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아이들이 고대하던 코난이 개봉하는 날이라 극장에 데려다주러 갔다. 여전히 무사고경력 수십년을 자랑하는 장롱면허 소지자라 왕복 다 택시를 탔다. 극장에 갈 때는 무척 어린?  기사님이 한마디도 안 하고 데려다주셨다.

 

매우 선호하는 유형.

 

집에 올 때는 정말 말이 많은 할아버지셨는데 일단 타자마자 담배 냄새에 가만히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말 잘 들어야한다고 호통에 이명박 나온 학교 졸업한 아들 자랑, 아들 직업자랑에 힘들었다. 원래는 중년 아저씨들이 하는 말, 거 참,  조용히 갑시다, 를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못했다. 가면을 쓰고 아드님 잘 키우셨네요, 연발하다 내렸다.

 

진짜 아이들에게도 힘들었을 시간,

그런데 일단 남의 차를 타면 고분고분해진다,

참으로 이상하지.

 

딱 한번 자유로운 동승 경험은

어릴 때 친구와 했던 서울 밤드라이브.

 

아이들 어릴 때 간신히 면허를 따긴 했는데

학원 강사가 강압적인 사람이라 운전을 즐겁게 배우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비오는 국도에 단둘이 있던 날들

지금도 공포스럽다.

 

그 강사가 윽박지르며 구박하는데

멍하니 참고 참아가며 겨우 면허를 취득했다. 

 

좀더 내 마음이 단단해지면

친절한 분에게 연수받고

다시 운전대를 잡아볼 용기를 내봐야지.

 

 

2. 

새벽에 깨서 일단 <19호실로 가다>부터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아껴서 읽었다.

 

작년과 요즘 계속해서 카페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많이 아쉽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도 아니고

복불복인 경우가 많다.

 

익히 알던 곳인데도 다시 가면 미묘하게 다르다.

 

최근에는 차라리 동네 프리미엄 독서실을 끊어볼까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진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 신경 쓰지 않고 홀로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

수전같이 남는 방에 혼자 있어보려 해도

엄마 책도 보고 글도 쓸게 라고 애들에게 말해봐도

딸이나 아들이나 금방 잊고 엄마 뭐 어디 있어, 이건 어떻게 해, 묻고 또 묻는다.

 

이건 약과다.

 

아이들과 같이 있지 않을 때에도 아이들을 염려하고 다음 스케줄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집에 떨어진 물건이나 처리할 서류 등을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게 혼자 있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소설 속의 수전이 아니라 다 놓아버릴 수만은 없다.

 

그냥 어느 때의 내 심정, 내 상황과 같기에

그저 읽고 또 읽을 뿐이다.

 

 

3.

수전같이 다 갖추어진 중산층 여성, 살림과 육아도 따로 맡아주는 사람이 있는 팔자 좋은 여자가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을 남편조차 이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멀어져 생계에 붙잡힌 중년 남성이 고독할 권리는 있지만

평생 가족, 특히 아이와 잡다한 가사에 얽매여 온전히 '자신'으로 있을 시간을 잃은 여성은

고독할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이기적이고 미친 여자가 된다.

 

여자들은 미친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혼자 있기 위해 변명을 꾸며댄다.

 

나도 동네엄마에게조차 혼자 평일에 동네 카페며 독립서점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번 우연히 이야기했다가 팔자 좋다는 식의 말을 듣고 난 후로는.

 

 

도리스 레싱말고도

오정희를 비롯해 우리나라 여성작가들  다수가

집에서 먼 공간에 자신을 혼곤히 놓아버리는 여자들을 자주 그렸다.

 

결혼도, 아이도 먼 이야기인

아니 연애마저 먼 이야기인 시기에 읽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캐릭터를 이제는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결혼생활의 큰 수확 중 하나이다.

 

집은 여성에게는 안식처만이 아닌

치열한 일터이자 공허한 폐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이 겪어보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한 일년간 미취학아동 전담 육아해봐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고 자신한다. )

 

 

그래서 결혼제도가 유지되는 것이겠지.

 

한편으로는 차차 그래서 결혼제도가 많이 달라지고 가족이 해체되기도 하는 듯하다.

 

다들 입을 모아 여권이 신장되고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는데

왜 이 단편들은 전혀 낯설지 않은 건지. 

 

 

4.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당분간 홀로 있고 싶다.

 

수전이 당신이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순간부터 내가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던 게

너무나 잘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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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9 2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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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9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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