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서는 주말이 제일 부담스럽다. 아이들도, 나도 쉰다고 여기려고 해도 온전히 쉬게 되지 않는다.

 

시간을 보내려고 유명한 <고령화가족>을 이제야 읽었다. 재미있다고 추천한 분들 말대로 술술 읽혔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뭔가 급조한 해피엔딩 같다. 그래도 가족이라면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를 두고 결말을 지은듯하다.

 

결론은 힘들게 하는 가족이 있다면 담백하게 살기는 힘들다는 것.

 

아마도 현실 속에서는 형 '오함마'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고 조카 민경이도 섬에 팔려가고 엄마가 과거에 사랑했던 상대를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을 테지만, 이렇게 안 풀리는 사람들도 그래도 종국에는 행복했으면 하는 그런 바람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닐지.

 

그냥 <고래>의 환상성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더 매혹되었다고 해두자.

 

영화도 아직 못 보았지만 당분간은 볼 생각이 없다.

 

*  

 

태어날 때 주어진 가족을 벗어나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원치 않게 맺어지는 인연도 있다. 내 개인적 인연이라면 할말도 편하게 하겠지만, 여러 층위로 얽힌 관계에서는 쉽지 않다.

 

아들이 치열이 고르지 않은 편인데 자라나는 아이라 별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헬륨'님(내가 받은 첫 인상으로 가벼워서)이 교정을 해야겠다며 자신이 아는 동생을 소개한다고 한다. 이분은 대체로 아는 형, 아는 동생이 많고 그들을 통해 만사를 해결하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걸 잘하는 사람을 찾기 마련인데 이분은 신기하게 아는 사람 중에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보는 식이다.

 

아무튼 이분 말씀에 따르면 그 아는 동생이 치과에 교정기를 납품하는 일을 하는데 치과 의사들이 수술을 제대로 못하고 영업사원에게 시키는 것도 많고(대체 무슨 근거로 ㅜ.ㅠ) 그래서 심지어 영업사원이 동물에게 연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얼토당토 않은 주장인데 옆에서 애들 아빠는

그래서 그 동생이 어디 사는데 하고 묻는다.

 

아, 이래서 원 가족이구나.  

비합리적인 사고라 해도 아예 무시하지는 않는다.

 

나도 왜 헬륨님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 생애를 알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데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사회 기득권층에 막연한 반감을 품고 있다. 생각을 교정해주기 어렵고, 그 마음에, 막연한 울분에 공감해주어야 하겠지만 그마저도 나는 원 가족이 아니라 매번 힘들다.

 

그냥 다 듣고 있다가 나중에 기어이 한마디 하는 나.

 

아이 다니는 치과 병원 원장님이 교정 전문으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헬륨님 모교 치과대학 교수고 좀 지켜보자고 했어요.

 

나는 그저 아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이 아이는 어떤 집안의 장손이 아닌 그냥 우리집 아이 아니 더 나아가서는 그냥 누구로만 살면 좋겠다.

 

이어지는 집안 먼 친척 누구누구가 잘되고 어찌 되고 하는 이야기들이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냥 내가 많이 불편하구나, 예능이나 열심히 보자 하고 아이들과 예능을 엄청 보다가 딸아이가 집에 가자고 적당한 때에 신호를 주어 집에 왔다.

 

집에 오고 나서는 본가 식구들이 요새 아프기 때문에 줄줄이 안부 통화를 하다가 또 지치는 부분이 있었다.

 

경계를 설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담백하게 만나기 힘든 관계들이 있다.

 

이번 판공성사는 엄청 길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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