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듯이 제목이 책의 운명을 가르는 듯하다.

 

<죽고 싶지만....>이 오래도록 순위권인데 나는 별로 공감을 하지 못했다. 항상 약간은 기분 부전 문제를 겪고 있지만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구성이나 문체가 와닿지 않는지 소장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최근에 생긴 북카페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읽었다.

 

제목이 참 정직하고 문체도 위트 있다. 솔직하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찾아보니 개정판은 제목이 바뀌었는데 표지도 제목도 이 판이 훨씬 좋다.  

 

 

 

 

 

 

 

 

 

 

 

 

 

 

 

 

우왕 명성 자자했던 천명관을 이제 읽었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여성에 대한 시선이나 질펀함, 육덕짐? 뭔가 그런 불편의 산을 넘고 등장인물의 인생유전 전체를 보면 납득이 가기도 하고 아니 그런 납득의 세계를 넘어야 한다. 고전소설 전기수 같기도 하고 환상성 짙은 남미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 할머니나 엄마에게 들었던 동네에 누구집 아이 혹은 그집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살다 망했고 누가 누구에게 시집 장가를 갔고 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놀라운 건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데도 짠하고 애잔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이 책에서는 고래로 형상화한, 살면서 인간이 품는 거대한 욕망은 생을 파괴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다들 남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만 결국 운명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용모의 미추나 개인의 능력, 성품, 주변 환경, 국가의 흥망성쇠 등 한 사람의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 이 소설의 히로인인 금복은 밑바닥에 있다 솟아오르기도 하지만 그녀의 딸 춘희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은 내내 바닥을 기다 사라질 뿐이다. 읽다보니 으으으 온몸의 기가 빠지는듯 힘들긴 했지만 어릴 때 전설의 고향 보듯이 두려워하면서도 그냥 다 봤다.   

 

전에 모임 분이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을 추천해서<돌이킬 수 없는 약속>도 보게 되었다.

 

이건 사실 내용 유출이라 자세히 쓸 수 없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답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미미 여사의 <모방범>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일본도 성 관련 강력범죄가 많고 성폭력 신고율은 우리나라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일본 여성들도 정조 개념이 강해서 성폭행을 당하면 신고하고 싸우기보다는 자살하고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쪽이 훨씬 많은듯하다.

 

<고래>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남성 작가들이 뭔가 생생하게 그려내는 어떤 장면들을 여성 작가는 그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기 힘들다. 겪었든 겪지 않았든 각기 다른 차원에서 묘사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항상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면, 을 무시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에 대한 묘사는 '말할 수 없음'의 영역으로 가라앉는다. 내 은밀한 상처나 고통이 전시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글 속에서만이 아니라 평온한 일상에서도 종종 당혹스런 상황 아니 공포스러운 상황이 닥친다.

 

얼마 전에 주말에 딸이랑 충장로 알라딘에 갔다. 지하이고 화장실이 빌딩 후미진 곳에 있어서 딸이 화장실에 가면 항상 앞에서 기다린다. 알라딘 매장 쪽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나왔는데 흔히 보이는 노숙인 풍의 사내였다. 머리는 여기저기 솟아 있고 옷은 때가 타서 더럽고 화장실도 가기 전에 허리띠를 다 푸르고 지퍼를 내리며 실실 웃으며 내 쪽을 보는 것이 수상하고 공포스러워 얼른 여자화장실로 갔는데 다행히 딸은 나오지 않았다. 나도 다른 칸으로 들어가고 옆칸의 딸에게도 이상한 사람이 있으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 이어서 어떤 아가씨가 들어와서 입구에 누구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서 알라딘 매장으로 얼른 들어갔다. 어느 틈엔가 매장에 다시 그 남자가 들어와 있어 다시 나를 보고 실실 웃어서 매장을 아예 나왔다. 그냥 그 정도인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딸이 혼자 화장실에 갔더라면 어떠했을지 생각하니 너무 공포스러워 당분간 그쪽에 가기 힘들 것 같다.

 

성추행, 성폭행 미수 형량이 낮은 것도 정말 말이 안 된다.  

미수,

시도했으나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그 분위기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앞의 상황을 매장이나 경찰에 말해봐야 내가 예민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요 며칠 센 책들을 읽어서 책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문자가 왔다.

 

 

오정희 님 책은 주문 전이고

염승숙 님은 어느 모음집에서 읽은 작가인데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딸이랑 양말 고르며 엄청 웃었다.

책 제목을 양말로만 바꿔도 얼마나 재미난지.

 

웃다가 브레멘 양말, 그리고 양말도 없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양말을 골랐다.

 

 

 

 

 

 

 

 

 

 

 

 

 

 

생각보다 질은 나쁘지 않고

M은 220 정도인 딸 발에도 잘 맞는다.

 

이제 애들 아침도 줘야 하고 마무리해야 하는데

제목을 뭐라 해야 하나 고심하다

나도 낚아보려고 이리저리 섞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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