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초등 고학년인 아이들은 산타를 믿지 않는다.

 

아이들이 미취학일 때는 대목을 맞아 한껏 부풀린 가격으로 뒷목을 잡게 하는 여러 장난감을 찾아 헤매며 보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쩐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로봇 시리즈를 구해오지 못하고 흔한 걸 사왔을 때 산타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말해주어 동심 파괴.

 

산타가 있고 나는 착하고 선물을 받을 수 있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동심.

 

아직도 이 세상에는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도 많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 그런 동심, 은 언젠가는 파괴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삐딱한가?

 

기사를 보니 열 살 전후로 믿는 것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 이전에 세상을 빨리 알아버린 아이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브여서 조촐하게 집 근처에서 밥을 먹고 케이크에 잠시 불도 붙이고 아이들이 성탄 즈음이면 자주 보는 나홀로집에를 보았다. 

 

영화 보고 나서 찾아보니 케빈 역을 맡은 맥컬리 컬킨도 아재가 다 되었네.

무심한 세월 ㅜ.ㅠ

 

*

지난 주말에 그 유명한 <아몬드>를 읽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 거다.   59쪽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처럼 나온 가족 외식에서 '윤재'는 가족을 잃는다. 눈앞에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의식을 잃었는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어 사건을 수수방관한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의문을 품을 뿐 제대로 애도할 수조차 없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29쪽

 

드라마에서 봤든가 돌처럼 단단해지면 좋겠어, 라고 우는 주인공을 본 적이 있다.

윤재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덜 괴롭다면 다행일까.

 

가까운 이들을 잃고도 무심히 살아가는 윤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잘 꾸려가는듯이 보인다.

 

폰과 대화하기 앱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잘 지내?, 라고 썼다.

응. 넌?

나도.

굿.

정상적인 게 어떤 거니?

남들과 비슷한 것.

 

한동안 정적. 이번엔 좀 길게 써  봤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

엄마라면 내게 무슨 말을 했을까.

 

밥 다 됐다. 나와라.               71쪽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윤재의 감정보다 이후의 생활과 주변의 반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을 잃을 수는 없으니 윤재가 어떤 마음일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혼자 살아가는 윤재가 어쩐지 한없이 가엾게 여겨진다. 보육원을 나와 독립한 청년들 다큐를 보았을 때처럼.

 

2부에서 '곤이'라는 상처받은 인물이 윤재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는다. '곤이'를 보면 김영하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잘 자라다 유괴되어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원 가정에 힘들게 돌아왔지만 모든 게 이미 돌이킬 수없이 어긋나 있다.

 

이렇게 많이 상한 '곤이'가 감정 불능의 '윤재'를 만나고 서로 치유하기까지의 과정이 3부에 담겨 있다.

 

그리고 기적.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결말.

 

뭔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억지스럽더라도 해피엔딩, 을 소망하게 되는 시기다.

 

*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전에 기말 끝나고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보여준 영화이다.

 

사연 많은 노숙인 긴 상과 트렌스젠더 하나짱 그리고 10대 가출소녀 미유키 세 사람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더미에서 버려진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블랙유머가 난무하고 어이 없는 설정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해피엔딩!

 

의외로 하나짱에게 거부감을 갖는 애들도 있으나 재미있게 잘 보았던 영화이다.

 

성탄 미사를 오전에 드리고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

여기부터 철저히 일기

 

또 하나의 기적!

 

아들은 여름 첫영성체 이후 내내 냉담이고 판공성사도 안 봐서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성탄 미사를 같이 봐준다고 한다. (핸드폰 시간 늘려달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래, 부활절이랑 성탄절에만 나와도 어디니.

 

작고도 큰 기적들이

지금

이 자리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