 벌게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아이를 그냥 보냈던 게 더 창피하다. 지금이라면 아이고 요, 녀석아, 기간제면 그 기간이라도 다 채우고 가야지,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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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몇 컷으로 그린 그림 안에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여러 에피소드가 녹아 있어 그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비탄의 문>을 주말에 걸쳐서 다 읽었다. 큰아이가 B형독감에 걸렸고 나도 한달간 고생한 기침이 낫지 않고 작은아이마저 감기였지만 그 덕분에 집에만 있어 다 읽게 되었다. 읽기 전에 평이 너무 극과 극이었는데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정통 사회파 추리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도 판타지를 원하는 독자에게도 완벽한 만족을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미미 여사님이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풀어갈 해법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라는 데 의의를 두려 한다.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가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말은 그런 거야.

어떤 형태로 꺼내 놓든 절대로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어.

반드시 자신도 영향을 받지.

닉네임을 몇 개씩 번갈아 쓰며 아무리 교묘하게 정체를 감춰도.

글을 쓴 사람은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167쪽

 

 

말의 '업', 말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인데 막판에 문제 해결 부분, 즉 악의 심판을 '판타지'로 처리해 추진력을 잃었다.

 

하지만 요즘의 지저분한 사건사고에 대비해 생각해보면 어쩌면 판타지에 나오듯이 초월적 힘에 기댄 강력한 응징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권력형 성범죄, 친족 성폭력, 학교 폭력, 갑질, 사기, 뇌물 수수 등 하도 많아 뉴스를 자세히 보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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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아이들과 꾸준히 보고 있다. 50대 중년 아저씨들이 역사물에 열광하는 게 어릴 때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걸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정치판이고 역사이다. 임금의 총애를 받다가 한순간에 몰락해 삼대가 멸하고 부관참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초야에 묻혀 살다가 말년에 자리를 맡기도 하고 소년등과 했다가 엄청 몰락하기도 한다.

 

끝은 한결같이 항년 00으로 마무리.

 

그러니 그저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이르는 듯하다. 

 

 

 

 

 

 

 

 

 

 

 

 

 

 

 

 

 

 

 

 

 

<나의 사랑, 매기>도 다 읽었다. 이런 류의 사랑? 관계? (불륜)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러내놓고 마음껏 아껴줄 수 없는 관계에서 오는 고통과 집착이 드러나 있다.

 

(조강지처 모드에 빙의해) 그렇게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라고 하지만 인간이나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면서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아주 사소하게는 입에만 좋고 장기에 나쁜 소소한 군것질을 달고 살기도 한다. 그게 바로 한심하고 가여운 인간들의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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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품 읽기는 전에 졸업했다고 생각했지만, <영원한 외출>은 마음에 든다. 엄마 아빠에 대한 전작 에세이도 잘 읽어서 이 책을 아껴 읽고 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찍은 폐 CT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날이다. 잔기침이 한 달 내내 그치지 않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도 권해서 종합병원에서 폐 엑스레이를 찍게 되었다. 그러다  CT까지 찍게 되었는데 결과 기다리는 게 뭐라고 은근히 긴장된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조영제 주사를 맞고 나서 대기실에서 멍하니 화면을 보는데 상조회사 광고가 엄청 나오자 갑자기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메멘토 모리라면서.

 

싸이월드 감성으로 가끔 적어두기만 하고 실감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 감정도 잠시였을 뿐 병원 나와서는 벚꽃이 만발해 아무 생각없이 차 마시고 돌아다니고 했다.

 

오늘도 그냥 그렇게 양림동에서 한나절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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