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학생의 마음으로 살아서 그런지 3월이 분주하고 설렜는데

이번 3월은 분주하기는 한데 별로 설레지는 않았다.

 

오랜 인후염으로 잔기침을 계속해서 갈비뼈가 부러졌나 싶을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다. 자다가도 침 사레가 들릴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한 주였다. 검색하니 잦은 침 사레가 노화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는 글이 있어 서글펐다. 그래도 누군가는 한창 부러워할 나이이니 징징대지 말자.

 

게다가 믿었던 동네 엄마에게 자잘하게 실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사실 그 여파가 크다. 그냥 아이를 매개로 만난 사이는 딱 그 정도인 듯하다. 믿었던 단골가게가 결국은 얄팍한 거래처에 불과했다 그 정도.

 

 

(거창하게 썼지만 별거 아닌.

아니다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 엄마는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과자를 잔뜩 떠안겼다. 전부터 소소하게 그런 일이 있어 실수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만든 건 내 책임도 큰데 그간은 받아서 버리다가 어제는 문자로 내가 원하지 않는 건 안 주면 좋겠다고 정중히 써서 보냈다. 역시 답 문자조차 없다. ) 

 

그나마 아이들이 새로운 반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서 다행이다. 최고 학년이 된 아들은 첫날 뭐했냐고 하니 뭐했겠어, 신학기에 늘 하는 거 하지, 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딸아이는 선생님이 이마트에 자주 오신다고 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기대를 드러낸다.

 

 

*

 

<우주호텔>은 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다. 우주와 관련된 어떤 내용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폐지 줍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아들에게 감상을 물으니 내가 기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한심한 반응이라 여기 적기도 망설여진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나만 알고 묻어야겠다. 초등 고학년이 되더니 드립만 늘어서 사람이랑 대화하는 건지 유튜브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어려서 유명 전집 한 질 안 들이고 한 권 한 권 고르고 골라서 책을 읽혔는데 허망하기만 하다.  

 

아이들에게는 스무 살조차도 머나먼 미래이다 보니 폐지 줍는 할머니의 절절한 외로움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도 자주 뵙지 못해 살갑게 구는 편이 아니라서 책 속에 등장하는 메이처럼 종이할머니에게 다가서기 힘들다.

 

폐지만 줍고 다녀 종이할머니라는 별칭이 붙은 할머니 있다. 채소가게에서 나온 폐지 상자를 두고 얼굴에 혹이 난 할머니와 몸싸움도 하는 그런 그악스런 할머니이다. 늘 그렇고 그런 날을 지내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이사온 메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네 집에서 폐지 더미를 건네주고 그중에서 메이가 그린 우주 그림을 보고 할머니는 어릴 적 꿈을 떠올린다. 달을 품고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고 메이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본다. 메이를 통해 포도송이 모양 성에 앉아 있는 아이와 초록외계인 뽀뽀나도 만난다.  메이를 만나고 이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찾은 할머니는 길을 가다 예전에 자신과 다툰 혹이 있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외계인'이라는 놀림을 받고 있는 걸 본다. 이후 종이할머니와 혹이 난 할머니는 폐지도 함께 줍고 차도 마시는 사이가 된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연결되어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건조하게 줄거리만 나열했지만, 그림과 글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이었다. 표지나 마지막 장에 작게 불을 밝힌 여러 집들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가 지내는 이 작은 보금자리 하나하나가 우주호텔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우주 호텔에서 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서로 도와야만 하는 소중한 이웃들이다.

 

여기까지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감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가서 수업을 해본 결과 요즘말로 폭망이었다. 일단 이 정도 텍스트도 길다고 여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가난하고 늙는 게 두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 호텔이니 지금 자도 되냐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 단원은 지난 교과서에서 전체적 감상보다는 비유적 표현을 배우기 위한 텍스트로 쓰였고 개정 과정에서는 요약을 위한 단원에 나오는듯하다. 문학작품이 이렇게 교과서에 실리면 무엇을 배우기 위한 한 수단이 되고 자연스러운 감상에 이르지 못하는듯하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다행히 온작품 읽기를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많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긴 호흡의 작품을 무리없이 읽어낼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듯하다.

 

이번은 실패했지만 몇 년 뒤 다시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골든아워>는 어쩌다보니 1권이 계속 예약이어서 2권부터 보았다.

전부터 이 책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외상외과' 일이 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분초를 다투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추락의 위험이 높은 헬기에 오르고 불편하고 낡은 비행복을 입어야 하고 때로는 행정적 문제에 부딪히고 여론이나 주변의 냉소에도 초월해야 한다. 

 

책을 읽기 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헬리콥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 지역도 공군부대나 대형병원 응급실 주변 단지의 집값이 물론 다른 데보다 낮은 수준이다.

 

일반인이 소음에 대해 민감한 것은 그렇다 쳐도 왜 굳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원인을 직접 연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 일본 등에서 천이삼백 명 수준으로 외상 환자들을 이송해도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00명 정도인데도 늘 민원에 시달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건 국토가 좁고 병원이 민간 아파트 단지들과 너무 밀집되어 있는 문제가 커서 그런듯하다.

 

말미에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도 세세하게 읽어보았다. 이력 몇 줄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가 그려진다.

 

<식물 저승사자>는 어느 독립서점 인스타에서 보자마자 진짜 어머, 나를 위해 나온 책이야, 하고 외치게 만들었다.

 

키우기 쉽다고 주는 어떤 식물이든 우리 집에선 장수를 누리지 못하고 단명해왔다. 산세베리아, 카랑코에, 스투키 등등

 

난 내가 반려식물을 세세히 돌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내 손으로 사서 들인 적이 없다. 대개 선물을 받았는데 받고 어쩌다보니 식물 학대였나, 서서히 말라갔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화분 정리해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1층에 살기는 하는데 빛이 잘 드는 편이 아닌 위치이고, 물을 너무 자주 주고 해서 식물들을 많이 저세상으로 보냈다.

 

가끔 봄이 오면 프리지아나 다발로 사서 두고 볼 뿐 

현재 집에 있는 건 역시 애들이 받아온 행운목 두어 개가 전부이다.

 

이제 책을 정독하고 근처 화훼시장에 가서 다육이부터 시작해볼 생각이다.

실내 그늘지고 서늘한 책장 군데군데서도 잘 자랄 만한 애들을 골라와야지.

 

책에서 보면 집 안에서 집 안으로의 아주 작은 이동이라 해도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잎을 다 떨구고도 또 정성을 다해 살피면 새 잎이 돋는 게 신기했다.

 

 

*

 

지난 주에는 변화된 환경에 나도 상처받은 식물같이 온 잎을 떨구고 기침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여러 힐링 에세이를 읽었는데

정작 힘이 된 건 꾸준히 들고 있던 앞의 세 권이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상황에 빠져 우울에 허우적거릴 때

무조건 쏟아내는 긍정, 자존감, 미니멀은 별 의미가 없는듯하다.

 

 

 

   

 

 

 

 

 

 

 

 

 

 

 

 

세트 드디어 구매완료

이번 유리컵 굿즈가 맘에 든다.

찍어둔 사진이 어딘가 있는데 ^^: 

 

딸도 두고 보니 좋다고 한다.

 

 

*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그렇게

있자.

 

꼭 다시

새 잎이 돋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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