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정말 힘겨웠다.

 

엄마랑 동생이 동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본가에 다녀왔다. 육아카페에는 호기롭게 친정간다며 사진을 올렸지만 요 몇 년은 본가에는 거의 좋지 않은 일로 가서 늘 발걸음이 무겁다.

 

창 밖에는 우리 지역에서 거의 첫눈이라 할 만한 눈이 내리고 객차 안도 고요했지만 지금 이 분위기를 즐겨보자고 마음 먹었지만 목이 부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또 이렇게 불려가야 하니 서글프기만 했다.

 

직접 가서 보니 역시 엄마는 안정되지 않았고 여동생은 산후우울증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 늦은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겨 좋아했는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이렇게 또.

 

안타깝지만 제부에게 맡기기로 하고 위로를 하고 본가로 향했다.

 

본가의 상태는 처참했다. 옷도 못 갈아 입고 치우고 또 치웠다. 깔끔해지기 위한 청소가 아닌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청소였다.

 

*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주는 이 책을 나는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집어들었다.

 

세상에는 가엾고 안타깝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 힘든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치매인 아버지를 직접 돌보며 많은 번뇌 끝에 무엇을 해서 가치로운 존재가 아닌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존재가 부모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는다.

 

매일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면 됩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관계를 오늘도 이어나가는 것이라 생각지 말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물론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먼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87-88쪽)

이런 구절을 보면 존경스럽다. 작년에 간호하며 빌려보았는데 계속 생각나는 것을 보면 사서 보아야 하나 싶다.

우리가 부모님을 돌보면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이상적인 부모님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부모님을 생각하는 한 현실의 부모님은 점수를 빼버리는 감점법으로만 판단하게 됩니다.  111쪽

 

지금보다 엄마가 건강하셨던, 젊었던 시기에도 나는 이상적인 어머니 상을 갖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엄마를 꾸준히 단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자꾸 분리해나가기 시작했는데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학 때 선배언니 하나가 우리집 가정사를 듣더니 엄마와 여동생, 내가 분화하지 않은 하나의 아메바 같다고 그러다 공멸할 것이라고 해서 슬펐는데 살다보니 차차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야 겨우 떨어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저는 자식이 부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사람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도, 누군가에 의해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124쪽

 

진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니 더 슬프다.

 

내가 내 딴에는 무리를 해서 본가에 들러도 엄마와 동생의 슬픔과 불안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젊음을 되돌릴 수도 없고, 동생의 육아를 대신할 수도 없다.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가서 보고 온 것인데 어째 보고 나니 나도 더 힘들어졌다. 아이들에게 배달음식을 주고 이틀 집안도 방치하다 어제 미사보고 겨우 청소하고 밥해주고 숙제도 봐주게 되었다.

 

*

집에 가는 길에 무거운 마음으로 기차를 탔는데 뒷자리 아주머니들 수다가 엄청났다.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지나가시는 직원분에게 이야기해 좌석을 바꾸었다.

 

<예민함이라는 무기>는 전에 함께 읽기로 한 책이라 보고 있는데 읽기도 전에 내 얘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해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데 곤란을 겪나보다.  어느 자리에 가든 내가 있을 자리인지 아닌지 단번에 파악된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이야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만 좋으면 웃고 떠들 수 있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니 고립되기도 쉽다.

 

아직 읽고 있지만 중간까지의 결론은 예민한 사람은 감각의 질과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민함'의 특성을 이해하고 항상 자신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책의 결론에 따르면 난 오늘 좀 쉬어가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래도 어제 나만의 의식을 밤에 치르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나만의 의식이라....

 

욥기를 읽으며 밤에 조금 울다가 이마저 너무 뭔가 감상적이고 우스워져서 그냥 누워서 새벽이 되니 오늘 할일들이 자동적으로 생각났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고 감기약을 먹고 애들 아침 챙기고 수업 준비해서 가야지.

 

올초에는 참 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이마저 없었다면 정말 힘든 한해가 되었을 것이다.

 

블로그에 투병기나 그런 개인사를 상세히 적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냥 쓰게 되는구나 싶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욥19;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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